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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중국의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민중들의 열망의 역사, 외면하지도 군림하지도 않기 위해서

최근 들어 중국 경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겁다. 중국의 주가 지수가 요동치면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주가 지수도 덩달아 요동친다. 중국의 경제성장률 또한 전세계의 관심 거리가 됐다. 그동안 중국이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의 성장 동력 역할을 해온 것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한국에서도 중국은 여러모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중국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다소 분열증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해 중국의 (대일본) 전승기념일에 참가하면서 동시에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일본군 위안부)에 ‘눈을 감아주는’ 협상을 체결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 실험을 실시한 북한에 대해 국제 사회를 비롯한 중국에 강력한 대북 제재를 요청했다. 비록 최근에는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중국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도와 한국군과 맞서 싸운 교전국이었다. 또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대북 대결 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이데올로기적으로도 반공주의-반북한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합법 정당에 대해 북한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며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어 해산시키는 초유의 사건을 만들어 낸 바 있다. 그러면서도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시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대해서는 더 친하게 지내지 못해 안달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혹시 이것이 ‘자주 외교’?

 

하지만 중국에 대한 입장의 곤란함은 한국 정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진보진영 역시 중국에 대해서 명쾌하지 않은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그 무언가는 종종 이런 질문으로 정식화되곤 한다. “중국은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혹시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이미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저런 과감한 정책을 펼 수 있는 걸까?)

 

한국의 진보진영 일각에서 중국에 대해 국가사회주의니, 국가자본주의니 하는 분석을 내놓은 것을 본 적은 있지만, 설득력있고 치밀한 분석을 본 기억은 별로 없다. 제출된 입장들마저 대체로 이론을 앞에 두고 현실을 그에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강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입장을 세웠으니 나머지 문제는 모두 그 밑으로, 끝. 이에 대해 나는 한 편으로는 좀 억울한 느낌도 들었고, 한 편으로는 좀 서글픈 느낌도 들었다.(무엇보다 가장 큰 느낌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나의 능력의 부족을 절감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왜 민중들의 거대한 열망이 모아져 만들어진 역사적 자취/자원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대상화만 하게 되는 걸까? 사회운동을 한다는 것은, 사회를 바꾸고자 한다는 것은 이러한 민중들의 열망을 모아내고 그 힘을 현실화해내는 기획일텐데, 우리는 왜 그러한 역사적 기획을 (성공했든 실패했든) ‘우리’의 역사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외부화/타자화하고 마는 것일까? 우리는 그러한 민중들의 기억을 우리의 기억으로, 우리의 역사로 내재화함으로써 또다른 역사, 또다른 사회를 꿈꾸는 우리의 자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중국이든 어디든 당시 사회운동, 사회 변혁에 대한 민중들의 열망을 역사를 통해 상상하며 나도 거기에 뛰어들어 더불어 느끼고 그 열망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당시의 역사적 궤적을 되새기는 노력이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 과정에서 그러한 궤적이 가진 긍정적 힘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당시의 결정이 어떤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는지, 또한 어떠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내가 그 시대 민중, 그리고 선배 운동가들의 열망 앞에 겸손해질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당시 역사로 들어가 현장의 구성원으로서 나의 판단은 어떠했으면 좋았을지, 어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 희열과 좌절을 느꼈을지를 돌아보는 것이 당시 민중들의 열망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또 내가 그 위에 군림하지도 않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까, 중국의 역사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많은 질문을 이미 던지고 있었다. 소련은 사회주의 체제가 내부로부터 무너졌는데, 중국은 왜 소련처럼 무너지지 않았을까? 단지 국가의 ‘독재 권력’이 더 강력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중국의 왕후이라는 학자는 이와 관련해 <중국은 왜 무너지지 않았는가>라는 글에서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진 데에는 “관료체제와 민중의 대립, 냉전 중의 독단적 정치, 결핍경제가 가져온 민중의 어려운 생활 등” 복잡하고 깊은 역사적 원인이 있는데, 그와는 다른 중국의 첫 번째 특징으로 “사회 발전의 길에 대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모색과 여기에서 비롯된 독특한 주권의 성격”을 꼽았다. 이와 같은 분석이 적절한지에 대해서 나는 아직 정확하게 판단할 능력이 없지만, 중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깊은 책임감으로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토론을 촉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현재의 중국 사회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또한 치열하다. 중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고민이 서구와 북미 국가 구성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이다.(그것도 일방적이고 한계적일 때가 많지만) 오히려 중국인들은 중국 사회의 내부에서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혁명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질문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나를 포함한 민주화 후세대들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는 어떻게 공유되고 진전되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의 우리 사회가 쉽게 답을 내고 있지 못한 이러한 질문들이 알고 보니, 중국의 문화대혁명 기간에 이미 무수하게 던져졌던 질문들이었다.(문화대혁명은 단일한 과정이 아니었고, 문화대혁명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굳이 여기서 반복하지는 않겠다.) 1949년에 사회주의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후 17년쯤 지나 사회적으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할 즈음인 1966년에 혁명 후세대들에게 혁명의 정신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이어져야 할까 하는 질문은 자연스러운 역사적 과정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문화대혁명의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이 진행되면서 각성한 민중들의 질문은 더 깊어지고 급진화되었다. 지식을 어떻게 특권화하지 않으면서 민중들과 공유하고 민중성을 잃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도시와 농촌/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어떻게 하면 차별하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시킬 수 있을까? 등과 같은 질문들이 무수히 쏟아졌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도시의 젊은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하방해 내려가 직접 민중(농민)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대학은 폐쇄되기도 했지만, 농민과 군인들에게 지식이 개방되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던져진 질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점점 관료화되어 가고 있는 국가와 당을 어떻게 민중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는 ‘사회운동의 관료화’ 등과 같은 명제로 한국의 사회운동 내에서도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 중 하나이다. 나 역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문제들이 한국 사회에서(그리고 사회운동에서) 부정적으로 불거지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별로 다르지 않은 고민들이 긴 시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맴을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저 민중들의 열망을 모아 무수한-하지만 ‘가치 있는’ 오류들을 거쳐 어렵게 어렵게 한 발짝씩 내디뎠는데, 우리는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가 비슷한 오류들을 반복하면서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앞이 안 보여 헤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나마 한 발짝씩 내딛어 온 자리를 출발점으로 삼아 그 다음을 헤쳐나갈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혹은 나는) 왜 지금까지 이러한 역사를 인식의 자원으로 삼지 못한 것일까. 무엇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인지. 왜 우리는 그토록 판관의 위치를 고집했던 걸까.

 

출발점에 든든하게 발을 딛고 그 다음을 헤쳐나가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도 한 손 거들려고 한다. 나이도 많은 늦은 시기에 공부를 시작한다는 게 기대와 설렘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수많은 변수들과 장애물들이 앞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 코앞의 일도 알 수 없는 게 인생, 알 수 없는 인생에 미래를 한 번 맡겨보고자 한다. 중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와 우리의 현재를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나름 성공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