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영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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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3월 02일 금요일 | |
1996 제1회 인권영화제 : 영화 속의 인권, 인권 속의 영화
날짜 : 1996년 11월 2일-8일
장소 : 이화여대 법정대 강당
주최 : 인권운동사랑방, 이화여대 총학생회
서울 인권영화제를 가진 이후 약 두 달 동안 14개 지역 도시에서 개최했다. 1백여 인권사회 단체와 6백 여명의 개별 시민 후원을 통해 모두 32편의 영화를 무료로 상영했다. 약 3만여(서울에서만 1만 5천명) 관객이 영화제를 다녀갔다.
'표현의 자유'라는 대의를 위하여 사전심의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영화를 대중 상영한 것은 국내에서 '제1회 인권영화제'가 최초이며 유일한 것이었다. 인권영화제의 이러한 정신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상영장 대여 불가 압력 등 당국의 탄압 속에서도 시민의 큰 호응 덕분에 제1회 인권 영화제는 큰 어려움 없이 축제 분위기 속에 막을 내렸다.
1997 제2회 인권영화제 : 인간을 위한 영상을 찾아서
날짜 : 1997년 9월 27일-10월 3일
장소 : 홍익대
주최 : 인권운동사랑방, 홍익대 총학생회
애초에는 10월 4일 폐막 예정이었으나 당국의 탄압으로 하루 앞당겨 폐막했다. 이후 약 세 달 동안 12개 지역도시에서 개최했다. 70여 인권사회단체와 6백 여명의 개별 시민의 후원을 통해 모두 24편의 영화를 무료로 상영. 제2회 인권영화제는 그 개최 자체가 한 편의 영화보다 더 생생하고 치열했다. 심의없이 영화를 상영하는 인권영화제에 대해 당국은 초강수의 탄압으로 영화제를 무산시키려고 애를 썼고 그 과정에서 영화제 총 감독 서준식 선생님이 구속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다음은 제2회 인권영화제의 수난과 투쟁의 일지이다.
9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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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 경찰과 홍대 당국 개막식장 봉쇄, 이에 야외에서 개막식 강행. 개막작 상영 중 학교측이 전원공급 차단, 이에 발전기를 가동해 영화제 계속. 이후 매일 전원이 차단된 상황에서 발전기를 돌리거나 쌀쌀한 날씨에도 야외 콘크리트 계단에서 영화상영. 학교 주변에선 경찰의 불심검문이 계속됨. |
10월 1일 | 경찰 새벽 1시 45분경 홍대 압수수색, 당시 총학생회 간부 2명 연행 |
10월 2일 | 경찰 발전기 압수, 국제앰네스티는 "정부의 조치는 인권영화제의 탄압이며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반 정부적인 목소리를 억누르기 위한 시도"라는 내용의 성명 발표 |
10월 3일 | 영화제 조기 폐막. 경찰이 홍대 총학생회 간부들에게 영화제 조기종결을 조건으로 조사 불가를 고려 하겠다고 함. 이에 고민하는 학생들의 입장을 고려해 인권영화제측은 조기 폐막 선언 |
10월 5일 | 인권영화제 상영대작 '쇼아' 앵콜 상영(민예총 강당) |
10월 6~9일 | 명동성당 입구에서 당국의 영화제 탄압에 항의하는 야간 '거리상영' |
10월 17~19일 | 명동 향린교회에서 당국의 탄압으로 영화제에 오지못한 시민들을 위해 '연장상영' |
10월 23일 | 인천영화제 개막을 시작으로 각 지역에서 인권영화제에 대한 탄압 이어짐. 상영장 단전과 봉쇄, 관 계자 연행 및 경찰 출석 요구 등으로 상영중지와 조기 폐막이 강요됨. |
11월 4일 | 서준식 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전격체포, 인권운동사랑방 압수수색 |
11월 5일 | 서준식 집행위원장 영장실질심사 없이 구속. 사전심의를 받지 않고 인권영화제를 개최해 <레드헌트 > 등을 상영한 것에 대해 음비법, 국보법, 기부금품모집법 및 보안관찰법 위반 등이 적용됨 |
