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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종전 70주년을 앞두고 일본 재무장이 의미하는 것(20150812)

올해로 조선이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지 70주년이 된다. 동시에 일본으로서는 패전·종전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전후 일본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종말을 선언하며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무력행사를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 9조를 선언했다. 그러나 올해 일본 정부가 국내외 반대 목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해온 안보법안 개정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인류 보편의 가치에 역행하고 있다. 패전·종전 70주년이 무색할 정도로 일본은 다시금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거듭 되살아나고 있다. 아베정권은 지난해 7월 평화헌법 9조에 대한 헌법해석을 바꾸더니, 올해는 안보관련 법안을 바꿔 아주 오랫동안 준비해온 재무장화를 ‘제도’로서 정비하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아베 정권은 안보관련 법제 11개(아래 ‘안보법안’)를 중의원에서 강행처리 했다. 일본 시민들이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현하며 연일 다양한 저항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아베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안보법안 11개 중 특히 무력공격사태법안은 “타국에 대한 공격이 발생할 경우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거나 자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 존립위기상태로 규정해 자위대의 무력행사를 가능(*)”하게 하였다. 가령, 일본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자국민 보호와 구출을 명분으로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은 한국 정부의 동의가 없으면 자위대를 한국에 진입시키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북에 대해서는 남한과 같이 ‘사전동의’를 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위 사진:지난 7월, 아베 정부가 중의원 본회의에서 안보법안을 강행처리한 것에 대한 항의 집회



일본이 아시아·태명양 지역에서 일으켰던 전쟁의 명분 중 하나는 ‘자국민 보호와 구출’이었다. 1874년 대만침공, 1875년 강화도 사건, 1894년 청일전쟁 등을 떠올리면 다시금 일본이 아시아를 식민지화하면서 자행하였던 만행이 한반도에서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또한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안보법안 개정은 ‘미-일 안보동맹’의 맥락과 연결시켜 보아야 한다. 최근 미-일 안보동맹의 흐름은 ‘21세기 가츠라-태프트 밀약’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통제하기 힘든 제국주의 권력이 다시금 한반도를 삼키기 위해 그 어떤 밀약을 서로 체결했는지 알 수 없다. 2015년 4월 28일 아베 수상은 미국을 방문하여 미-일간 ‘새로운 방위협력지침’을 체결하였다. 새로운 방위협력지침은 미군에 대한 일본 자위대의 후방활동 확대를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일본은 새로운 방위협력지침을 국내법으로 이행하기 위해 안보법안을 개정하고 있는 것이다. 

전후 일본이 평화헌법을 만들었던 배경은 자신이 자행한 전쟁범죄를 참회하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며, 일본 시민들의 평화를 향한 갈망이기도 했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이웃나라 시민들을 사지로 몰았을 뿐 아니라 일본 내 시민들에게도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또한, 전후 일본사회를 ‘평화국가’로 만들 수 있었던 힘은 반제국주의 전쟁 하에서도 희생과 헌신으로 ‘식민지’를 끝내겠다는 전 세계 민중들의 열망이 있기에 가능했다. 1945년 종전으로부터 3년 뒤 만들어진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들의 존엄성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평화의 기초’라고 선언하였다. 인권은 평화라는 주춧돌을 딛고서야 새싹을 틔울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아베 정권이 일본 시민들을 비롯해 동아시아 시민들의 의지를 꺾고 집단 자위권을 행사하려는 것은 100년 전으로 역사를 되돌려놓겠다는 의지이다. 아베 정권은 종전·패전 70주년을 맞이하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책임 있는 사과와 함께 다시는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아베 정권이 발표할 70주년 담화가 단지 ‘말’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전 세계 시민들이 평화구축을 향한 목소리를 더욱 높여야 한다. 

올해 초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박근혜 정부는 줄곧 일본을 향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다가, 돌연 6월 한-일 수교 재개 50주년을 축하하며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내려놓자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상생과 화해의 마음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일본이 다시금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한-미-일 군사동맹’을 염두하면서 일본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겉으로 아무리 강경한 입장을 내세워도, 실상 외교와 군사영역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유는 한국이 미-일 안보동맹에 적극 편승하기 때문이다. 광복 70주년이라는 기쁨에 취해 현재 한반도가 처해있는 상황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100년 전의 아픔과 고통을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대물림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