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후원인 인터뷰

생명과 평등이라는 시대정신, 우리의 투쟁 속에서만 구현될 수 있다

한상희 님을 만났습니다

봄에는 봄이 올까요? 넉달 가까이 광장에서 촛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진행 중이고 특검은 박근혜를 비롯한 체제의 부역자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진행 중입니다. 주권자의 힘으로 만들어낸 변화의 기운으로 봄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며, 헌법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한상희 님을 인터뷰했습니다. 더욱 많은 광장들을 일구기 위한 고민을 건네주셨네요. 함께 싸워요!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 유명한(?) 58년 개띠로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헌법과 인권법, 법사회학 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헌법과 정치의 관계에 관심을 두면서 시민들이 주도하는 헌법개정과정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회활동으로는, 인권재단 사람과 공익변호사단체 공감의 이사를 맡고 있고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이자 집시법사업단 단장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작년 가을말부터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광장에서 느꼈던 설렘이나 아쉬움들은 어떤 것이었나요?

사실 저는 광장에 매번 나가지는 못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에 쫓겨서... 원래 광장은 우리의 것이지 않습니까? 이전의 촛불집회 때에는 광장이 해방감을 주고 자유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지요. 하지만, 이번의 촛불집회는 달랐습니다. 그냥 경탄 그 자체였습니다. 같은 구호를 외치고 같은 무대를 향하고 있어도 그 많은 사람들만큼 많은 행동들이 있었습니다. 걷는 사람이 있으면 앉은 사람도 있고, 혼자 온 사람에 가족, 연인이 같이 온 사람, 차벽이 스티커를 붙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떼는 사람이 있고, 그걸 뗀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으면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고... 저는 이렇게 걸러지지 않는 행동, 행동들에서 정말 광장의 주인은 이 사람들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수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방식으로 광장을 향유하고 촛불을 태워내는, 그래서 나는 작은 우주요, 내 삶이 이 나라의 모든 것임을 선언하고 실천하는 그 모습들...
87년 민주화를 넘어서서 새롭게 나타나는 우리의 발전-역량강화라는 의미에서-한 모습들을 이 광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공부하는 헌법, 특히 시민정치의 통로로서의 헌법이라는 주제가 하나의 백과사전처럼 이 광장에 기술되고 있는 것 같은 경이감, 그로부터 오는 행복감, 뭐 이런 것이 제 소감이었습니다.

◇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주권자들의 함성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탄핵심판의 결과뿐만 아니라 결정의 내용에서 주목해 볼 만한 내용은 무엇일까요?

사실 탄핵은 이미 우리 대중들이 촛불로써 완수하였다고 봐야겠지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은 그걸 공식화하는 것에 불과하고요. 그래서 저는 탄핵심판의 결과는 그리 중요한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불과 9명의 재판관-이제는 8명으로 줄어들었지만-이 우리의 운명과 우리의 함성을 바꾸어 낼 정도의 권력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에 하나 탄핵이 기각된다 하더라도 대통령이나 그 주변들은 이미 죽은 세력들이죠. 지금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통령을 위하여 이런 저런 소리를 하지만, 주된 정치권력은 이미 야당에 가 있습니다. 단지 야당이 그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줄 몰라서-혹은 그런 의지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정국을 주도하지 못 하고 있을 뿐이지요. 어쨌거나 그 부정한 권력들은 우리가 얼마든지 싸워서 이겨낼 수 있는 사소한 권력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다만 미세한 법의 세계에서만 보자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의미 있을 부분은 세월호사건과 관련한 탄핵사유에 대한 판단입니다. 이 사건은 7시간이니 뭐니 하지만, 법적인 관점에서 본 그 핵심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이 부분에 명확한 기준을 마련한다면, 예컨대 삼성전자의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백혈병 같은 산업재해들에 대해 국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걸 모른 채 하는 관료들은 또 어떤 책임이 추궁되어야 할 것인지, 원자력발전소 주변의 주민들이 겪고 있는 갑상선암은 또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판단기준이나 판단을 위한 기본원칙을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에서 우리들이 선언한 바로 그 인권의 문제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나름의 공식적 토대를 마련한다고나 할까요..

◇ 사회의 근본적 변화와 함께 이미 쌓여있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최근 정국에서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현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실 저희 같은 법학자들은 관찰과 전망의 입장보다는, 당위에 기반한 비판의 역할이 적격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역할이지요. 그런 입장에서 보자면, 급작스럽게 대두하고 있는 대선국면은 너무도 불만스럽습니다. 촛불의 함성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데, 촛불의 의지가 입법으로, 제도개선으로 그리고 시스템의 혁신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에 정말 열 받았던 것이, 탄핵심판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어 국가지도력이 부재한 상태에서 시민들은 주말의 휴식을 반납하고 그 추운 날씨에 광장에서 목 터져라 외치고 있는데 국회는 1월 한달 동안 휴회하겠다고 작정하였던 점이었습니다. 무책임의 극한이라 여겨졌었죠. 어찌 어찌 1월 국회가 소집되었습니다만, 별다른 일도 하지 못하고 그냥 소일하다 시간 다 보냈지요. 그리고는 2월 임시국회가 지금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무얼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전에는 촛불의 함성이 광화문 사거리에서 막혔다고 한다면, 지금은 국회 정문 앞에서 가로막혀 있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대선 준비도 긴요하고 시급합니다. 그러나 그 대선도 촛불을 든 시민들과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국회 개헌특위가 급작스럽게 속도를 내기 시작해서 뭐 자문위원회도 구성하고 어떤어떤 안에 대해 1차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네 아니네 말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저보고 자문위원 하라는 연락이 왔는데 열 받아서 안 한다고 잘라버렸습니다. 지금은 자기들이 뭘 할 때가 아니라 시민들에게 대중들에게 무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보고 그 답을 구하는 시기입니다. 시민들이 발언할 때고 시민들이 제안할 때입니다. 그들이 할 일은 이런 시민들에게 발언대와 토론장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선을 핑계로, 개헌을 빌미로 자기들이 말하고 자기들이 답을 하는, 이상한 국면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언론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정치보도의 대부분이 특검과 탄핵심판, 그리고 대선 관련입니다. 실제 이것들은 촛불집회의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보도의 중점은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원하는가에 놓여져야 합니다. 그런데 기껏 보도되는 것은 최순실이 뭐라고 했고 “염병”이 어떻고 하는 것뿐이고 대선도 아무개가 몇 % 지지를 얻었다에 불과합니다. 제대로 하려면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가능하도록 썩어빠진 시스템을 파 헤쳐야 하고, 인물이 아니라 어떤 정책이 어떤 이유에서 대중들의 지지를 어떻게 받고 있다는 보도가 앞서야 되지요. 정치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주인이어야 할 촛불을 시나브로 주변으로 밀어내는 듯한 모습이 아주 눈에 거슬립니다.

