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원희룡 지사님, 영리 병원 문제 많습니다

지난 12월 5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최종 허가했다. 국민건강보험과 의료보험을 적용하지 않으며,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진료하는 조건이었다. 중국 녹지그룹은 2012년부터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추진해왔고 2015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사업 승인을 받기도 했다.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병원임에도 온 나라의 관심이 쏟아졌다. 국내 최초로 영리 병원이 도입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영리 법인은 병원을 설립할 수 없기에, 개인 병원을 제외한 모든 병원은 원칙적으로 비영리 병원이다. 지난 세월동안 경제 논리를 앞세우며 영리 병원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았지만, 병원 내 자회사 일부를 영리 법인으로 전환할지언정 투자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 병원이 생겨나지는 않았다. 적어도 ‘아픈 사람을 두고 돈 벌 생각만 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고 지켜온 시간이었다. 첫 영리 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가 내려진 지금, 바로 그 사회적 합의가 흔들리고 있다.
 
영리 병원이긴 하지만 문제없다? 
 
원희룡 지사의 최종 개설 허가 이후 곧장 영리 병원 도입을 강하게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자, 제주도와 보건복지부는 “외국인 대상이고 국민건강보험법을 적용하지 않으니 문제없다”, “국내 공공의료체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다음날인 6일 “현 정부에서 다시 영리 병원을 추진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리 병원이 도입되긴 하지만 내국인은 접근하지 못하게 한 채 더 확대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외국인 대상이라는 점과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점 모두 문제가 많다. 한국에 있지만 한국인은 갈 수 없다는 어색함은 둘째치더라도, 녹지국제병원이 한국인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합당한 이유는 없다. 원희룡 지사는 필요하다면 조례 제정이라도 하겠다고 말하지만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는 더 큰 문제다.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 의료기관의 비율은 7%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병원이 국민건강보험체계 바깥으로 나가 사설 보험회사와 계약해서 비싼 사설보험에 가입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병원 등이 생길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현 국민건강보험법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통해 모든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계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어떤 병원을 가더라도 국민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녹지국제병원에 국민건강보험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또한 의미를 잃는다. 다른 병원도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신 사설 보험회사와 계약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진료와 수술을 포함한 의료비의 적정 수가를 결정하고, 각 병원이 이를 잘 지키는지 감시하기도 한다. 녹지국제병원이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해당 병원에서 제시하는 의료비가 적절한지 확인하거나 따져볼 수도 없다는 뜻이다. 제주도와 보건복지부의 변명과는 달리 전혀 괜찮지 않다.
 
영리 병원이 만들어갈 세상 
 
비영리 병원이라고 해서 전혀 수익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병원은 더 좋은 병실, 더 좋은 식사, 더 좋은 의료 기술 등을 더 비싼 값에 제공하고 있다.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아파서 서러운데 병원비 걱정에 더 서러운 마음은 낯설지 않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항목 앞에서 망설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비영리 병원에서 발생한 수익은 직원 임금, 병원 시설 개선 등 병원 내부에서 제한된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영리 병원은 다르다. 병원 수익을 법인이 회수해 투자자에게 배분하거나 다른 사업에 투자할 수 있다. 수익률을 기준으로 병원을 운영하기에 소위 ‘돈이 안 되는’ 과는 없애버리거나,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치료를 더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한다. 영리 병원이 국민건강보험체계에 편입될 경우 국가가 국민건강보험에 지원하는 돈이 영리 병원을 거쳐 법인과 개인에게 유출되는 문제도 있다. 병원이 제공하는 진료와 치료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게 된다. 환자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된다. 영리 병원이 만들어갈 세상이다. 
 
권리를 뒷전으로 미루는 권력 
 
이번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제주도지사가 제주도 내 의료기관 개설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6년 제정된 제주특별법은 관광산업 활성화와 투자 유치를 통한 경제 발전, 지방 분권의 강화를 위해 제주도를 특별자치도로 지정하며 다양한 권한을 부여했다. 2012년 정부는 국제자유도시인 제주도와 인천, 부산 등 경제자유구역에 외국계 의료기관 설립을 허가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경제 발전이란 명목 아래 이뤄진 규제 완화였다.
 
무엇을 위한 경제 발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윤을 창출할 자유, 지역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건강에 대한 권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숙의형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전달된 지역 주민들의 반대 의견은 묵살되었다. 2013년,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적자 누적 등을 이유로 진주의료원을 폐쇄했을 때와 마찬가지다. 경제 발전의 기치 아래, 규제 완화로 열린 공간에서, 지방 분권이라는 권력을 통해서, 권리를 침해하는 행정이 펼쳐지고 있다.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지방 분권의 목표가 무색하다.
 
건강에 대한 권리를 원칙으로 
 
1999년 무렵 ‘의료기관 당연지정제’가 병원과 의사의 자유로운 영업을 방해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계약할지 사설 보험회사와 계약할지는 개별 병원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국민건강보험법이 진료비를 일괄적으로 정하고 건강보험공단과 의무적으로 계약해야 하는 등 일부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나, 국민의 기본적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약이기 때문에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영업과 직업 활동을 통해 영리를 추구할 자유보다는 국민의 건강권이 앞선다는 확인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국내 첫 영리 병원 개설이 눈앞에 다가왔다. 건강을 영리에게 내다 팔아버린 결정을 두고 제주도와 보건복지부는 여전히 ‘불가피한 결정’, ‘조건부이기 때문에 문제없다’, ‘더 이상의 영리병원은 없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겨우 하나라서 괜찮은 게 아니라, 단 하나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건강이 영리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의료를 서비스업으로 인식시키려고 기업들이 수십 년을 공들여서 시장을 만들었다”는 드라마 ‘라이프’의 대사처럼, ‘호텔식 병상’을 내세우는 녹지국제병원에서 의료의 공공성은 희미해지고 의료 서비스와 그에 따른 수익만 남아 있다.
 
그러니까 지금, 다시 건강에 대한 권리를 우리의 원칙으로 확인해야 한다. 이 사회에 필요한 건 공공의료 확대를 위해 국민건강보험 급여 항목을 늘리고 건강보험 적용률을 높이는 작업이지, 영리 병원이 아니다. 이번처럼 제도의 허점을 통해 원칙이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제도 정비 또한 필요하다. 의료 영리화가 아닌 의료 공공성 강화라는 방향을 분명히 하자. 건강에 대한 권리가 우선인 세상에 영리 병원이 발붙일 자리는 없다. 건강에 대한 권리를 뒷전으로 미루는 영리 병원 도입은 건강과 권리 모두를 망가뜨린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보건복지부는 제주 녹지국제병원 허가를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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