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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세월호 참사에 '음모론'은 없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세월호, 침몰 원인 밝혀내는 게 끝이 아니다

지난 6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1년 1개월간의 조사를 마치며 종합 보고서를 발간했다. 2014년 국회의 세월호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와 2016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모두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지 못한 채 해산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4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서야 정부의 첫 공식 보고서가 발표된 것이다.

세월호 침몰 과정은 의문의 연속이었다. 왜 선체의 방향이 급격하게 선회했는지, 왜 기울어진 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넘어졌는지, 왜 거대한 배가 그렇게 빨리 가라앉았는지. 선체조사위는 출범 이후 이 모든 침몰 과정에 대한 조사를 이어왔다. 이번 조사를 통해 세월호의 비정상적으로 빠른 침수와 침몰에 대해, 닫혀있어야 하는 수밀문과 맨홀 등이 열려있었고 깨진 창문 등으로도 물이 차올랐다는 정황을 찾아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온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진전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공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종합 보고서가 두 종류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분량이 많아서 상, 하권으로 나뉜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담은 두 종의 보고서를 동시에 발표한 것이다. 당황스러운 심정으로 자료를 살펴봤다.

두 종류의 종합 보고서

침몰의 전체 과정 중 '급격한 방향 선회는 어떻게 발생했나?'라는 질문에 대해 선체조사위 내부에서 두 가지 대답이 나왔다.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각각 '내인설'과 '열린 안'이다.

'내인설'은 급격한 방향 선회의 원인을 선체 복원성 불량과 방향타 이상, 화물 과적과 허술한 고박으로 제시한다. 조타기에서 방향타로 신호를 전달하는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되면서 선체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힘이 계속 가해졌고, 복원성이 불량했기에 기울어졌던 배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기준치보다 많은데다 허술하게 묶여있던 화물이 풀려나면서 선체 전체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선체 내부의 결함을 침몰의 원인으로 지목하기에 '내인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반면 '열린 안'은 내인설이 가지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복원성 부족과 화물 과적만으로는 세월호의 급선회와 침몰을 전부 설명할 수 없기에, 전면적인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세월호 선체 좌현에 움푹 파인 흔적 등을 이유로 외력 충돌에 의한 침몰 여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보고서는 각각의 의견을 담아 따로 작성되었다.

진실은 합의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니,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은 진실로 향하는 길을 넓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두 의견이 많은 부분에서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내인설'은 급선회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고, '열린 안'은 그 가설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정도이다.

모든 진상 조사는 한계와 의문점을 남긴다. '내인설' 역시 침몰 과정을 전부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고, 그에 대해 '열린 안'이 제기하는 의문과 추가 진상규명 요구는 정당하다. 하지만 남은 진상규명을 요구하기 위해 굳이 보고서를 따로 쓸 필요까지는 없다. 그렇다면 두 의견을 하나의 보고서에 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정권의 흔적

지난 정권에서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언제나 정권의 책임을 덜어내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그 외의 목소리는 배제하는 모양새로 나타났다. 박근혜 전 정권은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꾸리며 진상규명을 천명했지만, 정작 진실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떼쓰는 사람들'로 취급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고 조사하겠다 말하면서도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음모론으로 몰아갔다.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 당시 정부는 특별법 시행령과 유가족 배상 문제를 양 손에서 저울질했고, 어렵사리 출범한 1기 특조위는 당시 정권의 집요한 조사 방해로 결국 보고서 하나 남기지 못한 채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와 해양안전심판원은 각각 2014년 10월과 12월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당시 발표한 침몰의 원인 역시 '내인설'과 마찬가지로 선체의 복원성 불량과 화물 과적 등이었다. 이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며 더욱 철저한 조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이전처럼 음모론으로 치부되었다.

촛불을 통해 정권이 바뀌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정권에서 만들어진 구도는 여전히 남아있다. 선체조사위 회의록과 조사위원 인터뷰 등을 통해서 볼 때 '내인설'은 '지난 정권이 써먹었던 면죄부를 그대로 가져오며 진상규명을 봉합하려는 시도'로 읽혔고, '열린 안'은 '무분별한 음모론 제기'라며 비난받았다. 오랜 불신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원하는 마음조차 서로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나의 보고서에 담길 수도 있었던 '내인설'과 '열린 안'은 그렇게 두 개로 나뉘어졌다.

더 많은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지난 정권부터 진상규명의 핵심 쟁점은 침몰 원인이었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침몰 원인, 더 좁게는 급선회의 원인을 찾아내는 문제로 드러났다. 참사를 구성한 수많은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야 할 진상규명이, 마치 침몰 원인만 밝혀내면 되는 것인 양 보여왔다. 침몰 원인을 쟁점으로 하는 두 종의 선체조사위 종합 보고서 발표는 이런 인식을 더욱 강화한다.

그러나 설령 침몰 원인을 규정하더라도 진상규명은 끝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의 여러 단계 – 참사 이전의 규제 완화와 관리감독 부재, 참사 당시의 침몰 과정과 구조 방기, 참사 이후의 은폐 시도 등 – 에서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여전히 많다. 이번 선체조사위 조사로 모든 진실을 드러낼 수 없었기에, 더더욱 남은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를 다져야 한다.

이 때 진상규명의 남은 과제를 확인하는 일은 중요하다. 재난참사는 하나의 단일한 원인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과 결과가 연쇄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 재난참사 진상규명 과정은 재난을 구성하는 각 원인과 그 결과를 밝혀내야 하며, 동시에 그 결과들이 어떤 연쇄 작용을 거쳐 재난으로 전화했는지 역시 밝혀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의혹 제시도 음모론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진실을 향해 가는 길을 열어 둬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내인설' 그 자체를 진상규명에 대한 봉합으로 바라보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가설은 가설로, 의혹은 의혹으로, 질문은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무너진 신뢰를 재건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곧 조사를 개시할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과거의 불신과 단절하고 사회의 신뢰를 재건하는 역할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더 많은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우리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