11월 13일 | 서준식 무죄석방 공동대책위원회 발족/이적표현물로 시비된 <레드헌트> 전국동시다발 상영돌입/ 이적성 규정에 맞서 영화과 교수, 현대사학자, 법학자 등 전문가 의견 개진 운동 시작 |
11월 15일 | 인권영화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 수여하는 <민족예술상> 수상 |
11월 28일 | 서준식 집행위원장 기소 |
12월 8일 | 서준식 집행위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와 인권위원회가 수여하는 수상 |
12월 30일 | 서준식 집행위원장 첫 공판 |
98년 | |
2월 5일 | 서준식 집행위원장 보석으로 석방 |
2월 17일 | 서준식 집행위원장, <씨네 21>영화대상 수상 |
2월 22일 | <레드헌트> 98 베를린 국제 영화제 영포럼 부문 상영 |
5월 | 서준식 집행위원장, 미국의 인권단체 Human Rights Watch에서 수여하는 수상 |
1998년 제3회 인권영화제 : 야만을 넘어 인권의 세계로
날짜: 1998년 12월
장소 : 동국대학교 학술문화회관
주최 : 한국인권단체협의회, 인권운동사랑방, 동국대학교 총학생회
집행위원장의 구속과 보석, 재판에 계류 중임에도 불구하고 인권영화제 집행위원회의 에서는 3회 인권영화제 개최를 결의했다. 이후 준비 과정에서 예년보다 훨씬 많은 1백50여 편의 작품이 물망에 올랐고, 인권영화제의 투쟁을 지지해 준 세계 여러 나라의 영화인과 단체들의 지지와 협력을 얻을 수 있었다. 98년 6월 10일에는 1,2회 후원회원을 초청하여 중국 천안문 학살을 담은 <태평천국 의 문> 시사회를 가졌으며, 두 주간 뉴욕에서 열리는 뉴욕인권영화제에 관계자를 파견하여 후보작 섭외를 하는 등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35편의 상영작이 15개국에서 출품되었다. 개막작은 아이티의 민중투쟁사를 다룬 장 편서사다큐멘터리 <레지스탕스>로 선정되었으며 역사 속에 묻혀있는 칠레 민중연합정권을 불어낸 <칠레, 지울 수 없는 기억>이 폐막작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영화제 기간 내 내 화제가 되었던 작품은 칠레 민중연합정권에 대한 필름보고서이며 3영화를 대표하는 <칠레전투>. 이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영화제 3년의 역사 중 가장 뜨거웠다.
인권영화제는 IMF상황을 살아가는 고난의 민중들을 위해 "신자유주의와 도전하는 민중들" 을 주제로 한 특별기획전을 마련해 상영했다. 멕시코 사파티스타운동을 다룬 <치아파스>, 마이클 무어의 신작 다큐멘터리 <빅원>, 세계은행의 지배전략을 파헤친 <우리친구 월드뱅크>, 98년 국내 노동운동을 뉴스릴 형식으로 담은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희망으로 전진! 1998> 등 모두 8편을 상영하였다.
1999년 제4회 인권영화제
날짜 : 1999년 11월 26일-12월 2일
장소 : 동국대학교 학술문화회관
주최 : 인권운동사랑방, 동국대학교 총학생회
국내 14편, 해외작 29편을 53회에 걸쳐 상영했다. 이 중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은 작품은 개막작 <모든 권력을 민중에게>를 비롯해 <에스코바의 자살골> <소코로 노브레-삶은 어딘가에> <슬픔과 연민> <독방의 활력>과 <국가범죄-레드헌트2> <민들레> <무명천 할머니> <열대야> 등이었다. 99년 인권영화제가 처음으로 제정한 '올해의 인권영화상'은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장편 다큐멘터리 <열대야>에게 그 영예가 돌아갔다.
제4회 인권영화제에서는 몇가지 부대행사도 곁들였다. 먼저 개막작에서 소개된 무미아 아부자말의 석방운동으로 '미대사관에 항의 엽서 쓰기'를 영화제 전 기간동안 벌여 총 500여통의 엽서를 수거했다. 또한 21세기 인권운동을 진단하는 자리로 인권활동가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21세기 인권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마련했으며 11월 30일 시애틀 민중행동에 맞추어 '투자협정 WTO뉴라운드 반대 민중행동'이라는 섹션을 마련해 영화상영과 뉴라운드 설명회를 가졌다.
