활동 이야기

방광의 역량과 안전의 관계

세계인권선언 70주년 연속토론회 <문제적 인권, 운동의 문제> ‘1차 토론회 : 위험한 안전, 불온한 안전(8.28)’후기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은 올해, 인권운동이 마주한 질문을 살피는 자리들이 있었습니다. 인권운동더하기에서 주최한 연속토론회 <문제적 인권, 운동의 문제>입니다.

안전, 평등, 노동, 평화, 연대 등 인권운동이 외쳐온 의제에 대해 공통으로 부딪히는 질문과 고민을 나눴습니다. 익숙하지만 어려운, 친숙하지만 막막한 주제들이기에 이야기도 고민도 넘쳐 흐르는 자리였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들이 각 토론회의 후기를 나눕니다. 이번 연속토론회를 통해 확인한 고민을 앞으로도 이어가며, 또 다른 자리에서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험은 모두에게 닥칠 수 있지만 위험의 대응은 동일하지 않다.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불평등 때문인데, 위험의 결과 역시 사회적 계급, 젠더, 인종, 연령 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28일 세계인권선언 70주년 연속토론회 <문제적 인권, 운동의 문제> 중 1차 토론회인 ‘위험한 안전, 불온한 안전’에서 기초발제를 맡은 인권운동공간 활 랑희의 말이다.

이날 토론회의 기초발제는 최근 내가 한 기사를 읽고 느꼈던 안도감의 정체를 고민하게 했다. 기사에 따르면 사람의 방광은 생각보다 역량이 커서, 자주 소변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아무리 소변이 참아도 오줌보가 터지는 일은 없으니 그 역시 안심해도 된단다.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공중화장실은 가기가 영 꺼려지던 차에, 의외로 쓸모 있는 기사였다. 그러다 문득 억울해졌다. 나는 왜 방광이 가진 의외의 역량에 기뻐하며 외출 시 용변을 참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자구책으로 허리춤에 간이 화장실이라도 묶어 다니는 어이없는 상상도 해본다. 기술이 더 발달한다면 손바닥 사이즈만큼 접을 수 있는 간이용 화장실을 개발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던지면 펴지는 텐트처럼 말이다. 그 발명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이런 황당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안전하게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여성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자유롭게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안전의 문제이기만 할까. 최근 경찰은 몰카 피해를 막기 위해 화장실 벽면에 난 구멍을 메울 스티커를 나눠주거나 몰카 설치 여부를 대대적으로 점검하는 모습을 홍보했다. 스티커 몇 장으로 잦아들 불안과 공포가 아닐 텐데, 정부의 노력이 위험의 근본적인 원인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는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일까. 예컨대 직장 내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퇴근 시간 이후 이성 부하 직원에게 사적인 연락을 금지했다는 경찰청의 ‘노오력’은 단언컨대 권력으로 하여금 직장 내의 부당하고 불평등한 관계를 성찰하게 하지 못 할 것이다.

 

나에게 안전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권력의 위계와 평등의 문제와 연관되는데, 이를 신체의 안전 혹은 위험의 문제로만 연결 지으려고 하니, 국가에게 바랄 것은 그저 내 안전 혹은 안위를 위협한 개인에게 높은 형벌을 가해 줄 것을 요구하는 일로 수렴되었다. 그래서 토론회 내내 ‘안전’이 과연 인권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자문했다. 평등이라는 인권의 언어로 충분히 안전의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심화발제를 맡은 노들장애학궁리소의 김도현은 「위험, 장애화, 국가: 안전할 권리에 대한 관계론적 성찰」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위험이 불가피한 문제라면, 정작 문제는 위험이 아니라 위험에 대처할 수 없는 무능력이라 주장했다. 위험에 대처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관계 내지 조건이 위험을 재난과 참사로 이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떠한 관계, 즉 차별적․억압적이고 불평등하며 부당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되며, 이는 우리의 삶과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국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것을 주문했다. 국가를 단순히 시민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경계되고 제어되어야 할 존재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인간이 구성해 내는 정치체와 같은 것으로 보고, 그 안에 존재하는 다수자와 소수자 간의 (역)관계의 변화를 이끌어낼 때 비로소 국가의 변환을 사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안전이 권리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 하지만 이번 토론회가 새겨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관계를 성찰할 수 있는 국가라면, 공중화장실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여성들의 공포가 스티커 한 장으로 사라질 거라고 감히 상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말이다. 또한 손바닥 크기로 줄어드는 접이식 간이화장실을 개발하는 것이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결코 되지 못할 것이고,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여성들에게 요구되지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