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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안 구한 책임, 끝까지 물을 것

지난 9월 30일로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해산되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6월말 이미 조사활동 기간은 끝났다고 주장하며 파견 공무원을 철수시키고 예산 지급을 중단했다. 8월에 열린 3차 청문회가 불법이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였고 이제 특별법에 명시된 보고서 작성 기간 3개월마저 끝났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서는, 조사활동 기간에 관한 특별법 해석을 국회 법제처에 질의했다가 스스로 철회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법 해석이 그릇된 것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으니 회신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낸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진상규명을 끝내려는 의도를 상식적으로 짐작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그렇게까지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태도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못 구했다? 안 구했다! 

2014년 4월 16일로 거슬러 가보자. “살려주세요.” 세월호에 타고 있던 단원고 학생 최덕하는 119로 전화를 걸었다. 세월호 침몰이 최초로 국가에 신고된 것이 아침 8시 52분이었다. 그는 위도와 경도를 재차 물어대는 해경 때문에 구명조끼를 챙겨 입을 시간조차 놓쳤다고 한다. 그리고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나오지 못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사람들을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도대체 선장과 선원들, 해경과 구조세력들은 한 것이 없다. 

선장과 선원들이 선내 대기 방송만 계속 하면서 자신들만 빠져나온 것은 이미 충분히 알려졌다. 물론 선원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조타실이나 기관실처럼 배의 운항을 직접적으로 책임지는 선박직 승무원들을 제외한 여객부 승무원들은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숨진 이들이 많다. 배를 잘 아는 선원일수록 승객들을 방치했다. 기관실 선원들은 침몰이 시작된 후 9시 6분부터 구조되는 9시 39분경까지 모여서 대기하고 있었다. 평화롭게 죽음을 대기하고 있었다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그들 역시 승객들을 탈출시켜야 하는 책임자들이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 

어쨌든 선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원들은 형사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았다. 선장에게 언도된 살인죄는 세계적으로도 판례가 흔치는 않다고 한다. 그만큼 사건의 위중함을 사법부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04명의 목숨이 사라진 사건이 그만큼 위중하다면 구조하지 않은 해경들의 책임이 사라진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해경 123정이 현장에 도착한 9시 35분경 이미 세월호는 50도 가량 기울고 있었다. 123정을 떠난 고무단정이 세월호에 접안했을 때 선원들도 해경도 배가 계속 침몰할 것임을 알았다. 선원들은 물론, 세월호 탑승객이 350명가량 된다는 정보를 듣고 출발한 해경 역시 배 안에 사람들이 갇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승객들에게 퇴선 지시를 하지 않았다. 

해경이 가담한 범죄 

선장과 선원이 퇴선 지시 없이 자신들만 탈출한 것은 큰 범죄다. 마찬가지 이유로 해경이 퇴선 지시 없이 아무도 구조하지 않은 것도 큰 범죄다. 특히 해경이 현장에 도착한 이후의 죽음에 대해서는 해경이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 후로도 탑승객들은 모두 빠져나와 살 수 있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광주지법 재판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단 10분이면 모두 탈출할 수 있었다는 것. 

물론 해경은 자신들이 고무단정에 태운 사람이 선원인 줄 몰랐다고 주장한다. 선원들은 해경에게 자신들이 선원임을 밝혔다고 주장하는데 해경은 듣지 못하거나 몰랐다는 것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작업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설령 선원임을 숨겼다 하더라도 배 안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구조세력 누구도 배 안의 상황을 물어보거나 세월호와 직접 교신을 시도하지 않았다. 자신은 구조세력이 아니라고 하는 해경 초계기 B703호는 B511호보다 현장에 1분 빨리 도착했다. 그러나 구조하지 않은 채 다른 헬기 운행을 통제하기만 했다. 그 활동과 교신 내역을 묻자 국민안전처는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B703호는 10시 38분경 KBS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조가 된 상황”이라고 인터뷰를 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은 것인가. 이런 의문은 해경 지휘부 모두에게도 여전히 남는다. 세월호 참사 해역을 관할하는 것은 목포해양경찰서였고 바로 위가 서해청이었다. 법에 따르면 서해청장 김수현이 광역구조본부장 역할을 맡게 돼있다. 해경의 주장에 따르면 서해청장은 9시 5분에 상황실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상황실 위치상 서해청장 자리로부터 2.5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경비안전과장의 진술에 따르면 서해청장은 아무런 지휘도 하지 않았고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상황 보고를 받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과연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기는 했던 것인지……. 

