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사랑방 신입활동가 다큐 3일

D-3 엄지손가락에 두 달도 더 전에 칠한 빨간색 매니큐어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아세톤을 하나 사서 깨끗이 지우면 될 것을 저절로 벗겨질 때까지 남겨두다니 무던하기도 하지. 무던함이라니. 게으르다는 말을 이렇게도 할 수 있다. 다가오는 월요일 드디어 출근인데, 이 낡은 기분을 쇄신해야겠다. 남은 잔여물을 깨끗하게 지우고 새로운 색깔을 칠했다. 쨍하지도 그렇다고 밋밋하지도 않은 색이다. 마치 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선 내 기분 같다.

 

D-2 일 년 넘게 작정하고 기른 머리를 잘랐다. 긴 머리가 지겨워졌다기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의식을 치르고 싶었다. 긴 머리 오랜만에 자르니 예쁘게 자르고 싶어 물어물어 찾아찾아 간 청담동의 한 미용실. 얼추 예상한 가격보다 비싸 어디 가서 얼마주고 잘랐다는 말은 죽어도 못하겠다. 마치 평생 이런 머리를 고수했던 사람의 것 마냥 머리 모양은 너무 익숙해 적응할 시간을 벌었다. 앞으로는 동네 미용실 가자.

 

D-1 같이 사는 첫째 고양이 담이 아침부터 이상한 행동을 한다. 목에 털이라도 걸렸을까. 되새김질을 하더니 토하는 시늉을 반복한다. 목소리가 갈라져 우는소리도 괴롭다. 밥도 안 먹는다. 침대 밑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둘째 고양이 복동이는 설사를 멈추지 않는다. 설사 땜에 예방 접종도 못 맞고 있는 사 개월 된 새끼 고양이다. 당장 내일이 출근인데 녀석들이 내 애정도 테스트라도 할 참인가. 걱정이 깊어진다. 출근 첫날부터 반차를 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하다. 늦은 밤 복동이가 처음으로 된 X을 쌌다. 첫째는 기력을 조금 회복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갈라지지만 밥도 먹고 둘째와 장난도 친다. 일단 반차는 안 내도 되겠다. 나의 애정이 그이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받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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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일 년 내내 죽어있던 알람이 울린다. 아. 졸린다. 알람을 재설정하고 삼십분 더 눈을 붙인다. 다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두어 번 뜨고 시간을 확인하고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샤워를 한다. 머리가 짧으니 시간이 절약된다. 처음으로 비싼 머리를 자른 값을 한다. 그래 이 기분이지. 출근한다는 건. 꾸역꾸역 일어나 샤워를 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젖은 얼굴을 거울에 비추니 되살아나는 감각. 그래 출근길 모닝커피 한 잔 사 마시는 재미가 있었지.

 

모친에게서 전화가 들어온다. 오래간만에 출근하는 기분이 어떤지 파이팅 하라 한다. 활동을 달가워하지 않는 인물 중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해주니 고맙다. 연이어 문자가 들어온다. 친구다. 사랑방 후원인이 되었다는 인증 사진을 보내며 좋은 출발 하라고 한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출근시간 십 분도 더 전인데, 이미 두 명이나 와 있다. 성실한 신입 활동가의 이미지를 심어주려 했는데, 한 발 늦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할 일을 한다. 이 글을 쓰는 일 말이다. 너무나 자연스럽다. 마치 어제도 이 자리에 앉아서 일했던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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