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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복귀했습니다. 승소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안식년을 마치고 복귀하면서 일 년 만에 쓰는 활동가 편지를 어떤 주제로 써볼까 고민해봤어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컨셉으로 캐나다와 영국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3개월 정도 난생 처음으로 나홀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기억들을 떠올리며 좋은 기운들을 되짚어볼까 싶기도 하고. 복귀를 앞두고 안식년 마무리 일정으로 다녀온 ‘강정평화학교’를 통해 접한 이야기들, 든 고민들을 날라가기 전에 정리해서 나눠보고도 싶고. 우여곡절 끝에 남동생을 장가보내며 일본인 올케가 생겼는데, 그 파란만장했던 시간들을 얘기하고도 싶고. 2016년이 파노라마처럼 슉 지나가면서 이야기하고픈 것들이 스르륵 떠올랐는데, 최근에 겪었던 것부터 정리하는 기회로 삼기로 했습니다. ㅎ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쌍용차 국정조사’ 약속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워버리겠다는 의지인 냥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를 강제철거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흙을 부어 화단을 만들었죠. 추모조차 가로막고 방해하는 잔혹함에 맞서던 시간이 이어지고, 2013년 8월 24일 쌍용차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려 함께 했었습니다. 서울역에서 시작한 본집회 이후 행진을 하여 청계광장에서 마무리를 하고 흩어지려는데, 삼삼오오 이동하는 사람들을 경찰들이 다짜고짜 막아서는 거예요. 왜 막느냐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경찰은 아무 말도 없이 무시로 일관하고, 항의하는 사람들을 향해 채증카메라는 집요하게 따라붙고, 이렇게 막혀있을 이유가 없다며 밀치고 가자는 사람들에게 물총처럼 생긴 휴대용 최루액 분사기를 엄청 쏘아댔습니다. 어쩌다 앞쪽에 있던 저도 제대로 최루액을 맞았어요. 순간 너무 따갑고 쓰라려서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꼼짝 못하겠는 저를 주변에 계신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물로 몇 번을 씻어냈더니 시간이 좀 지나자 괜찮아지더라고요. 이유 없이 막아서고, 무슨 근거로 막는지 항의하면 묵묵부답 무시하고, 항의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게임하듯 웃으며 최루액을 쏘아대니, 이렇게 막돼먹은 경찰들의 행패에 화가 난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들었습니다. 기자들도 모여 들고요. 경찰들 스스로도 더 막장이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갑자기 해산했습니다. 한 시간 가량 실랑이 끝에 집에 돌아갈 수 있었어요.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쌍용차범대위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날 통행을 막고 최루액을 분사한 경찰들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려는데, 원고로 참여하지 않겠냐는 것이었어요. 제가 최루액을 맞는 장면이 찍혔다고 하더라고요. 확인해달라며 사진을 보내줬는데, 어머! 이런 굴욕샷도 없겠다 싶었습니다. (차마 사진 그대로는 민망해서 부분만 잘라냈어요. ^^::)

그리고 무려 3년이 훌쩍 흘러 지난 1월 피고 대한민국은 저를 비롯해 소송을 청구한 원고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최종 결정이 났습니다. 통행제한으로 기본권을 침해당했기에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제 경우에는 여기에 추가로 최루액을 맞은 사실이 인정되기에 배상금을 더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 사진으로 ‘입증’된 제 경우만 최루액을 맞은 사실을 인정받은 거였어요. 이 사진 한 장이 없었다면 사실인데도 사실로 인정받지 못하는 거였으니, 굴욕샷이 아니라 인생샷으로 삼아야 하나 싶더라고요. -_-::

 

