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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함께 부르는 노래라면

얼마 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사랑방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욕구’를 표현하는 여러 낱말 카드 중 제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유대·일치·연결’ 카드였어요. 유대·일치·연결이란 말에 가까웠던 경험이 언제였나 잠깐 생각해봤습니다. 지난 시간들이 휘릭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면서 2013년 사랑방 20주년 행사를 앞두고 함께 노래연습을 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우리가 함께 불렀던 노래는 민중가요 <불나비>였어요. 집회 때 많이 따라 불렀었기에 익숙한 노래니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원돋움활동가들과 함께 스무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동안 이런저런 활동을 함께 했었지만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은 낯설다고 해야 할까요, 무척 생경한 경험이었습니다.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까지 해서 젬베-기타-베이스 반주를 따라 노래를 부르는데, ‘우와, 이래가지고 행사 때 무대에 오를 수 있을라나’ 걱정부터 앞섰지요.

 

촉박한 시간 속에서 몇 차례 모여 연습을 하다 보니 따로 놀던 소리들이 모아지더라고요. 살짝살짝 엇나가던 박자도 맞춰지고요. 조금은 자신감을 갖고 소박하게나마 소프라노와 알토로 파트도 나누니 노래가 더 풍성해졌습니다. 노래도 에너지를 내며 하는 것이다 보니 몇 시간 이어지는 연습은 힘들기도 했지만, 맞춰가는 재미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맞춰가는, 재미.

 

학교 다닐 때도 이런 재미를 느꼈던 때가 있었네요. 개천절이 있는 10월에 열린다고 ‘하늘연달’이란 이름의 중창대회가 있었는데, 상금에 눈이 멀어 한 친구랑 같이 도모해보자 했던 때가 있습니다. 당시 기타 좀 치고 노래 좀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부탁하니 예선에 붙으면 생각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어찌나 얄밉던지 무조건 예선 붙자는 각오로 열심히 노래방을 다녔습니다. 웬만한 듀엣곡은 다 불러봤던 것 같아요. 근데 안 되겠더라고요. 이래가지고는 망신만 당하겠다, 어쩌면 좋을지 좀 생각해보자 하고는 과방에서 노래백과를 한 장씩 넘겨가며 기타를 치고 노래하며 놀고 있는데, 쉬러왔던 이들이 하나둘 같이 부르기 시작했어요. 한 명 한 명 늘어나더니 중창이 이런 건가 싶게 소리가 커지고 다양해지더라고요. 기타 반주자도 생기고, 각종 아이디어를 던지며 지휘자도 생기고... 그렇게 우연찮게 모인 사람들과 안치환의 <귀뚜라미>라는 노래로 결국 예선에 나가 3등인가를 했습니다. 상금은 그날 뒷풀이에서 다 썼지요. 이후 야심차게 도전했던 본선에서는 수상을 하지 못했지만, 함께 노래 불렀던 그때 그 순간은 학교생활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입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모이면 가끔 그 추억의 노래를 함께 부르곤 하죠. 귀뚜루루루 귀뚤귀뚤 귀뚤귀뚤 편곡 버전으로요.

 

일상에서 많은 시간 음악을 듣고 지내기에 아는 노래가 나오면 소리 내 따라 부르기도 하고, 뒷풀이하다가 기분이 업되면 아주 가끔 노래방에 가서 최선을 다해 부르고 나올 때도 있지만, 노래라고 다 같은 노래는 아닌 듯해요. 함께 부르는 노래가 주는 재미와 감동은 다른 차원인 것 같거든요. 저마다 다른 소리를 갖고 있는 이들이 하나인 것처럼 노래를 부르는 것, 고작 몇 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속에서 서로에게 더 집중하고, 서로를 이끌어주면서 부르는 노래는 깊은 흔적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함께 했던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흔적 말이에요.

 

노래로 연대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부러워했었는데, 그건 다른 게 아니라 ‘함께 부르는 노래’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맞춰가는 재미 속에서 나온,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를 언젠가 들려드릴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이왕이면 그 노래가 요즘 한창 듣고 있는 <Volare>라는 노래였으면 좋겠네요. Volare는 이태리어로 ‘날다’라는 뜻이래요.

 

 

때로는 세계가 고뇌와 눈물의 골짜기로 들어가버리는 수도 있지요.

고민을 버리고 구름 속으로 날아갑시다.

나의 행복한 마음은 노래해요.

당신의 사랑이 날개를 내게 주었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