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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거부하는 교육부(20150401)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서 성소수자 관련 교육을 제외한 교육부 지침

학교라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교사, 학생, 행정직 노동자, 식당노동자, 경비노동자 등 다양한 구성원이 살아간다. 그들은 다양한 정체성으로 구성된다.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학교폭력 가해자 또는 피해자, 공부를 잘하는 학생 또는 못하는 학생, 부모가 부자인 학생부터 경제적 약자인 학생 등 모두 명시할 수 없지만, 학교라는 공간을 구성하는 정체성들은 매우 다양하고 교차적이다. 그리고 이 다양한 정체성들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 만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며, 연대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다양한 구성원 중 누군가가 배제되는 공간은 어떤 공간일까? 1990년대 장애인 이동권 투쟁 이전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았다. 많은 장애인은 시설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장애인이 거리에 나오면 사람들은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는 자신을 향한 시선에서 '일터에서 밀어내는 힘'을 마주한다는 휠체어 장애인의 이야기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7년이 된 한국사회가 가진 배제의 현실을 보여준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보자. 경쟁이 가장 큰 목표가 된 한국 교육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밀어내야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이다. 자신의 학교로 전학을 와 1등의 자리를 빼앗은 남자주인공을 유혹해서 성적을 떨어뜨리려 한 '드라마 스페셜 중학생 A양'의 모습은 막장이 아닌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와의 연대는 쉽지 않다. 이들은 도리어 누르고 밀어내기 쉬운 존재이다.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45.1%가 차별이나 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날까 봐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모습에서 이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연대'와 '서로의 돌봄'을 이야기하는 학교는 지금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도리어 경쟁에서 승리하고 남을 밀어내는 법만을 가르치라 한다.

이 같은 현실에서 지난 3월 29일 교육부는 체계적인 성교육을 위한 '성교육 표준안'을 새로 도입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일선 수업에서 제외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학교에서 배제되고, 차별받기 쉬운 '성소수자'에 대해 교육부가 앞장서 이들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교육의 모습은 이 지침에서도 드러난다.


성소수자를 밀어내려는 보수세력의 교육 정책

2011년 10만 명의 주민발의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시의회에 상정되자, 교총 등 보수 성향 단체와 보수기독교 세력은 집단적으로 반발하였다. 이들은 학교가 붕괴될 것이라 하고, '성소수자'와 '임신·출산'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은 비윤리적이라 비난하였다. 또한 동성애는 죄악이라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이후 청소년 활동가·인권활동가·성소수자 활동가의 농성과 사회적 지지에 의해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제정되었지만, 혐오세력과 보수세력은 이에 대한 훼방을 지속하였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교육부의 대법원 무효확인소송으로 이어졌고, 전북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도 어려움을 겪었다. 성소수자 혐오세력은 학생인권조례의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금지를 삭제하라고 지역사회를 압박하였다. 

교과서에 대한 공세도 이어졌다. 2013년 한기총, 미래목회포럼 등으로 구성된 '동성애조장 교과서문제 대책위원회'에서는 "성소수자가 차별에 노출되고 있고,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과서 내용에 대해 시정을 촉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으로 여론을 형성하였다. 이는 단지 일부 기독교계만이 아니었다. 현 교육부 장관인 황우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해왔으며, 2013년에는 '한국교계 교과서, 동성애, 동성혼 특별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번 교육부의 지침은 2007년부터 이어져 온 혐오세력과 보수세력이 추구하는 가치 발현의 하나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교육 정책을 통해 드러나는 보수세력의 가치

보수세력은 집권 이후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교육에 반영해왔다. 이는 집권세력이 사회에 반영하는 정책과도 그 궤적이 맞닿아있다. 2012년 MB 정부는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기재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는 MB 정부가 추진한 ‘법치주의’와 궤적을 같이 했다. 집회․시위를 담당하는 경비경찰의 숫자는 대폭 증가했고, 용산참사, 쌍용차 강제진압이 발생했다. 강력한 권위를 행사하는 방법은 권위에서 요구하는 바에 어긋나면 강력하게 처벌하고 '누군가'를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방식이었다. 학교 폭력이 문제라면, 이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그 무엇보다도 이와 얽혀있는 사람을 추방하려 했다. 마치 정리해고와 막개발이 문제였던 쌍용차와 용산에서 도리어 그곳의 사람들을 물리력으로 몰아낸 것처럼.

박근혜 정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출범 이후 집권세력은 지속적으로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발언을 이어갔다.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 시키려 했고, 2013년에는 뉴라이트 계열 교학사에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교과서를 발간했다. 단지 이 문제가 집권세력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친일과 독재의 과정을 삭제하고, 어떠한 수단으로든 우리의 경제가 성장하다면 그것은 필요하다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정당성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저임금 노동이 증가해 사람들의 삶이 불안정해져도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의 가치와 맞닿아있다. 

또한 '안녕들하십니까'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학교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났다. 2013년 겨울, 곳곳에 붙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통해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손을 건넸다. 이와 같은 대자보가 전국적으로 열풍을 불자 경찰은 대자보를 통제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SNS으로 도는 유언비어에 선제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이와 동일한 대응을 이어갔다. 교육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학교에서 차단하라는 지침을 내린 교육부는 세월호 유언비어를 처벌하겠다고 하였으며, 2014년 9월에는 전국의 교원들에게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노란리본을 달지 말라고 지침을 내렸다. 정부를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차단하려는 집권세력의 모습은 사회와 학교 모두에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보수세력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어떤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를 추방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차단한다. 일제고사를 통해 성적에 따라 누군가는 교육과정에서 배제된다. 기존의 배제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면 밀어내거나 사라지게 한다. 사람들이 함께 하지 못하도록 경쟁시킨다. 사회의 모습과 똑같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거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법이 사라지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보수세력은 학교 또한 그렇게 되길 요구하고 있다.


성소수자 관련 교육을 제외한 교육부 지침에 함께 싸워야 할 때

3월 29일 교육부 지침은 학교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의 존재가 또 한 번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과연 이 지침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는 감각적으로 이와 같은 지침이 단지 성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님은 알 수 있다. 어떤 누군가가 배제되는 순간, 배제의 합당한 근거가 만들어지고 그 근거를 바탕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배제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집권세력이 성소수자를 배제하려고 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에 대한 대응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소수자만의 싸움이 되는 순간, 우리의 연결고리는 약화된다. 성소수자들이 배제에 맞서는 싸움을 벌일 때 우리 모두 그곳에서 함께 하자. 이와 같은 싸움은 '누군가'를 배제하고 삭제하고자 하는 보수세력과의 가치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