2000년 제5회 인권영화제
날짜 : 2000년 10월 27일 - 11월 1일
장소 : 이화여자대학교
주최 : 인권운동사랑방,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
총 20편의 해외작품이 상영되었다. 올해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개막작인 스위스 감독 리차드 딘도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 볼리비아 일기>이다. 그 외에도 총 19편의 해외작을 상영했는데, '미국의 얼굴' '미디어와 인권' '평화의 훼방꾼 미군기지' '억압받는 사람들 - 세계민중' 어린이를 위한 시간으로 <어린이 권리를 위한 만화시리즈>을 상영했으며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조명하기 위해 <제9법안 찬반투표>을 특별상영했다. 올해의 인권영화상은 현대중기의 고용승계 투쟁을 다룬 <인간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5회 인권영화제에서는 ‘범죄보도와 인권’ '평화의 훼방꾼‘, '동성애자의 인권을 이야기하자' 등의 부대행사를 마련했다. 가장 인기있는 이슈는 '동성애자 인권'이슈였다.
국내작품의 모든 감독을 초청했으며 외국작품의 감독으로 <착한 쿠르드 나쁜 쿠르드>의 케빈 멕키넌과 <바그다드의 비가>의 사예드 케도가 참석했다. 재정의 어려움으로 영화제는 외국에서 감독을 초청할 수 없었는데 이들은 자비로 영화제에 참석하겠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관객과의 의미있는 만남이었다. 이번영화제에 다녀간 관객은 약 12000명이며 50여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영화제를 함께 만들어갔다.
2001년 제5.5회 인권영화제 : 다시보는 명작선
날짜 : 2001년 5.18-23
장소 : 일주아트하우스 , 아트큐브
주최 : 인권운동사랑방
이번 인권영화제는 5.5회라는 다소 이채로운 회수를 붙였다. 의미를 따져보자면 지난 5년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의 변화를 모색해 보자는 뜻. 그래서 6회로 나아가지 않고 그 사이에 잠시 머무는 것이다. 5년 동안 숨차게 달려온 인권영화제는 이제 온고지신의 지혜가 필요한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 19편의 '다시보는 명작선'은 96년부터 시작된 인권영화제를 일별하는 좋은 기회였다. 96년부터 작년까지 5회 동안 상영된 작품은 모두 162편. '명작선'의 선별은 먼저 관객의 찬사와 영화적 가치가 뛰어난 수작들을 골라봤다.
무엇보다도 올해 가장 큰 변화는 매년 가을에 개최하던 것을 봄으로 옮긴 것이며 처음으로 극장에서 개최한 것이다. 가을에는 인권단체가 담당해야 할 많은 인권현안들이 있어 영화제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며 가을에 수많은 영화제들이 잇달아 열리기 때문에 시기를 조정하기로 결정한 것.
2001년 프로그램은 대체로 좋은 평가를 얻었다. '명작선'이 혹시나 재탕의 이미지를 주지 않을까 우려했었는데 오히려 감상기회를 놓친 많은 분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특히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칠레전투> <대지의 소금> <하비밀크의 시대> 등은 좌석수의 두 배가 넘는 관객들로 가득 찼고, 극장 바깥에 설치해 둔 TV모니터 앞에도 관객들이 빼곡이 들어앉은 진풍경을 남기기도 했다.
명작선 이외에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해묵은 분쟁을 고찰해보는 이슈포커스에도 많은 분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명작선과 달리 모두 이 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 개막작 <세 개의 보석이야기>를 비롯해 11편의 영화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독립영화인들이 제작한 '생생한 그 곳의 현실'들이었다. 특히 이 지역의 유혈사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때였기에 더욱 시기적절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02년 제6회 인권영화제 : 전쟁과 인권
장소 : 서울아트시네마, 아트큐브
주최 : 인권운동사랑방
2002년 5월 30일부터 6월 5일까지 제6회 인권영화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월드컵의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짓눌리지 않고 많은 관객들이 영화제를 찾아주셨습니다. 자체 집계한 관객수는 7일 동안 2개 극장에서 약 5천 6백 명이 다녀갔다.
상영작은 모두 해외 25편을 비롯해 국내 10편등 총 35편이었다. 올해 영화제의 주제는 "전쟁과 인권"이었다. 지난 세기부터 현재까지 인도주의의 허울을 쓴 전쟁 발발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인권영화제는 전쟁으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세계 민중들의 상황을 살펴보려 한 것이 주제 선정 배경. 모두 8편의 해외 작품이 전쟁으로 짓밟힌 인간의 존엄에 대해 아픈 자각에 대해 소통하려 한 작품이었다. 10편의 한국영화를 상영할 때마다 작품을 만든 감독들이 직접 참여해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습니다. 올해의 인권영화상은 <먼지, 사북을 묻다>(감독 이미영)에게 돌아갔다.
