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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인권위가 인권옹호기구로 돌아오려면

새 정부가 인권에 기반한 국정운영을 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위상 강화를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후로 세상 사람들은 인권과 인권위에 관심이 많아졌지요.

 

그런데 정말 정부가 인권위의 위상을 강화한다고 해서 인권위의 위상이 강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권위는 독립적인 기구로 정부의 뒷배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힘으로 위상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권위의 권고도 법원 같은 강제적 명령이 아니라 권고라는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이 권고를 권고대상이 받아들일지 말지는 인권위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와 도덕적 권위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인권위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인권위의 권고를 무시했다거나 거부할 경우 기관이나 개인에 대한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수용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정부가 노력한다고 해서 인권위의 위상이 강화되는 게 아닙니다. 인권위 스스로 개혁하고, 시민사회의 힘이라는 3박자가 맞을 때 인권위 위상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권위는 정부가 말한 인권위 ‘위상 강화’라는 말을 인력 확대나 권한 확대로만 이해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사실 인권단체들은 이미 이성호 위원장이 취임한 2015년 9월에 면담했을 때 내놓은 혁신과제를 제안했지만 그 중 하나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인권위의 독립성 훼손과 위상 하락에 대한 책임은 현병철 위원장과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권단체들은 인권위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높아진 이때가 인권위 개혁의 골든타임으로 봅니다. 그래서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약칭 인권위 공동행동)은 새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인권위에 개혁과제를 제출했습니다. 점점 더 관료화되고 국가기구화 되는 인권위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개혁과제는 크게 6가지로 잡았어요. ▵과거 인권침해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 ▵독립성 강화와 인권위원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인권위 관료화 극복과 외부인사 사무총장 임명,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 ▵시민사회와의 실질적 교류와 인권현안 개입력 확대, ▵인권위 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입니다.

국가인권위 현판 옆에 새긴 우동민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변화를 위한 첫발은 ‘잘못한 일에 대해선 사과는 기본’이 아닌가요? 하물며 국가기구인 인권위에서 인권침해를 했다면 사과해야 마땅하지 않나요? 그러나 인권위는 2010년 12월 장애인권활동가들에 대한 인권침해와 그 중 한명인 우동민 열사의 죽음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권위 직원들 중 일부는 인권활동가들의 주장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말까지 합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2012년 현병철 위원장 연임 청문회 과정에서 밝혀졌고, 국제적으로는 2014년 마가릿 세카기야 유엔인권옹호자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서 언급될 정도로 사실과 증거가 있음에도 이를 부인하니 답답합니다.

 

국가기관의 신뢰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세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물며 인권옹호기관이기도 한 국가기구에서 사과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시민들의 신뢰가 회복되며, 어떻게 위상이 강화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6월 28일 인권위 공동행동이 인권위 개혁과제를 전달하는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인권위 현판 옆에 붉은 글씨로 우동민을 새겼습니다. 그때의 참혹함을 잊지 않겠다는 취지지요. 우리는 인권위가 장애인의 이동권을 침해하는 엘리베이터 운행중지와 중증장애인들의 활동보조인 출입을 막았던 걸 기억합니다. 2010년 이전에도 인권위 배움터에서 농성한 경우가 많았지만 한번도 전기와 난방을 중단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인권위가 있던 건물이 중앙난방 시스템이지만 농성자들을 위한 난방이나 전기 지원을 할 수 있는 개별난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권위는 중앙난방이라 자기들이 한 게 아니라고 발뺌합니다. 도대체 그럼 어떻게 중증장애인들이 폐렴에 걸려 응급실에 실려 갔단 말입니까.

저는 이것이 단지 이성호 위원장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장애인권활동가 탄압에 앞장섰던 인권위 간부들이 자신의 책임을 은폐하고자 사실관계를 흐리고 사과를 못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과는 인권위가 관료화된 직원들의 주장에서 벗어나는지 여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셀프개혁은 불가능해

 

젯밥에만 관심 있는 인권위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인권위는 자체 혁신 TF팀을 꾸렸습니다. 사과조차 하지 않고 인권침해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한 인권위 직원들로 구성된 개혁과제가 제대로 된 내용을 만들 수 있을까요? 또한 인권위 사무총장을 외부출신으로 하라는 인권단체들의 요구를 외면하면서 인권위 개혁이 가능할까요? 제주인권회의에 <인권위의 역할과 과제>라는 세션에서 인권위는 헌법기관화를 방안으로 발제했습니다. 토론자들이 유체이탈화법의 발제와 한치의 반성과 성찰 없는 인권위의 태도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토론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이 지금의 인권위를 해체하고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을 할 정도였습니다.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동안 과장급 이상의 인권위 직원들과 인권위원들은 무엇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진정한 개혁 없이 인권위의 변화도, 위상 강화도 불가능합니다.

 

이제는 셀프개혁을 비롯한 인권위의 반성 없는 행보를 그만 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