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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4.16인권선언, 함께 만든다는 것

“회의 두 번만 참석하면 돼요~” 4.16인권선언 추진단 참여를 제안하며 했던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닌데 속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4.16인권선언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토론을 시작하고 토론을 마무리하는 두 번의 회의가 그리 가벼운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도 충분히 짐작하지 못했다.

두 번째 회의가 11월 28일 열렸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 2차 전체회의. 1차 전체회의가 7월에 열렸던 터라, 예닐곱 명씩 모여서 수백 명이 토론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은 훨씬 수월했다. 원탁을 배치하고 등록을 준비하는 일에는 요령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함께 만든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무거웠다.

백인백색 토론이 펼쳐지다

토론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차 전체회의와 그 후 진행된 100여 회의 풀뿌리토론 결과를 바탕으로 초안이 마련되었다. 2차 전체회의는 초안을 검토하는 자리였고, 의견을 풍부하게 듣기 위해 각자 가까운 문장과 먼 문장을 뽑아보는 것에서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바로 그 말, 주위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며 많이 했던 말, 지금 현실에서 절실하고 절박한 말들이 가까운 문장이라면, 잘 와 닿지 않거나 잘 읽히지 않거나 뜻을 잘 모르겠는 말들이 먼 문장으로 뽑혔다.

모둠별로 진행된 토론 결과를 초안 수정에 반영하기 위해 다시 모았다. 누군가에게는 가까운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먼 문장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잘 모르겠는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절실하다고 손꼽히기도 했다. 전체적인 구성에 대한 의견부터 단어 하나에 대한 의견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모였다. 그러니 이 결과를 바탕으로 초안을 수정하는 작업은 막막하기도 했다.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담는 것이 함께 만드는 것일까?

함께 만들어온 것

찬찬히 살펴보니 여러 의견들은 부딪치거나 서로 튕겨내는 것들이 아니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문장을 누군가는 인권선언의 기본이고 핵심이라며 가까운 문장으로 꼽았는데 누군가는 너무 일반적인 말이라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지 갸웃거렸다. ‘인권’이 벗어날 수 없는 조건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선언은 누군가에게는 기댈 언덕이고 삶의 동력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멀리 있어 오히려 포기하고 싶은 말이 되기도 한다.

4.16인권선언에 담긴 권리들 역시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충분히 보장되거나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에 선언되어야 하는, 그러나 너무 쉽게 무시당하기 때문에 무력해 보이기도 하는 ‘인권’인 것이다. 결국 그 권리들을 함께 선언하는 사람들, 그리고 관계가 인권선언의 본질인 것은 아닐까. 4.16인권선언운동이 함께 만들어온 것은 선언문 자체에 그치지 않고, 권리를 자각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루려는 연대와 결속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4.16인권선언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함께 만들어갈 것

초안은 A4 두 장 분량이었지만 저마다 짧은 문장에서 읽어내는 이야기들이 달랐다. 구체적인 권리 조항들일수록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서로 의견을 나누며 더욱 풍부하게 권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던 것들이 새로 보이기도 했고 숨어있는 쟁점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것은 4.16인권선언의 가능성이기도 했다. 현실에서 계속 살아 숨 쉬며 해석되고 도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4.16인권선언은 12월 10일 광화문광장에서 발표되었다. 함께 인권선언을 낭독하며, 각 권리가 적힌 박스를 탑처럼 쌓았다. 분향소에 모신 304명의 희생자에게 바치는 약속이기도 했다. 이제 2주기까지 4.16인권선언에 동참할 사람들을 모으는 선언인 운동이 시작된다. 기억과 약속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4.16인권선언은 그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전부이기도 하다. 참사 이전의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짚어보면서 참사 이후의 사회를 만들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 이제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