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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반기문은 보수의 꽃놀이패다

반기문 등장으로 열린 대선 정국에서 촛불의 과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드디어 귀국했다. 지난 여름부터 친박세력이 지지하는 여권 대선 후보로 이야기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아오더니, 박근혜 탄핵 소추 이후에는 ‘나라를 구할 위인’, ‘문재인에 맞설 수 있는 유력 대선후보’로 더 큰 주목을 받으며 한국에 도착했다. 언론들은 귀국 비행기에 동승해 기내 인터뷰를 하면서 실시간 뉴스를 내보냈고, 인천공항 도착부터 현충원 참배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뉴스가 되었다. 그에게 비판적인 사람들도 ‘턱받이 논란’, ‘공항철도 승차권 발매기 논란’, ‘퇴주잔 논란’과 같은 가십성 뉴스를 소비하기 바쁘다. 사실 한국 정치에서 반기문과 같은 새로운 인물에 대한 열광은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의원이 그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월드컵 열기 속에 등장했던 정몽준 전 의원이 있다.

 

하지만 지금 반기문에게 쏟아지는 언론과 여론의 주목은 좀 더 주의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논란의 당사자인 박근혜,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세력, 문재인까지 모두 질서 있는 퇴진, 명예로운 퇴진을 주장했다. 이는 퇴진 이후 로드맵으로 각각 박근혜 세력 불처벌과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였다. 이를 중단시킨 건 매주 광장에 모였던 수백만의 촛불이었다. 김기춘, 우병우를 비롯해 박근혜-최순실에게 부역했던 정관계 인사들, 이들과 결탁해 막대한 이익을 취해 온 재벌 총수들을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 박근혜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탄핵시켜서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바로 국회의 탄핵소추와 광범위한 특검 수사를 만들어냈다. 탄핵이 점점 가시화돼가자 보수 정치권과 언론은 재빨리 정국을 대선국면으로 전환해 나갔다. 그 중심에 반기문이 있다. 박근혜와 함께 박근혜 체제를 만들었던 보수 세력은 반기문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결집하기 시작했고, 촛불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던 문재인은 유력한 야권 후보라는 간판 하나로 정국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보수가 선택한 전(前) 유엔 사무총장

 

한국에서 유엔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된다. 유엔 인권특별보고관과 인권이사회에서 권고하는 한국 인권상황 개선에 대한 요구,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유엔의 공격적 태도, 난민이나 기아와 같은 지구적 문제에 대한 인도주의적 대처, 강대국에 좌지우지되는 무기력한 유엔 등의 이미지가 병존한다. 오로지 외교관 생활만 해왔던 반기문이 유력 인사가 되고 어린이 위인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건 유엔 사무총장을 세계 대통령에 빗대어 성공한 사회적 지위로 이해하는 경향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분담금으로 운영되는 유엔이 갖는 유일한 힘은 보편적 인권실현과 평화라는 윤리적, 정치적 지향에 있다. 이를 통해 개별 국가들에게 강한 압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지구적 이슈해결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 문제 해결을 위한 기금과 협의체를 구성해내기도 한다. 반기문의 유엔은 어땠을까.

 

성소수자 인권신장과 파리 기후변화협약 체결은 반기문 전 총장 시기 유엔의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반면 리비아 군사개입 승인, 시리아, 스리랑카 내전의 격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재제와 압박, 한일 위안부 합의 지지는 평화촉진자로서 유엔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유발한 아이티 콜레라 사태와 이에 대한 책임을 6년 동안 부인하고 은폐해 온 것도 심각한 문제다. 그의 사무총장 재임 시기에 발생한 여러 사건들은 그의 말마따나 ‘복합적인 국제 정치 상황에서 나오는 좌절’이기도 하다. 또한 ‘사무총장은 통치를 하는 게 아니라 협상과 중재를 하는 자리’라는 말도 일리 있는 항변이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은 복합적인 국제정치 상황 속에서도 보편적 인권신장과 평화라는 분명한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협상과 중재를 해야 한다. 이에 비추어보면 반기문 전 총장은 인권과 평화의 원칙하에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에 맞서기보다는 이들과 보조를 맞추며 유엔이라는 거대 조직을 운영해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바로 미국과 서구 국가들이 유엔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그가 성소수자 인권증진과 기후변화 대응을 미국에 맞서가며 추진할 수 있었을까?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군사작전의 일차 행위자는 언제나 미국이라는 사실, 국제형사재판소 회부까지 권고한 유례없이 강력한 대북 재제, 한미일 군사동맹의 첫 단추가 될 위안부 합의 지지는 반기문의 친미주의를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 대사는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이 미국에 유리하다며 본국에 보낸 외교전문에서, 그가 천성적으로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장점이라는 뛰어난 정무감각은 권력의 냄새를 잘 맡는 능력, 누가 기득권자인지를 판별하는 능력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반기문에겐 정치적 신념이나 원칙보다 권력을 향한 타협과 조정이 훨씬 중요하다. 앞으로도 상황을 재가며 친박, 친이, 친노,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과 부지런히 접촉할 것이다. 그는 기득권자다. 개혁은 필요하지만 재벌이 한국경제를 지탱해야 하고, 강력한 한미일 동맹으로 북한과의 대결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본다. 적대감에 가득 찬 국민들의 눈빛을 바꾸기 위해, 적대의 근원 해소가 아닌 대통합과 대타협을 주장한다. 보수가 그를 선택한 이유다.

