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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어떤 참사

지난 1월 20일, 용산참사 8주기를 빌어 처음으로 마석에 있는 모란공원을 다녀왔다. 용산참사진상규명대책위에서는 해마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대절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추모를 하러 간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8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참배하러 가지 못했다는 것도 부끄러웠지만, 사실 버스를 타러 가면서부터 자기소개라도 시키면 어떻게 처음 간다고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는 사실이 더 부끄러웠다. 다행인지 몰라도 버스에 탑승하시는 분들끼리 이미 서로를 잘 알았기에 자기소개는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을 가득 태운 버스는 조용히 눈발을 뚫고 마석을 향해갔다.

마석에 도착하자마자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다섯 분의 묘에 들렀다. 유가족의 말씀을 듣고, 열사의 묘 앞에 절을 올리고 나니 버스에 타기 전 들었던 마음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는 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을까? 같은 철거민이지만 동시에 같지 않은 참사 생존자 간의 갈등, 맞춰지지 않는 기억, 몸과 마음의 고통까지 일개 관객에게 한없이 무거운 질문을 던지던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이 생각났다. <공동정범>은 용산참사를 2009년 1월 20일 망루에 함께 올랐던 이들의 시선으로 조명하며 동시에 참사 이후부터 지금까지를 담아낸 다큐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속사정을 알아도 되나? 나도 모르게 영화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마석에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부끄러운 마음, 불편한 마음은 같은 마음의 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사가 발생한 지 8년이나 지났지만 아직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고, 경찰 폭력의 책임자인 김석기는 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국회의원까지 되었다. 사실 내가 아는 용산참사는 여기까지다. 이 참사가 어떤 참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참사가 이 사회에 던진 메시지가 무엇인지, 용산에서 망가진 공동체가 어떤 것이었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어디에 분노하며 싸울 것인지까지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랬다. 8년 동안 마석에 못 간 것 자체가 부끄럽다기보다는 여전히 이 참사가 어떤 참사였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용산참사라고 하니까 한 번 가보는 것이 부끄러웠다. 영화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용산이 가리키는 문제가 무엇인지 직시하지 않았던 내가 스스로 불편했다. 다른 참사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용산은 주변에 열심히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주변에 있기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고개라도 한 번 더 돌아봤다. 하지만 마석의 수많은 열사의 묘역 앞에 나는 그저 구경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문구는 생각나지 않지만 <공동정범> 마지막에 이런 말이 나왔던 것 같다. 용산참사의 현장이던 남일당이 철거되고 개발이 시작되면서 영화를 보는 당신이 기억하지 않는다면 용산참사는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용산 8주기를 거치면서 많은 생각은 하게 되었지만, 하루아침에 어설픈 교훈을 얻었다고 이야기할 순 없다. 엊그제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의 내가 다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끝까지 기억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는 것이다. 나의 망각은 용산 참사를 또 다른 참사로 만든다. 용산만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참사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면서 동시에 기억투쟁의 과정에 놓여있다. 망각이 참사를 빚어내고, 기억이 다시 용산참사를 우리 사회로 호명한다. 참사의 진상은 그곳에서부터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놓쳐온 구체적 고민도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막연한 용산참사가 아니라 용산참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그 현재를 따라가는 과정이 없다면 여전히 용산은 그저 지나는 일에 그치고 말 것이다. 내가 바라보고 우리가 바라봐야 할 진상이 무엇인지는 용산이 무엇이었는지 고민할 때 시작되리라 믿고, 그 계기로 나는 지난 용산참사 8주기로 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