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가의 편지

헐떡거려도, 나는 사랑방이 자랑스럽다.

자랑스럽다는 말, 낯간지럽다. 자신의 활동공간을 자화자찬하는 활동가도 팔불출이다. 인권운동사랑방에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이 있다고.

사랑방이 '잘하고 있다'고 하기엔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바깥에서는 사랑방이 어찌 보일런지 몰라도, 안에서 보는 사랑방은 무척이나 힘.겹.다. 쏟아지는 회의와 집회, 글쓰기, 교육, 연대활동, 사무실의 밥, 빨래, 청소……. 돋움이나 자원활동가들은 스스로의 일까지. 밤도 주말도 없다. 자유롭고 위계 없는 사랑방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활동가들 사이의 의견을 맞춰가는 일은 숨 막힐 정도로 어렵고 짜증스럽다. 가끔 '인권'이 무엇인지, '사랑방활동'이 무엇인지마저 혼란스러워하면서, 모두들 숨이 턱까지 차서, 헐떡이면서 사랑방을 꾸려가고 있다.

바쁘고 힘든 것은 다른 이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니 사랑방이라고 다를 것이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인권운동' 한다고 하면서, 헛된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우리의 인권운동이 이 땅 인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인간다운 모양새로 바꾸어내고 있다는 믿음은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러나, "인권운동사랑방 덕분에 사람들 사는 게 조금 더 인간다워지고 있나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네, 물론입니다."라고 대답할 자신이, 솔직히 없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성소수자, 핵, 남북긴장, 전쟁, 보수정치, 환경…….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도 줄줄 흘러넘치는, 사람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인권운동사랑방이 브레이크 역할만이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나는 의심스럽다. 그러니, 내 입으로 사랑방이 잘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랑방은 배다. 그것도 낡고 삐걱거리는 조각배 같은.

그런데 20년이나 된 이 배는 앞으로, 오히려 더 멀고 험한 길을 가기로 했다. 작년과 올해 거의 1년 동안 우리는, 사랑방이 무엇을 해왔는지, 인권이 무엇인지, 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정답이 있을 리 없는 과정이었고, 서로 부딪히면서 헤매고 또 헤맸다. 그 힘든 논의 끝에 다다른 것이, "대중을 변혁적으로 조직하는 운동을 하자!"였다. 닳을 만큼 닳은 듯 고리타분한 이 말이, 우리에게는 그저 과거를 답습하는 구호가 아니었다. '인권'이 시민사회의 들러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세상을 바꾸는 인권이 어떤 것인지 실천해내고야 말겠다는 우리의 절실함이었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싸울 때 무기가 될 수 있는 인권을 벼려내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런데 사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인권을 통해 모일 수 있을지, 이 목표를 위해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그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방이라는 배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게 되려면, 당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아등바등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게다. 우습지만 나는, 이 안쓰러운 사랑방이, 안팎으로 삐걱거리고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체제에 포섭된 인권'이라는 모래뻘에 좌초하지 않고 꾸역꾸역 흘러가려는 인권운동사랑방이, 자랑스럽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는 것이기는 하지만, 시민단체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이 경력이 되고, 인권변호사 지망생들도 많은 지금 분위기를 보면, 사랑방도 분명 '인권'을 간판으로 한 화려하고 거대한 유람선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인권'에 관심 있는 착한 사람들에게, 국제인권규약들의 내용과 흥미진진한 옛 사랑방 활동 얘기들을 섞은 말랑말랑한 교육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랑방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랑방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촛불로, 용산참사로, 쌍용자동차 분향소로, 희망버스로, 강정으로 뛰어다니며, 매주 인권오름을 만들고,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사랑방의 여러 활동을 만들어왔다.

나는, 화려하고 거대한 유람선이 아닌 이런 삐걱거리는 배를 만들고 저어왔던 사랑방 선배활동가들이 고맙다. 지금은 다른 배로 옮겨 탔지만, 이 조각배 위에서 함께 아웅다웅해주었던 인권연구소 창, 인권교육센터 들,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이 고맙다. 사랑방이라는 배를 띄우는 부력 그 자체인 후원인들이 고맙고, 지금도 이 낡은 배 주위에서 함께 고군분투하며 강물을 헤쳐 나가는 수많은 활동가들과 사람들-인민들이 눈물 나게 고맙고 존경스럽다.

작은 일이지만, 이 인권운동사랑방의 "20주년 행사"라는 것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치르기로 했다. 함께살자 농성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분향소가 되어 어느 새 고궁의 대문이 아닌 싸움의 상징이 된 곳에서 비좁고 불편하게 행사를 치를 것이다. 지금까지를 기념하는 행사를 치르기보다는, 거리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앞으로의 움직임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 이것이 사랑방이기에 만들 수 있는 모습, 인권운동사랑방의 20주년, "회동"의 모습이다. 이 "회동"을 준비하면서도 헉헉거려야 하는 것이 조금 안쓰럽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인권운동사랑방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