◇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가 생명과 평등의 사회로 방향 전환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탄핵 이후의 사회가 이뤄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4·16인권선언은 전문에서 이렇게 선언하고 있지요.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며 우리가 협력하여 싸울 때 쟁취하고 지킬 수 있다. (…) 그리하여 함께 살고 함께 나누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저는 무엇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고 지켜내기 위하여 계속하여 우리가 협력하여 싸우는, 그래서 그 싸움 속에서 함께 살고 함께 나누는 공감과 연대의 의식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탄핵이 되든 아니든, 혹은 대선이 어떻게 가든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옥죄고자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권력이 극대화될 수 있으니까요. 생명과 평등이라는 시대정신은, 그래서 우리의 투쟁 속에서만 구현될 수 있습니다.

저도 들은 말이라 인용하는 건데, 광장의 함성은 일상에서는 끝난다고요. 광장에서 누리던 자유와 해방과 주인됨의 환희가 일상의 생활로 돌아오는 순간 그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여전히 자신은 비정규직이고 취준생이며 임차인이며 영세상인일 뿐이라는... 아직도 우리 삶의 암담함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촛불의 광장을 우리의 일상에도 새롭게 만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은 ‘이게 회사냐’로 이어져야 하고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는 갑질을 일삼는 재벌과 대기업의 퇴진이라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하겠지요.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치열하고도 가열찬 주장들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만만치 않은 것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런 주장들이 현실을 깨쳐낼 모멘텀은 의미있게 이루어져 있을 듯 합니다.

지금의 정치권은 이런 수많은 광장들을 제대로 일구어내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정치지도력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책무를 말하는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대선이니 개헌이니 다 좋습니다. 다만 그 일들이 모두 우리들의 광장을 만들어내고 그 광장의 이야기들을 정치화하는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지요. 2월 7일, 법원은 월성의 핵발전소를 재가동하는 조치를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어놓았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법정에서도 그 작은 광장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여기에 이런 광장들을 효과적으로 정치화해내는 정치력만 뒷받침된다면 촛불 혹은 탄핵 이후의 국면은 새로운 민주화로 이어질 수 있겠지요.

◇ 인권운동사랑방과는 오랜 인연이 있으신데요, 한국의 현실과 인권의 지형도 많이 변해왔습니다. 인권운동이 주의를 기울이거나 치열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 인터뷰에서 제일 어려운 질문 같습니다. 사실 촛불집회의 국면이 아니었다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심의제로 되었을 것이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혐오의 문제였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압박 속에서 삶이 핍박해지면서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할 사람들을 이리저리 쪼개고 구획하고 배제하려는 권력충동이 만연해지고 있습니다. 일베가 그렇고요, 요즘 나오는 박사모의 광기가 또 그러하지요. 여태까지 국가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던 인권운동이 이제 새롭게 주목해야 할 부분이 여기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혐오의 광기에는 모르긴 해도 국가 특히 국정원의 대국민 심리전이라든지 블랙리스크와 같은 조악한 통치술의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되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현재의 현상 자체는 사회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폐해는 이미 브렉시트라든가 트럼프당선과 같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기도 합니다. 강남역살인사건은 그 다른 모습일 것이고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뭐 딱 부러진 처방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만, 어쨌든 우리 인권운동의 큰 과제임은 틀림없을 듯 합니다.

◇ 변화의 한가운데서,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인 모두와 나누고 싶은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옛날에 유행했던 “인권운동사랑방은 □□□다.”라는 빈칸 채우기 놀이 식으로 말하자면 저는 ‘믿음’이라는 말을 넣고 싶어요. 그냥 든든해요. 우리 사회 인권운동의 출발점이라는 점, 인권운동의 최첨단이라는 점, 인권운동의 중추라는 점, 뭐 이런 것을 넘어 그냥 그 존재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놓이고 든든하고 입에 미소가 지어져요. 한편으로는 이런 인권의 진지를 구축하고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수많은 후원인들께도 감사드리고 싶고요. 세상살이가 점점 더 어렵게 여겨지니까 더더욱 인권운동사랑방의 존재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뭐라 할까... 광장의 촛불, 그 촛불의 한 가운데 인권운동사랑방이 존재한다고나 할까요. 이 사회에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그리고 우리들 속에서 그 답을 찾아내는 인권운동사랑방, 끝없이 사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