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가의 편지

소름 돋는 머뭇거림

저는 꽤나 우유부단한 편이라, 뭔가 선택을 깔끔하게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뭘 먹지? 어떻게 하지? 등등 머뭇거리다가 때를 놓치는 경우도 많았지요. 누구나 어떤 결정을 하려고 고민하는 중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보냈던 경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을 요새는 결정장애라고 부른다지요. 큭큭.) 그런데, 이번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조금 무서워졌습니다.

전염병을 완전히 막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감염 관련 병원을 공개하는 것이 감염 전파를 막기에 더 좋을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정부가 메르스 대응에 뭉그적거리면서 여러 번의 좋은 기회를 놓쳐버린 것은, 단순히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려 몹시 난처했기 때문만은 아니어 보입니다. 사람들이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그렇게나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보였던 그 머뭇거림에는,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까지 알 수는 없겠지만, 삼성서울병원이라는 거대재벌병원의 체면과 이익이었을 수도 있고, 박근혜 정부의 권위적인 의사소통체계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두려움을 느꼈던 것은, 나의 삶이, 나의 생명이 고작 그런 이유들과 동일한 저울 위에 올려져 저울질당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부가 그렇게 저울질하고 있는 동안에 메르스 감염은 더 널리 퍼졌고, 더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세월호 침몰 때에 보였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공백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합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정부는 구조에 손을 쓰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수백 명의 생명을 잃었습니다. 저는 무섭습니다. 지금 정부와 새누리당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검찰/경찰/국정원 같은 공안세력, 거대 재벌들에게는 나 같은 사람들의 삶과 생명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들이 머뭇거리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동안, 나의 삶이 돌이킬 수 없는 절망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오히려 공안세력들은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날뛰고 있는 것도. 후덜덜하군요.)

전 세계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앞으로 한국사회에도 더 큰 사건/사고, 더 큰 위기가 올 테지요. 그때마다 저이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할 것이고, 그때마다 정말 다양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인권을 갉아먹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권을 지키는 방법은 우리가 '함께' 이 험난한 시절을 버티어내는 것뿐일 텐데, 부디 한국사회가 소름 끼치는 공포영화 그 자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 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