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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인권 없는 인권정책, 누가 만들었나

[인권으로 읽는 세상] 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 성소수자가 사라졌다

지난 4월 20일 법무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2022년까지 향후 5년에 대한 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National Action Plan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초안을 발표했다. 시민사회의 참여 없이 정부 정책을 열거해놓은 문서에 그쳤던 1, 2차 NAP와는 다르게 이번 3차 NAP는 올 초부터 분야별로 국가기구와 시민사회의 연속간담회를 통해 의견 수렴의 과정을 거쳐 왔다. 더욱이 이번 NAP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 만들어진 초안의 결정을 연기하며 재수립하기로 한 것이었다. 3차 NAP로 국정기조에서 '인권'을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인권 보호와 증진이라는 목표를 찾기 어려웠던 NAP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으로 불리는 NAP는 '인권의 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행동계획'의 줄임말이다. 1993년 비엔나에서 열린 유엔 세계인권대회에서 채택한 '비엔나 선언과 행동계획'은 국가인권기구의 설립과 NAP의 수립을 촉구했다. 2001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로 2006년 한국 정부의 NAP 수립이 시작됐다.  

NAP는 1차(2007~2011년)와 2차(2012~2016년)를 거쳐 이번이 세 번째다. 그러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NAP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계획도 실현되지 않으면 그만이기에 NAP의 내용만큼이나 수립 과정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가 실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정부 하에서 NAP 수립 과정에 시민사회와의 협의는 부재했고, 이행에 대한 모니터링과 평가도 부족했다.  

절차상의 문제뿐 아니라 내용적인 문제도 많았다.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노동법 개악이 근로의 권리로, 각종 통제정책이 표현의 자유로 포장되는 등 반인권정책이 인권정책으로 둔갑되기도 했다. 지속적으로 시민사회가 제기하고 국제사회가 권고해온 국가보안법 폐지, 대체복무제 도입, 사형제 폐지에 대해 정부는 '여론'을 이유로 모른 척 해왔다. 이름만 인권정책일 뿐 졸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인권의 보호와 증진을 기대할 수 없는 NAP를 시민사회는 비판해왔다.   

성소수자가 삭제된 3차 NAP 

그러했기에 이번 3차 NAP는 그 과정과 결과가 다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목차에서부터 그 기대는 무너졌다. 1,2차 NAP의 소수자 항목에 명기됐던 성소수자가 3차 초안에서는 아예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수립 과정에서 추진했던 시민사회와의 성소수자 분야 간담회 명칭이 차별금지 분야로 갑자기 바뀔 뻔한 일도 있었다. 인권정책 수립에 정부 스스로 평등과 차별금지를 원칙으로 제시했지만, 성소수자는 사라졌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모든 사람'에 성소수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정부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라는 비전에서 차별금지를 정책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현황은 "종교계 등의 이견이 큰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반동성애 혐오선동을 '이견'인 것처럼 서술하면서 "성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유보하는 것이다. 인권에 대한 의지는 보이지 않고 논란을 회피하고 싶은 의지만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침묵하는 태도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치적으로 승인하며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성소수자 인권이 '나중에'가 되면서 다른 인권의 후퇴도 이어졌다. 침묵과 외면이라는 정부의 태도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세력의 공격은 다른 사회적 약자를 향해 확대되고 있다. 성별 이분법과 위계를 넘어서기 위한 성평등도 가로막혔다. 인권침해가 다른 인권침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론 탓으로 돌릴 게 아닌 정부의 역할 

3차 초안은 오랜 시간 한국사회의 인권과제로 제기된 국가보안법 폐지, 대체복무제 도입, 사형제 폐지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유보의 이유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서, 찬반 양론이 팽팽해서 라는 식으로 여론을 탓한다.

정책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비롯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 의견들을 수렴하고 조율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가는 것은 제도화 과정에서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는 시간이 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제들은 정부 스스로 의지를 갖고 맞서야 하는 인권의 문제다.  

인권의 보호와 증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중립'적인 것처럼 여론 뒤에 숨는 게 아니다. 정부가 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인권과제가 공론장에서 더 많이 논의될 수 있도록 촉진하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권 없는 인권정책, NAP의 본질을 허물고 있다 

3차 초안에 성폭력 역고소로 이어지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예외 적용 대상 확대, 최저임금 1만원 목표 추진 및 관리감독 강화 등 지금 한국사회에서 제기되는 인권과제들에 대한 계획이 포함된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정책별로 각각 점수를 매겨 총합이 높아지는 것으로 우리의 인권이 보호되고 증진된다고 볼 수 있을까. 여론을 탓하며 인권과제에서 누락하고, 인권의 원칙을 혐오세력에 내어준 인권정책을 인권정책이라 할 수 있을까. 내용적으로 나아졌다고 해도 인권의 현장으로부터 인권정책은 더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예정대로라면 3차 NAP는 조만간 국무회의에서 다루어 5월 중 확정될 것이다. 향후 5년 우리사회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밑그림에 등장조차 못한 존재들이 있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과 인권은 양립할 수 없다. 3차 초안은 인권 없는 인권정책으로 정부 스스로 그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NAP의 본질을 허무는 현재의 초안이 그대로 확정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