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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세월호에 있었던 ‘빨리’, 없었던 ‘빨리’

일상에서 자기 몫을 열심히 하고 싶다는 최홍조 님을 만나다

‘오래 알고 지낸 벗들’이 있어 사랑방을 후원하게 됐다는 최홍조 님. ‘부산 토박이’가 수도권에서 살았던 2008년, 짬을 내서 사랑방을 찾아왔고 주거권 자원활동도 잠시 했다. “너무 짧아서 ‘했었다’고 말하기에 민망하지만, 사랑방 후원인으로서의 역할에 소홀한 것은 아니에요!” 소식지를 꼬박꼬박 가족들과 나눠읽고, 인권오름도 즐겨 읽는다며 사랑방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낸다. “사랑방의 일상을 한 걸음 떨어져서” 열심히 보고 있다는데, 아주 가까이 있는 느낌이다.


◇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2008년부터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을 시작한 최홍조라고 합니다. 지금은 국제결핵연구소라는 곳에서 결핵 관련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 어떤 일인지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세요.

직장에서는 결핵에 대한 임상연구를 주로 하고 있고요, 결핵 정책에 대한 연구를 학업으로 병행하고 있습니다. 임상연구는 제약회사가 신약개발을 위해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을 생각하기 쉬운 데요, 저희 연구소는 비영리 기관이어서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아니에요. 연구자들이 관심 있는 분야의 발전을 위한 임상연구를 환자 혹은 건강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대부분은 완치에 어려움이 있는 결핵 환자들의 새로운 치료제 개발과 조기 진단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한 진단법 개발을 하는 것이죠.

 

◇ 일과 병행한다는 공부는 어떤 주제인가요?

공부하고 있는 분야는 주로 결핵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찾으려는 거예요. 저는 임상연구와 사회적 결정요인 두 가지가 모두 결핵 문제 해결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빈곤과 같은 사회적 조건이 중요하다고 하여, 치료제가 없는 난치성 환자들에게 종전의 치료법만을 고수할 수 없어요. 반대로 치료제와 진단법을 개발한다고 해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을 병으로부터 예방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죠.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한국의 인권운동은 사회적 조건의 해결에만 편향되어 발전했다는 느낌도 있어요. 연구개발이 이윤 창출만을 지향하는 불평등한 구조로 진행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통제하는 노력도 중요할 텐데요. 아마 그런 노력을 기울이기에는 시민사회가 신경 써야 할 다른 문제들이 너무 많은 것이겠죠. 그러다 보니, 연구개발은 그냥 자본의 것으로만 생각하고 부정적 인식을 덧씌우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같이 풀어가야 할 숙제겠죠.

 

◇ 사랑방 활동에서 눈 여겨 보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무엇보다도 인권오름이에요.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인권분야에 찾아봐야할 글이 있다면, 검색1순위는 인권오름이에요. 아주 오래된 사건부터 인권문헌에 대한 요약까지 없는 것이 없을 뿐더러, 내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인지도 정확하게 지적해 주는 것 같아서 참 좋아요.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작년부턴가 노동권 관련 사업을 시작한 것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자유권, 사회권 모두 중요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권리는 ‘삶’의 기본이 되어야 하잖아요. 응원하고 있답니다.

 

◇ 세월호 참사가 아직까지 진행 중입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어떤 느낌과 생각들이 일었는지 궁금해요.

무력감이죠. 한국이라는 국가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이토록 집중적으로 드러내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참사가 있고, 지인들과 안산을 다녀왔어요. 합동분향소 앞에 즐비한 손편지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남아있는 그/녀의 사연에 마음 아팠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과 분노에 공감을 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현실 정치’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에 전 부정적이에요. 누가 선거에서 당선되고, 누가 권력을 가지게 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요.

결국 개인적으로는 일상에서 나의 몫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결핵 분야의 연구개발이 사회적으로 통제되고, 환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지게 하는 거죠. 그리고 결핵 정책도 관리와 통제 중심이 아니라, 배려, 참여, 공감이 우선하도록 변화시키려는 것이죠. 사실 주변에서 ‘자본’이나 ‘권력’에 의한 폭력은 참 쉽게 일어나잖아요. 지금은 그러한 폭력이 세월호 참사로 표현되고 있지만, 결핵환자 혹은 결핵이라는 질병의 주변에서도 폭력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아요. 어쩌면, 세월호 참사에서도 결핵분야에서도 나는 가해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이 폭력의 굴레를 벗겨 나갈까가 저에게도 주어진 과제인거죠.

 

◇ 모두들 저마다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몫을 찾아가는 시간일 듯합니다. 동시에 그런 노력들이 개개인의 노력으로만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향에 대한 고민도 될 텐데요.

인터뷰 전날 쌍둥이가 폐렴으로 동반(?) 입원했어요. 이제 갓 두 돌을 지났어요. 한 녀석은 단어 두 개 정도는 조합을 해서 곧잘 말을 해요. 그런데 다른 녀석은 아직도 아빠, 엄마, 줘, 이거 뭐야, 네 단어를 빼면 말을 잘 못해요. 근데, 어제 병원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손전화를 보더니 이러더라구요. “줘, 줘~, 빨리! 줘.” 전 그 녀석이 ‘빨리’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고 문득 또 슬퍼졌어요. 생각해보면, 한국은 ‘빨리’라는 단어에 중독된 사회잖아요.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도 ‘빨리빨리’고요. 근데, 세월호에서는 ‘빨리’가 없었던 거예요. 결국 한국말 중 ‘빨리’는 자본을 위한 ‘빨리’에 머물러 있었던 거예요.

전 사람들이 어서 세월호의 슬픔에서 헤어 나와야 한다고 봐요. 물론 분노도 필요해요. 하지만 급하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빨리’라는 낱말이, 더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타인을 통제하기 위해 쓰이는 게 아니라, 조금 덜 가진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천천히 타인을 공감하고 참여하며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갈 수 있는 집합적 능력이 향상되어야 할 것 같아요. 다양한 주제로 모이고 의논하고 집합적으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집합적 분노와 실천을 모아가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긴 호흡으로.

 

◇ 안녕을 묻기 어려운 시대지만 우리가 서로 안녕할 수 있는 세상을 더욱 꿈꾸게 되는 시대, 사랑방 활동가에게 건네거나, 후원인과 나누고 싶은 따뜻한 인사를 전해주세요.

인권운동사랑방은 이번 사건을 마주하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저는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사랑방이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인권운동사랑방에 참여하고, 응원하고, 같이 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평등과 존엄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전환을 원하는 당신, 지금 인권운동사랑방에 같이해요! 저는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제 주변이 안녕한 세상이 되도록 살아보겠다는 다짐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실 거죠? 따로 또 같이 후원인 여러분들과 인권의 가치가 우선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