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 이야기

차별금지법, 궤도에 올리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첫 번째 토론회

차별금지법 제정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리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올해 하반기 국회 발의를 목표로 하고 있다. 10년째 이어지는 국제인권기구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너무나 상식적인 법이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법 제정을 위해서 차별금지법의 일반적 의의를 환기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여기,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

한국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은 차별이 허용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등장하는 모순에 처하게 되었다. 2007년 “성적 지향,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이라는 7개의 차별금지 사유가 법안에서 삭제되었던 것이다. 차별금지법의 이름으로 차별이 승인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는 본격적으로 차별금지법에 주목하게 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무산된 사태는 민주화의 도전이 ‘평등’을 내재화하지 못한 채 멈춘 자리를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혐오’가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했다. 편견과 혐오에 기댄 ‘동성애 반대’는 점차 세를 불려 정치 개혁을 위한 여러 도전을 뒤흔들었다. 각종 인사청문회나 개헌 노력이 난항을 겪었다.

올해는 난민을 반대하는 무슬림/인종혐오 현상이 확산되었다. 이제 문제는 혐오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부정되는 것을 넘어 정치의 기반 자체가 허물어지고 있다. 서로 상반되는 의견이 충돌하더라도 더 나은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믿음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런데 개혁세력은 여전히 혐오의 문제를 소수자의 문제로만 접근하고 있다. 민주주의로부터 차별금지법을 구분하고, 혐오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환상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 된다. 제정이 유예되는 상황을 중단시키고 혐오로부터 민주주의를 되살려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말하는 자리, 사회가 공식적으로 듣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더 많은 민주주의의 자리를 만들 것이다.

 

차별금지법안의 개요와 의의**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이 차별을 규율하고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논의하며 준비해왔다. 차별행위를 진정할 수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의 개별적 차별금지법들이 있지만 다루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관한 실체적 개념을 확립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의 차별시정 의무를 밝히고, △차별이 규율되는 각 영역에 금지되는 행위나 필요한 조치를 규정하고, △차별행위가 발생할 때 권리 회복을 위한 효과적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사유, 차별금지영역, 차별의 유형을 통해 차별을 개념화한다. 개별법이 특정한 차별금지사유를 다루는 것과 비교할 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의 모든 사유를 담게 된다. 또한 개별 차별금지법이 주로 고용 영역에 한정된 차별을 규율하는 것과 비교할 때 교육, 재화용역 등 일상의 주요한 권리 영역으로 차별금지영역을 확장한다. 한편, 인권위법에 규정된 차별 유형을 간접차별, 괴롭힘 등으로 확장하며 명확히 규정하고 차별적인 법령이나 제도 및 관행에 대해서도 진정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마련하였다. 차별행위가 발생했을 때 어떤 차별시정권한을 갖는지도 중요하다. 국가인권위에는 시정 권고뿐만 아니라 시정명령 권한을 부여하고 소송을 지원할 수 있게 하며, 법원은 차별행위의 중지나 원상회복 등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판결할 수 있도록 한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토론자로 나온 사람들은 다양한 문제의식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말해주었다. 난민인권센터 고은지 활동가는 난민에 대한 배타적 정서가 혐오범죄로 이어지고 있지만 속수무책인 현 제도를 비판하며, 정부가 난민 심사 등의 과정에서 직접 차별행위를 저지르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2007년 차별금지사유가 삭제된 사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결성된 연대체다. 이종걸 무지개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그 후 한국사회의 성소수자 차별 실태가 더욱 폭넓게 확인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할 제도적 방안이 없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법 제정을 늦출 겨를이 없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김모드 활동가는 미투 운동으로도 드러나듯이 평등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으며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차별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노선이 활동가는 성별이라는 뿌리 깊은 차별 사유가 성차별금지법만으로 해소될 수 없음을 짚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국회와 정부가 새겨듣기를 바라며 토론회를 마쳤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말하는 일은 고역이지만 말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평등의 가치를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 뒤로 숨어 내팽개치는 일을 계속 두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 방방곡곡 캠페인’, ‘의원구함 프로젝트’, ‘평등선언 ㅇㅇ이 간다’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며 10월 20일 평등행진을 만들어갈 것이다. 광화문광장을 넘쳐흐르던 열기를 국회로 옮겨가 따져 물을 것이다. 차별금지법, 아직도 나중입니까?

 

* 토론회 <차별금지법, 궤도에 올리다>(2018.8.29.)에서 발제한 글을 인용, 요약. 

** 같은 토론회에서 조혜인(희망법) 님이 발제한 ‘2018 차별금지법안의 개요와 의의’를 인용,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