2003년 제7회 인권영화제 : 이주노동자의 인권
날짜 : 2002년 5월 23일- 5월 28일
장소 : 서울아트시네마, 아트큐브
주최 : 인권운동사랑방
7회 인권영화제는 5월 23에서 28일 서울아트시네마와 아트큐브에서 열렸으며 약 5천여명의 관객이 영화제를 찾았다. 2003년은 1990년 유엔에서 채택, 발효 예정인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에 한국정부의 가입이 관심을 끌고 있는 해이다.
국제협약 가입이라는 시의성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는 그간 꾸준히 사회 문제로 대두되어 왔다. 따라서 7회 영화제에서는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이주노동자 문제를 드러내며 이를 통해 인권의 보편성 속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를 조명했다.
특별히 7회 인권영화제는 <제작 지원 프로젝트 -옴니버스 ‘여정’>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총 4편의 단편으로 구성됐다. 이주노동자들의 억압과 설움이 응축되어 있는 매 작품마다 관객들은 울고 웃기를 반복했고 관객들로부터 좋은 방향을 얻었다.
2004년 제8회 인권영화제 : 감옥의 인권
날짜 : 2004년 5월 21일- 5월 26일
장소 : 서울아트시네마, 아트큐브
주최 : 인권운동사랑방
2004년 인권영화제는 5월 21일부터 26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와 아트큐브에서 열렸으며 약 5천 여명의 관객과 만났다.
2004년 인권영화제의 주제는 ‘감옥의 인권’이었다. 한 사회의 감옥 현실은 그 사회의 인권 지표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에게 무슨 인권이냐"는 왜곡된 인권의식 속에서 감옥에서 벌어지고 있는 처참한 인권 유린은 방치되기 일쑤이다. '죄를 지은 것'이 인권을 침해당하는 조건이 될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고, 그것은 갇힌 자들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이 감옥 인권 운동의 출발점이다. 이에 제8회 인권 영화제에서는 감옥의 인권을 다각도에서 고찰하는 영화들을 선보였다.
8회 인권영화제에서는 총 46편의 국내외 작품을 상영했다. 해외 작품은 개막작인 <아나의 아이들>을 포함 26편이며 국내 작품은 올해의 인권영화상을 수상한 <노들바람>을 포함하여 20편이다. ‘감옥의 인권’, ‘해외 프로그램’, ‘국내 프로그램’, ‘비디오로 행동하라’ 등 총 4가지 섹션으로 나뉘었다.
부대행사로는 영상을 통해 '감옥의 인권'을 만나는 것 이외에도 모형감옥 안에서 '체험'을 해보는 부대행사가 있었다. 우리는 현재의 평균적인 '감옥'의 모습을 최대한 가감없이 재연하여, 관객과 함께 한국감옥의 현주소에 대하여 소통했다. 참여를 희망하는 관객들에 한해 모형세트 안에서 수감 체험을 시행하였고, 국제기준에 의해 폐지가 권고됐으나 아직도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사슬 등 계구 착용을 시범했다. 또한 영상을 통해 만나게 된 '인권'을 좀더 폭넓게 공유하기 위하여 '인권 먹고 쑥쑥 커!' 나무가 있다. 여기에 영화를 보고 느낀 소감이나 인권영화제에 전하고 싶은 말들을 관객들이 열매로 만들어 달아주는 형태였다. 제8회 인권영화제에서는 인권 영화로부터도 소외되어 왔던 장애인들에게, 인권 영화에 대한 턱을 한 단계 낮추고자 노력하였다. 해서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한 노력들 역시 이뤄져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5년 제9회 인권영화제 : 어린이, 청소년의 인권
날짜 : 2005년 5월 20일- 5월 26일
장소 : 서울아트시네마, 아트큐브
주최 : 인권운동사랑방
9회 인권영화제는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을 주제로 서울아트시네마(구 허리우드 극장)에서 열렸다. 9회 영화제에서는 반세계화,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 반전, 반핵평화, 아프리카의 인권 등 다양한 이슈에 천착한 작품들 등 총 20여편의 해외작품과 10여편의 국내작품들이 상영됐다. 또한 '사레가마송과 이반검열이 사전제작 지원작으로 좋은 관객의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올해 영화제의 주제 덕분인지 어린이들의 참여가 두드러졌으며, ‘청소년 인권운동, 미래를 본다’라는 제목으로 청소년 인권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토론회가 부대행사로 열리기도 했다. 올해의 인권영화상은 현실적인 장벽이 산재해있는 가운데 저항행동을 멈추지 않는 한 농민의 행보를 진정성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성찰한 작품 <농가일기>가 수상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역시 장애인 접근권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시각 장애인 분들을 위하여 3편의 작품에 작품 해설을 더빙하였고, 점자 해설책자를 발행했다. 또 청각 장애인들의 접근권 확보를 위해 개폐막식, 감독과의 대화 시간 등에 수화 통역을 실시했다.