 

대선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이 하나 없던 보수 세력에게 반기문은 미국에서 날아 온 선물이다. 그를 간판으로 바꿔달고 보수 세력의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박근혜와 함께 처벌돼도 시원찮을 판에 반기문을 필두로 다시 대선에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니,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반기문과 문재인이라는 유력 후보를 중심으로 탄핵 정국이 급격히 대선 정국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데 있다. 어쩌면 보수세력에게는 대선 승리보다 광장의 에너지를 잠재우고 기존 정치권과 사법부가 중심이 된 제도와 절차의 복원이 훨씬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어느 새 뉴스는 반기문과 문재인의 대권 행보가 중심을 차지하고, 다른 한 축으로는 특검 수사와 헌재 탄핵심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반기문과 문재인은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다. 먼저 둘 다 박근혜 탄핵 정국을 열어낸 촛불의 흐름과 별 관련이 없다. 반기문은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은 지난 대선 이후 수년 째 유력한 야권 후보라는 타이틀 하나로 촛불의 꽁무니를 쫓고 있을 뿐이다. 문재인을 통해서 광장의 에너지나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시민들의 집단의지가 드러난다고 느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대선 정국이 다가올수록 박근혜 세력에게는 절대 대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촛불의 왜곡된 절박함이 그에게 투사될 가능성만 높아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으로 중도를 지향한다. 이미 사드 배치 수용부터 적당한 수준의 재벌 개혁까지 정책적으로 수렴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 방안과 의지가 결여된 문재인의 개혁에 대한 정치적 수사는 반기문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난 12월 19일 민주당이 발표한 촛불 혁명 정책 입법과제에는 세월호, 백남기 농민 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노동기본권 후퇴, 집회시위의 권리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한국사회 기득권층에게 문재인, 반기문만큼 믿음이 가는 후보도 없을 것이다. 결국 대선은 이들에게 짧은 권력의 과실을 어느 정치 집단이 취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촛불은 박근혜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한 민주주의를 주권자인 시민이 직접 나서 만들어가겠다는 권리선언이자 운동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직접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한다는 절박함이 수백만 명을 광장으로 모이게 했고, 탄핵 소추를 이뤄낸 힘이었다. 반기문-문재인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대선 정국은 바로 이 힘을 철저히 억누르면서 시민들에게 다시금 주권의 위임을 요구하고, 자신들이 잘 대리할 수 있는 인물임을 선전하는 인기투표로 대선을 만들고 있다. 반기문 귀국 행사장에서 울려 퍼진 ‘나라를 구해주십시오’라는 구호는 광장을 가득 메운 함성의 정반대에 자리한다. 구원자는 없다. 그 동안 광장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우리의 권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주권자이기를 포기한 순간 박근혜-최순실은 언제나 등장한다는 것이다.

 

광장의 촛불이 곳곳으로 퍼져가는 들불이 되도록

 

조만간 탄핵이 결정된다면 차기 대선이 코앞에 닥치게 된다. 문재인과 반기문이 촛불과 가장 거리가 먼 인물들임에도 가장 유력한 후보인 이유다. 시간은 보수 정치권의 편이다. 촛불은 대선 이후를 생각하며 다가올 대선 국면에 대응해야 한다. 지난 3달간의 촛불이 우리의 일상에 정치를 깊숙이 들여왔던 것처럼, 대선은 반기문-문재인의 거짓 이미지 경쟁이 아닌 한국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토론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 성과를 이어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촛불과 대선 기간 동안 의제화된 사회적 현안들을 가지고 싸우는 운동과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돌아보면 한국사회에서 보수 정치인들은 언제나 민중들의 기대를 배반해왔다. 87년 6월 항쟁이 쟁취한 첫 직선제 대선은 노태우 정권으로 귀결됐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6월 항쟁의 경험은 이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일터에서의 민주주의, 노동자를 기계가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라는 요구는 군부독재에 맞서 주권자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싸웠던 시민들의 투쟁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87년 6월 항쟁은 역사의 한 시기로 흘러갔지만, 그 유산은 수많은 운동과 조직을 통해 면면히 이어졌다. 대학생,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들은 각각 자신들의 대중조직을 통해 87년 이후에도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하고 변화를 일구어냈다. 9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3당 합당은 많은 이들을 좌절케 했지만, 518 특별법을 제정해 광주 학살자들을 처벌하고 96년 총파업을 벌여 노동개악을 막아냈던 것은 김대중이 아닌 조직된 운동이었다. 2017년 우리가 마주한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촛불의 열망을 보수 정치인들이 이용하든 말든, 세월호, 백남기 농민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 일터에서 노예가 아닌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한 권리 투쟁, 집회시위가 더 이상의 경찰과 법원의 허가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한국이 동북아의 평화촉진자가 되기 위한 행동,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 맞서는 행동은 몇 달 뒤 들어설 차기 정부가 아닌 바로 우리가 싸우고 조직할 운동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