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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핵심 빠진 9.13 부동산 대책

부동산 시장에서 주택가격이 급등하자 지난 9월 13일 정부가 부동산 종합 대책을 내놓았다. 7월 정부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미온적인 개편안이 부동산 시장에 더욱 불을 붙인 것이다. 이에 부랴부랴 더 강한 대책으로 등장한 것이 9.13 부동산 대책이다. 사실 범위와 강도의 차이일 뿐이지 7월 종부세 개편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택을 여러 채 소유하거나 고가의 주택을 소유한 경우는 규제해서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 대책의 핵심이다. '과도한 이득'을 취하는 투기 세력은 더 이상 부동산 시장에 입장시키지 않고 실수요자 중심으로 시장을 안정화해 서민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 대책이 정부의 말처럼 서민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부동산 시장의 안정이 주거 안정을 담보하지 않는다 

정부의 말처럼 실수요자를 보호하려면 먼저 사람들이 왜 집을 갖고 싶어 하는지 알아야 한다. 월세를 내던 사람이 더 나은 주거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대출을 보태서 전세를 구하는 것이다. 주거가 안정되었다고 생각하며 지낼 수 있는 기간은 2년. 계약이 만료되면 주변 시세가 올랐다며 보증금을 올리거나 월세로 계약을 바꿔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세입자는 또다시 이사를 고민한다. 그렇게 월세 생활과 다름없이 재계약마다 이사를 다니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꿈이 바로 '내 집 마련의 꿈'이다. 운 좋게 좋은 집주인을 만나도 재개발 소식에 떠돌이 신세가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세입자에게 주거 안정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주거 안정을 바라며 집을 사려고 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빚이다. 2017년 가계 대출에서 주택담보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70%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을 사기 위해 빚을 진다는 이야기다. 내가 살 집을 사는 것이지만 억 단위 빚을 지면 투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살 수 없도록 만드는 게 시장의 구조다. 주거 안정을 바라고 집을 사든, 다주택자가 추가로 집을 구매하든 집값은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부동산 시장 안에서 실수요, 투자, 투기는 구분되지 않는다. 시장은 과열되고 전체적인 주거 안정성은 더욱 떨어진다. 

정부가 '투기 세력 근절'과 '조세 정의 실현'을 목표로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투자인지 투기인지 구분되지 않는 행위에 주거 안정을 찾는 사람들이 휘말리고, 동참하게 만드는 구조가 지금 부동산 시장이다. 여기에 과도한 이익을 노리는 행위만 잡아내겠다는 정부의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기 어렵다. 주거가 불안한 사람들의 문제는 부동산 시장의 규제가 아니라 주거 정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투기의 조건은 누가 만들었나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 주거 정책이 제대로 펼쳐진 적은 없다. 주거 안정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국가가 내놓은 답은 일관되게 '자가 소유'뿐이었다. 70년대 시작된 소위 박정희식 개발정책은 멀쩡하게 살던 사람을 철거민으로 만들고 돈 있는 사람에게만 안정된 주거를 허락했다. 대규모 개발은 끊이지 않았다. 지금의 일산, 분당 등 신도시 개발에 이어 도심 재개발 사업, 뉴타운 등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공급을 늘려야한다는 기조는 이어졌다. 집은 늘어났지만 주거는 언제나 개발, 부동산 시장, 세금 문제에 딸려오는 부수적인 요소였다. 1989년 영구임대주택의 도입과 함께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시작됐다. 주거가 시장논리가 아닌 권리의 문제로 접근될 수 있는 제도적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바뀌고 공공임대주택 사업은 축소되었다. 자가 소유로 주거 안정을 확보하라는 국가의 메시지는 억울하면 땅 사고, 집 사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투기의 조건은 국가가 만들어 왔다. 

지금 정부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자가 보유율을 높이는 것이 최고의 정책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토부 장관을 임명하며 한 말이라고 한다. 부동산 시장에서 다주택자는 내보내고, 무주택자와 1주택자만 들여보내겠다는 9.13 부동사 대책은 이런 관점을 그대로 반영했다.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조건만 달라졌지 주거 안정은 '자가'가 정답이란 메시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실수요자 보호를 내세웠지만 주거 안정을 바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세입자 권리가 주거 정책의 시작이다 

정부는 부동산 대책에 앞서 주거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 시작은 세입자 권리다. 재계약만 다가오면 '얼마나 올려 달라할까? 나가라고 하면 어쩌나' 세입자는 불안하다. 재계약에 영향을 미칠까봐 '얌전한' 세입자로 남기 위해 집에 문제가 있어도 집주인에게 말하지 못한다. 세입자는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도, 전·월세 가격을 제한할 수도 없다. 이사를 결정해도 곤란함을 겪는다.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거나, 집이 낡은 문제로 보상을 요구받기도 한다. 

집주인은 다르다. 세입자와 맺은 계약은 집을 파는 순간 지키지 않아도 되고, 세입자에게 주인이 바뀔 것이란 이야기조차 해줄 의무가 없다. 게다가 새로운 집주인은 이전 계약의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집주인의 '권력'이 세입자의 권리를 압도할 때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재산에 불과하다. '내 집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냐'는 집주인에게 세입자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주거안정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민주당도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약속했다. 하지만 정권을 잡고 내놓은 세입자 정책은 임대주택등록제였다. 임대주택등록제는 다주택자가 임대주택을 등록하고 임대 수익을 신고하면 세금혜택을 주는 제도다. 임대주택 시장을 양성화하고, 다주택자들이 4~8년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궁극적으로 세입자의 권리도 보장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었다.

정부는 임대주택등록제로 세입자가 계약을 갱신할 수 있고 전월세를 집주인 마음대로 올릴 수 없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는 어떤 집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주거 현실을 제도로 옮겼을 뿐이다. 세입자의 권리는 다주택자에게 세금 혜택을 쥐어주며 부동산 시장 규제에 반발을 잠재우는 거래 도구에 불과했다. 임대주택등록제는 세입자의 권리가 결국 집주인의 손에 달려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결국 정부는 9.13 부동산 대책을 통해 임대주택등록제의 세금 혜택을 축소했다. 과도한 세금 혜택을 줄인 것은 마땅한 일이었지만, 정작 세입자 권리를 위해 필요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임대주택등록 의무화는 대책에 언급되지 않았다. 

자가 소유는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앞으로가 걱정이다. 서울 시내 30만 가구를 짓겠다, 공적 지원 주택 100만 가구 짓겠다, 신혼부부를 위해 짓고, 청년을 위해 지으며, 그린벨트라도 풀고 짓겠다고 한다. 집이 부족하면 '짓는 것'은 중요하다.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임대주택 공급은 정권마다 재원 부족과 님비를 핑계로 흐지부지 되어왔다. 국가가 아파트를 올리겠다고 지나갔던 자리마다 투기의 장이 되었다. 최근에도 여당 국회의원이 수도권 그린벨트가 해제될 지역을 개발 정보라고 유출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마당에 세입자의 권리에서 주거정책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누구에게 들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럼에도 외칠 수밖에 없다. 부동산 문제에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당연히 세심하게 접근해야 하고 투기도 몰아내야 한다. 하지만 우선순위는 주거 정책이다. 주거 안정은 시장 논리로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주거가 불안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아파트를 세울 테니 '자가 소유하세요'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기 집이 없어도 누구나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그런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