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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저, 복귀했어요

온갖 부러움을 받으며 떠난 안식년. 그 부러움 때문에 안식년에 대한 기획은 부담스러운 것도 있었다. 안식년이 있는 단체들은 대부분 큰 단체들이다. 직장을 다니는 경우 안식년은 교수 같은 특별한 직업이 아니면 꿈도 못 꾸는 게 현실이니까. 그래서 잘 보내야 한다와 놀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부담이 있었던 안식년이었다. 더구나 내가 안식년을 시작한 2013년은 사랑방 20주년 행사 준비가 한창이던 때라, 미룰 수도 있었지만 미루지는 않았다. 뭔가 숨구멍이 필요했던 듯하다. 반박자의 휴지기가 내게 필요했다. 뒤도 돌아보고 옆도 볼 수 있는, 사랑방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는 그런 구멍이 내 활동에 산소 같은 걸 넣어 주리라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중간하게 20주년 논의와 행사 준비를 안식년임에도 조금 분담하면서 시작한 안식년. 그래도 안식년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안식년이 아니면 못할 것들을 하자는 게 계획이라면 계획. 그 중 하나가 악기 배우기였다.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처럼, 나이가 들수록 음악이 주는 편안함에 매료되는 게 청각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쿨레레를 몇 개월 배웠고, 음치, 박치임에도 친구사이의 G-VOICE 객원 합창단도 했다. 별일 아닌 것 같은 계획이지만 매주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서 무언가를 배우는 게 갑작스런 현안대응으로 어려운 인권활동가에게 안식년이 아니면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악기도 매일 연주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실력은 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우쿨레레를 배우는 사람들의 소모임이 생겨 유지할 수 있는 전망이 생겼다는 게 나름의 위안이다. (안식년이 끝난 후 아직 악기를 손대 본적은 없지만 말이다.^^;;)

 

내 안식년의 또 다른 계획 중 하나는 낭비하는 시간을 많이 만드는 것이었지만 그러지는 못한 거 같다. 운동을 해도 일정을 빡빡하게 짜며 열심히 했고, 책을 읽어도 세미나를 여러 개 하며 보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나란 인간’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규칙적인 걸 매우 좋아하고 책을 읽고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현안이 생겨서 누군가 부탁을 하면 외면하지 못하는 약한 마음이 있다는 것도. 그래서 원래 계획과 달리 낭비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연애도 하지 못했다.

 

 

안식년에 한 대담한 실패

 

안식년 중 나의 변화는 근시교정수술이다. 나름 몸에 손대는 것을 무서워하는 편이라 수술은 항상 고민의 대상일 뿐 결정하지 못했던 터였다. 하지만 안식년이 되자 왠지 용기가 생겼다. 어차피 나이 들면 노안이 오니, 안경 하나라도 덜 쓰자는 마음으로 수술을 했다. 수술 후 회복까지 시간이 걸리는 걸 알기에 안식년이 아니면 못할 거 같았다. 실제 수술 후 한 달은 운동도 하지 않고 어두운 실내에서 약을 넣으며 시력을 조금 사용하며 조심조심 보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수술해서인지 효과도 없고 부작용이 있는 듯, 대실패! 작은 글씨를 가까이서 보는 게 힘들고 어두운 곳에서 책읽기도 힘들다. 노안인지, 야맹증인지, 간만에 큰마음을 먹고 한 수술이 실패라 울적하다. 하지만 아직도 의사말대로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보고 있다. (왜 난 의사에게 강력하게 항의하지 못하는 것일까? 의사와 환자의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다른 실패담 중 하나는 긴 여행이다. 안식년이 아니면 가지 못할 것 중 하나가 긴 여행이니까. 여행 중 1~2개월은 해외단체에서 자원 활동이라도 할까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눈 수술이 실패해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가 어려웠다. 물론 영어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눈 수술의 실패로 조금 어두워도, 조금 글씨가 작아도 읽을 수 없는 상황이라 혼자 지도를 들고 떠나는 여행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룬 여행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과도한 책임감으로 한국을 떠나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게 했다.

 

사실 작년 8월부터 시작된 안식년은 4월 중순까지는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나름 평온하고 자유로운 날들이었다. 4월 유성희망버스기획단이나 세월호 관련 청와대 만민공동회를 한 후에는 쉬지 못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함께 논의도 하고 실무적인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래도 복귀보다는 편안한 일상이었지만. 쉬지 않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나에게 다른 일을 제안하기도 했다. 밀양 꽃보다 할매 구술프로젝트와 비슷한 르뽀 작업도 하게 됐다.

 

게다가 미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일을 벌이기도 했다.(요놈의 나쁜 버릇^^;;) 올해 KT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명예퇴직에 거부한 사람들을 CFT로 모아 일도 시키지 않고 오랜 근무를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만한 것들을 교육이라고 하면서 노동자들을 모욕했다. 괴롭혀서 나가게 하려는 계략이다. 미안한 마음에 ‘이런 괴롭힘을 수년간 당하는 KT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게 없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KT 문제를 다르게 의제화한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직장 내 괴롭힘을 연구하는 ‘공익변호사그룹 희망을 만드는 법’과 KT새노조에게 이런 조사와 연구를 한번 해보라고 했다. 연결만 시켜주는 것으로 미안함을 지워보려 했는데 ‘제안하고 빠지는 게 어디 있냐?’는 만류에 발을 빼지 못해서 결국 ‘KT사례로 본 직장 내 괴롭힘’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4개월을 쉬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얼마 전 업무 복귀를 했다. 그래도 계속 활동을 한 사람보다는 싱싱한 듯한 내 모습에 위안을 삼는다. 복귀 이후 달라진 일상은 사무실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는 것. 안식년에 자주 갔던 집회나 투쟁 현장도 처리해야 할 업무로 쉽지 않다.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자유인의 시대가 가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하는 조직활동가임을 실감하는 하루하루. 이제 복귀한 사람이지만 저에게 힘내라고 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