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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인권위 혁신, 물음과 무게 사이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시민들이 등을 돌린 지 9년이 지났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있던 시기입니다. 보수 정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인권위를 흔들었지요. 대통령 직속기구화 시도, 인권위 조직 21% 축소, 현병철 위원장 등 무자격 인권위원 임명을 하는 동안 인권위는 정부의 인권침해를 눈감거나 주요 현안을 부결시키며 면죄부를 주기만 했습니다. 인권단체들은 인권현안을 진정해도 제대로 된 결정이 안 나오거나 시일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을 경험하면서 인권위와 함께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2015년 7월 인권위원장이 바뀌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새 정부가 인권위 위상 강화를 공표하자 인권위도 혁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인권위의 태도 변화가 국가기구의 특성상 인력과 예산, 권한을 확대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비판적 시선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는 중에 인권위와 인권단체들의 관계를 악화시켰던 우동민 장애인열사 사망사건에 인권위가 책임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사과하겠다는 입장 변화를 보였습니다. 인권위와 인권단체의 만남이 재개되었고, 7월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이하 인권위 공동행동)도 새 정부와 인권위에 혁신과제 6가지를 전달했습니다. 외부출신으로 사무총장을 임명하고 사무총장이 참여하는 인권위 혁신위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인권위는 혁신위 구성을 사무총장이 임명되면 하자며 미뤘습니다. 결국 10월 30일에 급하게 ‘국가인권위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구성됐습니다. 인권위 내부에서 3명, 외부에서 위촉된 12명 모두 15명인데, 혁신위 기간을 3개월로 한정하고 혁신위가 내놓은 권고안을 인권위가 다 수용하겠다는 것도 포함돼있지 않았습니다. 인권위가 혁신위를 형식적으로 만든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무자격 인권위원이 전원위 때 혁신위 구성을 반대해서 겨우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인권위 직원들 중 일부도 혁신에 반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 직원들과 시민사회는 인권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만큼 최대한의 결과물을 내와야 합니다. 그러나 인권위원들이 혁신위 활동에 무관심한 상황이라 도대체 인권위는 왜 혁신위를 만들었나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는 것도 혁신위가 권고안을 내고 시민사회와 함께 인권위를 압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현재 혁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혁신위 활동이 생각보다 더딥니다. 인권위를 꾸준히 모니터링했던 분들도 있지만 자기 담당분야의 인권현안에 대해서는 알고 인권위는 잘 알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자료를 직접 분석하고 사람들을 직접 면담하는 일을 하면서 과제를 내오는 일이다보니 방향이나 사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11월 19일에는 전체 혁신위원들이 워크숍을 해서 혁신위의 활동 방향에 대한 공통의 합의를 모았습니다. 짧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인권위 독립성만이 아니라 인권에 관한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혁신방향을 잡는다. 혁신위는 인권위 위상강화를 위한 들러리가 아니다. 인권위가 변할 때 시민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위상도 자연히 오르는 것이다. 지난 9년 동안의 후퇴만을 다루지 않고 인권위가 인권기구답게 만드는 혁신방향이 돼야 한다.’

현재 혁신위는 7개 과제를 선정했고 두 개의 소위로 나눠서 매주 회의를 하고 2주마다 전체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7개 과제로 혁신위 활동을 한정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1소위의 주요 과제는 독립성과 책임성 중심입니다. ▵과거사 반성과 대안, ▵인권위 독립성과 다양성(후보추천위원회), ▵인권위 투명성과 책임성, ▵업무(조사,정책,교육)의 적절성과 효과성, ▵차별시정기구로서의 역할을 다루기로 했습니다. 2소위는 조직혁신 소위로 주로 관료화된 인권위 조직을 바꾸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관료화 극복과 조직 문화 개선, ▵시민사회 교류와 인권현안 개입력 확대, ▵인권위 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다룹니다. 이를 위해 인권위 직원 및 인권단체,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하고 자료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과거사 반성과 대안, 인권위 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담당 주무로 하고 있습니다, 두 소위에서 활동하느라 좀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인권위 공동행동이 10년간 모니터링 해온 만큼 최소한의 변화를 성과로 내야 한다는 무게감이 큽니다. 혁신위가 만들어진지 벌써 1개월이 지나 마음이 부담되는 12월입니다. 좀 더 분발해서 인권위가 인권위다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렵니다. 인권위원들의 무관심과 혁신위의 더딘 활동 속에서 인권위 혁신이 가능할까라는 물음과 인권단체들의 고민을 담아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의 무거운 마음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많이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