2006년 제10회 인권영화제 : 아시아 민중의 인권현장
날짜 : 2006년 5월 6일- 5월 13일
장소 : 서울아트시네마, 평택 대추리
주최 :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영화제 10년, 저항의 스크린은 꺼지지 않는다
96년 표현의 자유 쟁취, 영상을 통한 인권의식과 인권교육의 확산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11년을 달려온 인권영화제가 10회 인권영화제를 개최했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1회 인권영화제 관객의 바램처럼 인권영화제는 고비고비를 많은 분들의 성원과 지지 속에서 넘기며 지난 11년 동안 멈추지 않고 ‘저항의 영사기’를 돌려왔습니다. 1회부터 9회까지 총 308편의 영화가 상영되었고, 상영시간만 21,251분에 달합니다. 이는 여전히 우리가 넘쳐나는 ‘인권의 홍수’ 속에서도 척박한 인권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서 꺼질 수 없는 저항의 스크린을 가지고 인권운동사랑방은 2006년 5월 6일부터 1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14일 평택 황새울 대추리 초등학교)에서 인권영화제를 개최했습니다.
10회 서울 인권영화제의 주제는 ‘아시아 민중의 인권현장’이었습니다. 관광과 투자, 개발과 가난의 나라로만 우리에게 익숙한 아시아에 카메라를 초점을 맞추며 그들의 현재가 어떠한 과거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전쟁과 분쟁, 그리고 일상에 파고든 가난과 차별, 소외 속에서 ‘살아있는 침묵’을 강요받고 있는 중국과 버마,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민중의 삶의 현장을 스크린을 통해서 만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10회를 맞이해 ‘다시보고 싶은 인권영화 회고전’ 특별상영의 자리가 마련되었고 ‘아시아 민중의 인권현장’이라는 주제에 걸맞는 문화행사( 사진전- <버마, 희망을 말하다>,작은 문화축제- <아시아, 또 다른 우리>, 영화 밖 이야기 마당 <버마 가스개발, 무엇이 문제인가>)를 열어 버마 현지 활동가와 국제 인권단체 등이 참여한 소통의 장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저항의 영사기의 마지막 상영관은 평택 황새울이었습니다. 평화바람과 함께 인권영화제는 14일 상영관을 평택 대추리로 옮겨 팽성 주민들과 함께 인권영화제를 개최했습니다.
2009년 제 13회 인권영화제: 표현의死 나는영화, 자유를 찾다
인권영화제, 촛불 광장에 서다
2009년 13회 인권영화제가 6월 5일(금)부터 7일(일)까지 청계광장에서 열립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전검열을 거부해왔던 인권영화제는 현행 ‘영화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이 정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상영등급분류면제추천’을 받지않고 상영해 왔습니다. 그러나 작년부터 극장 측은 영진위의 추천을 받지 않으면 대관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결국 작년 12회 인권영화제는 영화 심의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영비법 개정 운동의 필요성을 알리면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인권영화제를 치뤘습니다.
영화를 통해 인권의 가치를 나누고 인권의 홀씨를 날리고 싶었던 인권영화제는 올해 13회를 맞이하면서 또다시 거리로 나섭니다. 촛불의 광장이었던 청계광장에서‘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13회 인권영화제 판을 엽니다. 촛불 민주주의의 상징인 청계광장에서 관객을 만날 것입니다. 수많은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할 일이 많아 보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한 인권영화제의 힘찬 난장을 지지해 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