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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종북 매카시즘, 광풍이 불 때 어디를 볼 것인가?

우리민족끼리 가입자 공개를 둘러싼 매카시즘의 현재

지난 4월 3일 국제적인 해킹조직인 어나니머스(Anonymous) 코리아를 자처하는 곳에서 ‘우리민족끼리’라는 북한사이트를 해킹하고 회원정보를 유출한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 ‘종북 매카시즘’이 다시 불고 있다.

그동안 종북 매카시즘 광풍이 불 때, 사람들은 심리적 위축감으로 일단 피하고 보자는 생각뿐 광풍을 일으키는 제도와 담론, 정치세력에 대해 침묵하였다. 이제 광풍을 일으키는 실체를 직시해야 할 때이다. 다시 말해, 북한사이트에 가입만으로 실정법인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내사와 수사는 부당하며, 실명공개 등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사실을 짚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종북 마녀사냥’을 근본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냉전시기 미국에서 대대적인 매카시즘이 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살해되었다. 한국에서도 한국전쟁을 거치며 ‘빨갱이 사냥’의 매카시즘은 현대까지 지속되어왔다. 하지만 냉전체제가 해체된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매카시즘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더 이상 ‘사회주의 여부’나 ‘자본주의 거부’를 문제 삼는 방식은 쉽게 통용되기 어렵다. 매카시즘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도 한국 같은 군사적 긴장상태가 있는 몇몇 지역에 한정된다. 특히 2007년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거치면 신자유주의 체제, 자본주의의 실패를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상황에서 매카시즘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반공의 삼각구도가 만들어낸 종북 매카시즘 광풍

종북 매카시즘은 남북의 군사적 긴장상태와 그로 인한 북에 대한 적대감을 악용한 보수정치세력의 ‘종북의 악마화’ 담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보안법(법을 악용한 공안당국의 칼날)이 삼각구도가 만들어낸 것이다. 반공의 삼각구도는 자신이 왜 북한을 지지하는지, 또는 비판하는지를 자유롭게 말할 수 없게 만들며, 제도적으로는 온라인공간에서조차 경계를 만들 정도로 국가보안법의 위엄아래 놓여있다.

국가보안법은 국내인권단체뿐만 아니라 유엔 자유권위원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수많은 인권을 침해한다며, 개정과 폐지를 권고한지 20년이 넘는 악법이다. 북한을 이롭게 할 것이라고 간주되는(자의적인!) 표현행위만으로 이적단체 찬양고무행위(7조)로 처벌할 수 있는 만능인 법이다. 한국정부가 한반도평화체제를 지향하지 않고, 북한은 오직 물리쳐야할 적으로 간주하는 이념구도에서 ‘북한’은 언급해서도 안 되며, 심지어 온라인 공간에서조차 갈수 없는 ‘금기, 금단’의 영역이 되었다. 한국은 인터넷 최강국이고, 인터넷으로 자유롭게 정보를 오고갈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금기와 규제영역이 존재한다. 이는 2004년 한국정부는 ‘우리민족끼리’를 유해사이트로 분류하여 폐쇄조치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물론 2004년 이전에 가입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사이트 회원 가입만으로 법적으로 피의사실이 될 수 없지만, 가입자는 공안당국의 추적을 받고 사찰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른바 잠재적 범죄자가 되었다.

정부에 의해 금기영역이 된 ‘북한’이기에 ‘종북 척결’이라는 마녀사냥이 가능하다. 북한에 관한 정보를 차단하고 국가정보원 같은 정보기관만이 북한에 대한 정보를 독식하는 현실에서 금기는 북한을 미신화했고 왜곡하기 쉽게 만든다. 종북 매카시즘은 이러한 북한에 대한 금기와 혐오 속에서 더욱 만들어진다. 한국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며 폐쇄적인 나라인 북한은 극심한 기근까지 겹치며 소통불가능한 이질적인 것이 되었다. ‘정상적인’ 한국사회와 섞일 수 없는 북한을 ‘비정상적인’ 국가로 규정하고 적대시하고 격리하며 혐오하는 일은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자유로운 정보가 남북정부에 의해 차단된 상태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 여기에 보수정권의 집권으로 민간교류마저 중단된 상태는 이를 더욱 증폭시켰다.

