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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거리는 사랑방] 조직의 문화로서 반성폭력 혹은 여성주의

2006년에 사랑방 돋움활동가가 되고 처음 참석한 총회에서 성차별금지 및 성폭력사건 해결을 위한 내규 개정 안건이 논의되었다. ‘섹슈얼리티’라는 단어를 내규 전문에 넣는 것 등에 대한 논의였는데 참 긴 시간을 그 의미 등에 관한 토론을 하였다. 그런 논의를 진지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래도 사랑방에 들어오길 잘하였다.’고 느꼈었다. 그 뒤로도 사랑방에서는 두 번 더 내규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사랑방 내규가 정리되었다.

그 뒤로 7년이 흘렀고, 사랑방 돋움활동가로서 두 해 사랑방 성폭력반대위원회 수임을 맡았다. 그러면서 점차 내규가 문서 이상의 그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참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작년에 다른 단체에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공개 토론회를 하면서 사랑방에 패널 섭외가 들어왔었다. 당시 성폭력반대위원회 위원이었지만 내부 논의 끝에 결국 패널을 정중히 거부했었다. 그 단체에서는 내규가 있고, 나름의 노하우가 있을 테니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실제 내규를 적용한 사례는 한 번밖에 없고, 우리가 그런 평가를 듣기에 조금은 민망해서랄까.

사랑방이 성폭력 문화에 대해 고민을 하느냐고 물으면 예전에는 그래도 내규가 있고 반성폭력위원회도 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말이 입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점차 ‘우리가 참 많이 부족하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경험들을 하게 된다. 언젠가는 반성폭력 교육의 주제가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한 활동가가 교육 중 “우리 안에는 동성애자가 없는데 이런 내용을 너무 깊게 파고들 필요가 있느냐”라는 요지의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 활동가도 활동하면서 생각에 조금 변화가 온 것 같지만, 내규 상 매년 두 번으로 정해져 있는 반성폭력 교육을 줄였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고, 몇 년째 반성폭력위원회의 기조가 ‘기본에 충실하자’로 정리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활동가들 자신들이 맡은 활동을 해나가는 데도 버거운 상황에서 가장 쉽게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 반성폭력위원회 활동이 되곤 한다.

사랑방이 내규를 제정하게 된 배경은 사랑방도 성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당시의 경험 때문이다. 내규가 생긴 뒤 그 적용을 받은 사건은 예전 자원활동가가 관련된 외부(?) 사건 하나뿐이었다. 한때는 새로 들어오는 자원활동가를 위해 별도로 내규를 프린트해서 나누어주거나 사무실에 내규를 크게 프린트해서 붙여놓거나, 팀별로 반성폭력위원회가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서 내규의 의미에 대해 교육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자원활동을 신청한 분들에게 내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거나, 프린트된 내규를 나누어주는 것 이상의 무엇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성폭력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것이 성폭력 사건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는 것을 많은 활동가들도 인식하고 있다. 반성폭력 교육이 단순한 금기나 조심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공존이 가능한 문화를 위한 고민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여기는 활동가가 있는 한편, 성폭력 금지를 넘어서는 교육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활동가도 있는 등 현재 사랑방에서 반성폭력위원회의 상에 대한 스펙트럼은 다른 공간과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그리고 만약 공동체 혹은 조직 문화와 반성폭력 문화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해도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그것을 고민할 시간이 있을지 주저하게 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래도 작년과 올해에 반성폭력 교육 주제를 ‘공동체와 성폭력과 공동체 문화’, ‘다시 돌아본 사랑방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와 같이 정해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내가 여성주의 혹은 반성폭력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려 하였을 때는 이론적으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 모순된다는 머릿속의 의식적인 노력이었다. 마치 학생회 선거를 하면 한 페이지는 넣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의 그 수준이었다. 그 뒤 우연한 계기가 여성주의라는 것을 단순히 이론이 아닌 삶의 고민으로 이어오게 되었다. 아직 내가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듯 우리 사랑방도 다른 단체들에 비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만, 그것을 하나의 문화, 삶의 고민으로 가져가기에는 많은 과정이 남은 것 같다. 20년을 맞은 지금 우리가 그런 고민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 나갈 계기가 앞으로 계속 이어지길 바라본다.
덧붙임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