구할 필요가 없었나

해경이 세월호의 상황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이춘재 당시 경비안전국장은 세월호가 계속 기우는 동안 선내에 승객들이 그대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과 같이 있었고 그도 “안다”고 진술했다가 다시 모르겠다고 번복했다. 여인태 당시 경비과장 역시 상황을 알면서도 퇴선명령이나 선내 진입 지시를 하지 않았다. 김문홍 당시 목포서장은 현장지휘자였지만 현장으로 가지 않고 부적절한 지시만 해댔다. 이 모든 사람들이 줄줄이 승진하고 김수현 서해청장이 유일하게 해임되었다. 

참고인 진술에 나선 소방안전본부, 해군 관련 인사들도 한결 같이 말했다. ‘소극적인 구조 활동’, ‘구경을 하러 간 정도’, ‘구조 시늉만’ 했다는 것이 이들의 평가다. 해경 123정 김경일 정장은 그 책임을 지고 감옥에 있다. 업무상과실치사상죄다. 과실이라기에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지점들이 너무 많다 보니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것 역시 차차 밝혀져야겠지만 123정장 외 다른 해경들이 져야 할 책임에는 이미 분명한 것들이 있다. 재판부 역시 해경 123정이 세월호 침몰 현장에 도착한 이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었고, 다만 “해경 지휘부나 같이 출동한 해경들에게도 공동책임이 있어 피고인에게 모든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취지로 감형했다. 

살릴 수 있었고 살려야 했다. 그러면 그렇게 못한 이유를 잘 따져 묻고 헤아려 밝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그냥 끝내자고 한다. 침몰 후로도 사건은 끝나지 않는다. 에어포켓을 언급하며 승객들이 있는 곳으로 공기를 주입한 것처럼 알린 것이 모두 ‘쇼’였을 뿐임이 3차 청문회에서 확인되었다. 참사 며칠 후에는 해경 123정장이 퇴선명령을 했다며 거짓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당시 해경 지휘부가 ‘초동 조치 및 수색 구조 쟁점’이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문서에 실린 거짓말 그대로였음도 드러났다. 켜켜이 쌓이는 이 거짓말들이 잘못이 아니라는 말인가. 살리지 않은 책임을 더 물을 필요가 없다는 말은 뒤집으면 살릴 필요가 없었다는 말 외에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살기 위하여 

응급실에서 환자를 방치하다가 환자가 죽었다면 환자는 병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병원 때문에 죽은 것이다. 당연히 병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세금으로, 해난사고가 있을 때 구조 활동을 벌이라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해경이 정작 아무런 구조도 하지 않아 사람이 죽었다면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쉽지 않음은 누구나 안다. 그래도 살릴 수 있었던 순간들을 최선을 다해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들이 1분 1초의 시간들을 복기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사람이라 그런 것이다. 

10월 1일, 광화문416광장에서는 세월호참사 900일 문화제가 열렸다. 대학로에서 열렸던 공공부문 총파업 결의대회와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를 마치고 행진해온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정부는 특조위가 끝났다고 우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국민의 힘으로 진상규명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범국민적 진상조사기구를 꾸릴 것이며,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염원을 뒷받침할 새로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감히 진상규명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특조위 해산에 앞장선 해양수산부 장관을 퇴진시키는 데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국가에 의해 죽임 당하는 희생자가 없도록 백남기투쟁본부와 함께 싸울 것을 천명했다. 

때로는 정부가 그저 잘 모르거나 서툴러서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경찰이 사과를 하는 데에 317일의 시간이 부족했다고 할 수는 없다. 침몰하는 배의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아 수백 명의 사람이 죽었는데 책임자를 처벌하기에 900일 가까운 시간이 부족했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정부는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나. 이 정권을 깨고라도 우리 힘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