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쓸모'에 따라 다른 국경의 장벽

[인권으로 읽는 세상]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게 난민만의 문제일까

오랫동안 캐나다에서 유학했던 친구가 돌아왔다. 이민자의 천국이라는 캐나다는 '탈조선'을 꿈꾸는 사람들이 1순위로 꼽는 나라다. 친구가 공부한 분야는 한국에서 취업 전망이 밝지 않았다. 다들 캐나다를 노래하는 상황에 굳이 '헬조선'이라는 한국에 왜 돌아오려 하느냐며 말리고 싶었다. 10년을 지냈지만 사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했다. 친구의 말에 여행자라는 위치에서 내 계획 하에 머문 경험만으로 낯선 곳에서의 시간을 낭만화했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방인이냐에 따라 다른 위치에서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난민을 둘러싼 논란으로 다시금 자각하게 됐다.

 

난민 보호가 사라진 난민 제도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 최종 심사 결과가 10월 17일 발표됐다. 9월 1차 심사 결과와 합해 362명에게 '인도적 체류 허가' 결정이 났다. '난민 인정 0명'인 이유로 법무부는 난민협약과 난민법을 핑계댔다. 난민 인정 사유인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정치적 견해라는 5대 박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법무부의 논의와 결정에 오직 살기 위해 '최악의 위기'라는 예멘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법무부는 "엄정한 신원 검증을 통한 법질서 준수 조건부 임시 체류허가 결정"임을 강조하며 여론을 안심시키는데 더 주력했다. 출도 제한조치 해제를 향한 국민 불안을 불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준법 교육과 사회 통합 프로그램 교육 시행, 체류지 파악과 관리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예멘 상황이 호전되거나 범죄사실 발견시 체류허가를 취소하겠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입장을 보면서 난민 심사에서 난민 신청을 하게 된 예멘인들의 사정보다 현재 난민 반대 여론에 대한 부담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했다. 난민을 보호하겠다고 만든 난민 제도지만, 그 보호 대상은 난민이 아니라 국민이었다.

 

인도적 체류허가로 봉합한 난민 문제

이미 이 사회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지만 없는 존재처럼 취급됐던 난민의 존재가 예멘 난민 사태로 드러났다. 난민을 이해하고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논의할 기회였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가운데, 문제는 난민 대 국민의 대립으로 구도화하면서 난민 혐오가 국민 권리로 왜곡됐다. 여론의 눈치를 보며 무엇보다도 국민 보호를 우선시한다는 정부의 태도는 이런 대립구도를 강화했다.

그렇게 4개월의 시간 끝에 예멘인들에게 '인도적 체류자격'이 부여됐다. 임시로 머물 자격을 부여한 것으로 인도적 조치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번 결정으로 정부는 국제 사회에서의 체면도 잃지 않고, 난민과 관련해 경제적·사회적 비용도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 난민 문제를 적당히 봉합했다. 그러나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전쟁의 지속과 빈곤의 확산으로 난민은 급증하고 있고 난민 문제는 장기화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는 지금도 난민 인정을 기다리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찬반 논란으로만 드러났을 뿐 우리 사회가 난민 문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쓸모'에 따라 다른 국경의 장벽

국제 사회가 함께 분담해야 할 '짐짝'처럼 난민 문제 대응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인도적 조치의 일환으로 난민 논의가 본격화되던 가운데 서방 국가들은 공산권 국가에서 이탈하는 난민들을 적극 수용하고 비호했다. 냉전체제 하에서 난민은 체제 선전과 경쟁에 있어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런 난민의 '쓸모'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 안전을 위협하고 세금과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여겨지는 난민은 이제 인도적 보호 대상이 아닌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되었고, 이에 따라 국경의 장벽은 높아진다.

쓸모에 따라 삶의 가능성이 변화하는 이는 전쟁과 빈곤으로 인해 비자발적 이주를 해야 하는 난민만이 아니다. 3D 업종이라며 기피되는 한국의 일자리는 이주 노동자들로 메워졌다. 한국의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해소할 수단으로 결혼 이주 여성 유입은 확대되어 왔다. 국가의 필요에 따라 변화하는 이주정책 속에서 여러 이유로 국경을 넘으려는 이들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만 한다.

'쓸모'가 증명될 때 국가로부터 자격이 부여되고, 어떤 자격이냐에 따라 자리가 달리 배정된다. 앙상한 제도와 차별적인 현실로 인해 배정된 자리에서 이탈하면 불법적인 존재가 된다. 불법적 존재이기에 국가의 단속과 송환, 추방은 합법적 처분이 된다. 국경 그 자체는 견고한 경계가 아니다. 그 경계는 국가의 필요에 따라 열리고 닫힌다. 더는 쓸모가 증명되지 않거나 배정된 자리에서 이탈하면 언제든 경계 밖으로 내몰린다. 이들은 그저 각종 통계자료에 숫자로만 등장할 뿐이다. 경계를 넘어온 다양한 이유와 이주를 택하며 기획했던 삶의 이야기는 사라진다.

 

난민과 함께 살기 위한 모색을 시작할 때

정부는 한국사회에 등장한 난민 문제를 인도적 체류 허가로 봉합하려고 했다. 하지만 난민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이번 일로 시행 5년이 되는 난민법의 부실함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국회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자는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정책 부재와 예산 부족으로 그간 제 기능을 못했던 난민법을 오히려 개악하거나 폐지하자는 법안들이다. 마치 그것이 국민의 안전과 권리를 지키는 방안처럼 이야기된다. 그런데 국가의 경계가 단단해지고 높아지는 것이 우리를 위한 것일까? 쓸모를 증명할 때만 열리는 경계는 경계 안의 사람들에게도 끊임없이 쓸모를 증명하도록 강요하지 않을까?

어떻게, 얼마나 난민을 막을지 골몰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난민과 더불어 살 방안을 찾을 것인가. 어떻게 논의되는가에 따라 앞으로 우리 사회가 향할 방향의 이정표가 전혀 달라지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난민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간다면,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환대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