승소했다는 건 기쁜 일이긴 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기도 하고 마음이 좀 복잡했습니다. 부당하고 불법적인 공권력 남용으로 기본권이 침해된 것이 명확한데도, 1심에서는 패소했었거든요. ‘법대로’란 말을 참 많이 쓰는데, 그럴 때 기대하는 건 ‘정의로움’에 대한 거잖아요. 법원의 결정이 ‘정의’에 기초한 것일 거라고 기대하고요. 그러나 활동하며 이런저런 판결들을 접하면서 그런 기대들이 무너진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승소 축하한다는 이야길 듣다가 문득 “이게 축하받을 일인가” 자문하게 되더군요. 피해사실을 인정받으며 이루어지는 손해배상이 부당함에 대한 일정 정도의 책임을 묻는 것이라 생각하고, 소극적인 의미에서 피해자에겐 부분적이나마 ‘회복’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 순간 그곳에서 침해당했던 사실들은 여전히 달라진 것 없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인 것 같거든요. 그날 이후에도 막장 공권력은 여전했고, 오히려 더 기세등등했으니까요. 게임하듯 최루액을 쏘아댔던 경찰들의 표정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활동하면서 현장에서 제가 마주쳐왔던 경찰들은 공권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복장만 갖췄을 뿐 영화 속 조직폭력배들과 별반 다른 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경찰들 앞에서 저는, 저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에게 불온하며, 공격해야 할 ‘적’처럼 여겨졌다고 생각해요. 또 부당함을 바로 잡고자 손해배상 청구 같은 법적 대응을 하는 게 보통의 사람들에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고맙게도 쌍용차범대위에서 제안해줬고, 원고인단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부딪히거나 감당해야 할 것들이 거의 없었어요. 여러 차례에 걸쳐 평일에 열리는 재판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기도 하고, 누군가 백업해줄 수 없다고 하면 ‘구제절차’가 있어도 시작도 해보기 전에 그 기회를 포기하기 쉬울 거 같거든요. 거기에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배상금도 사실은 국민들 주머니에서 나간 우리 세금인 거잖아요.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마냥 기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3년이나 걸린 데다 그 시간이 무색하게 나아진 것보다 나빠진 게 더 많았으니까요.

2013년 5월 억지화단이 생긴 대한문에서 ‘꽃보다 집회’라는 제목으로 사랑방 활동가들도 함께 준비했던 집회가 경찰의 방해로 제대로 열리지도 못했었는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해요. 얼마 전 항소심 결정이 났는데, 피고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당시 직접적으로 방해 행위를 했던 경찰도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었습니다. 공권력 남용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경찰 개인에게 물은 건 처음이라고 해요. 그 경찰은 대한문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집요하게 괴롭히기로 유명했어요. 당시 경비과장이었던 그는 지금은 다른 지역의 서장으로 승진까지 했지요. 현장에서 무수한 공권력 남용을 목격하지만, 이에 대해 법적대응 등을 통해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게 어디 소속의 누구인지 식별이 되지 않기 때문이거든요. (제복에는 이름표가 부착되어 있지만 그 위를 조끼로 덮어 가리기도 하고, 무수한 사복 경찰들도 있고...) 익명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경찰은 공권력 남용이란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더욱 극심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 같아요. 이런 것을 멈추려면, 바꾸려면 해나가야 할 것들이 참 많네요. 올해 복귀하면서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 이런 고민들을 더 구체적으로 이어가보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3월 27일은 물대포에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신지 500일이 되는 날이라고 해요. 4월 25일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 500일이라고 하고요. 촛불에서도 확인했지만, 경찰은 권력자들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어떻게 하면 더 제한할까 궁리만 하지요. 공권력감시대응팀은 백남기투쟁본부와 함께 물대포 추방! 차벽금지! 청와대, 국회 어디서나 집회열자! 교통소통 이유로 집회금지 안돼! 라는 입법청원 운동을 해나가려고 해요. 온라인 청원서명 페이지가 만들어졌는데, 이 글을 읽어주시는 후원인 여러분도 모두 함께 힘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려요. 이후 다시 활동가편지를 쓸 기회가 되면 안식년 동안 얻은 좋은 기운들을 나누고 싶어요.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건 사랑방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후원인 여러분들 덕분이에요. 깊은 고마움을 전하며 다시 또 찾아뵙겠습니다. ^^

광장을 열자! 백남기를 기억하자!

집시법/경직법 개정안 입법청원 함께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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