이러한 북한을 인정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도 ‘악’으로 지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북한을 이롭게 한다거나 북한을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종북세력’을 상정하고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렇게 ‘종북=악마’로 한 종북 마녀사냥은 시작되고, 정부를 비판하거나 정부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을 종북으로 치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었다. 게다가 ‘국가보안법’이라는 제도적 무기를 모든 이에게 쥐어준다.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잠재적 범죄자들을 처단하라!” “ 그러면 여러분은 모두 법질서와 체제의 수호자가 될 것이다!” 사실 마녀사냥은 그들이 종북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마녀사냥이 그렇듯, 악은 논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화형의 대상일 뿐이다. 북한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강화하는 정부의 안보 논리는 실제 한국사회의 현 정부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집단을 공격하는 수단으로까지 사용되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종북이라며 쉽게 지칭하고 없애야한다는 보수 언론의 논리와 보수정치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더구나 최근 북한의 연평도 공격이나 3차 핵실험과 같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현실에서 북한은 한국사회를 ‘위협하는 위험요소로 분명하게 각인될 수 있었다. 한국정부가 안보를 내세우며 한국사회를 규율하고 군사화할 때 북한은 더욱 ‘위험요소’로 부각된다. 반면 한미일 군사동맹이 만들어낸 북한을 위협하고 군사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는 ‘안전’을 위한 조치로만 해석되고 수용되었다.


종북 마녀사냥과 혐오와 배제의 정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모든 사회는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야한다는 원론을 매카시즘이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매카시즘의 광풍이 3만 명의 무고한 제주양민을 학살할 수 있었던 4․3를 우리는 떠올려야 한다. 세계적으로 보수정치세력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통해 추구하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통치성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정치세력이 경제위기나 정치실패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에 ‘악’의 존재는 동지보다 더 유용하다. 그래서 그 집단이나 사람이 실제 종북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종북’이란 딱지가 붙은 순간, 스스로의 생각을 풀 수 없으며 종북 여부만을 증명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도 이러한 통치성이 대중을 움직였다. 일부 누리꾼들이 종북척결이라며 ‘죄수번호’니, ‘간첩’이니 하며 공개된 명단의 인물의 직업, 나이, 출신대학과 가족사진까지 공개하는 등의 신상털기를 하였다. 네티즌들의 신상털기의 경향과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일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인가. ‘종북 매카시즘’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나누고 우리의 생각과 자유를 어떻게 제한하며 통치하는지 분석하며 대처해야 한다.

우리와 다른 것, 지저분해보이는 것을 격리하고 배제하는 통치담론은 남북관계에도 통했다. 북한은 살기 어려운 나라이자 전근대적인 나라로서 ‘혐오’대상으로 낙인찍기 충분했다. 이전 정권에서 북한은 기근에 시달리는, 우리가 도와줘야하는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면, 보수정권 등장 이후 북한은 격리시키고 추방해야할 것으로 인식되었다. 여기에서 ‘종북 마녀사냥’의 정치가 작동한다. 한국 사회를 위협하는 ‘종북주의자’를 설정하고 이들을 추방하는 것은 깨끗한 우리, 안전한 우리를 만드는데 필요한 일이라는 정치선동에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마녀사냥에 동참하게 된다. 2007~2008년 사람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경제위기 속에서 불안의 원인을 ‘누군가’로 특정하여 차별하고 쫒아내는 혐오범죄를 전 세계가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종북 마녀사냥은 혐오와 배제의 정치를 기반으로 한 통치이다. 국가안전보장이라는 통치성은 잠재적 위험세력을 가정하고 처벌하고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융해하고 구획하며 분할한다.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 생각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종북프레임‘으로 나와 타자의 생각을 단죄하고 서로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권력이 강요하는 종북프레임을 거부하고, 불안과 공포를 기반으로 한 종북매카시즘의 희생양이 되는 자들이 저항할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하며 그들과 연대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더 이상 광풍을 피해 등을 보이지 말고 광풍을 노려보자. 그림자 같은 광풍의 허상과 실체를 낱낱이 해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