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쭘립쑤어, 어꾼쯔란

아껴뒀던 휴가를 써서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어쩌다보니 함께 여행한 인연이 있었던 인권교육센터 들 사람들과의 동행이었다. 함께 여행을 도모하면서 어디를 갈까 이야기하다가 안식년 중인 들 활동가 묘랑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안식년인 올해를 캄보디아에서 현지 여성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묘랑, “내 친구가 지내는 곳은 어디인가”가 내게 있어 여행지를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였기에 별다른 망설임이 없었다.

  

만나기로 한 곳은 캄보디아의 씨앰립, 직항도 있는데 우리의 여행 일정에는 이미 다 매진된 것인지 경유를 할 수밖에 없었다. 5시간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방콕에서 4시간 대기했다가 환승하여 씨앰립까지 다시 1시간, 그리고 드디어 ‘눈물 겨운’ 상봉을 했다. 타지에서의 만남은 유난히 반갑다. 시공간을 가로질러 만나는 것은 신기하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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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일정으로 근교에 있는 톤레삽 호수를 향했다. 우리가 간 때가 캄보디아의 추석 기간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나들이 나온 이들이 가득했다. 어떻게 다 탔나 싶을 만큼 사람들로 빼곡한 오토바이와 차들이 즐비했다. 아직 호수에 다다르기 전이라는데 곳곳에 물이 들어차있었다. 우기라 그렇단다. 물 안에 박혀있는 전봇대라니... 건기와 우기에 따라 볼 수 있는 풍경이 다르단다. 수상가옥 마을을 지나 맹그로브 숲에서 본 일몰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더 강렬했던 건 건물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를 하루에도 수차례 가로지르며 물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고된 노동에 기대 이런 풍경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수상가옥 마을을 뒤로 하고 나왔다.

  

캄보디아의 대표 사원인 앙코르와트에 이어 2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는 쁘레아 비히어 사원도 다녀왔다. 씨앰립에서 3시간 거리, 태국과 접경지역에 위치해있는데 몇 년 전까지도 이곳을 둘러싼 분쟁이 있었다고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높다란 경사를 한참 올라가니 있는 사원, 그 옛날 산 정상에 어떻게 이걸 지었을까 놀랍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이어주는 듯 모든 사원 입구에 있는 나가상을 지나 찬찬히 걸어 올라갔다. 사원에 들어가기 전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는 목욕탕(?)에서 물을 받아 머리를 적시는 사람들과 겹쳐지면서, 옛날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은 어떤 기도를 올렸을까 궁금해졌다. 산 정상에 세워진 쁘레아 비히어는 그 자체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건데, 평지인 앙코르톰 지역에 있는 다른 사원들에서 가장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한 계단은 서서 오르내리는 게 위태로울 만큼 경사가 심하다. 하늘과 맞닿는 제단을 가려면 왕도 예외가 아니게끔 누구라도 오르내려야 했던 계단이라니, 적어도 이 계단에선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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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톰 지역에서 미소 짓는 부처님 얼굴이 가득한 바이욘 사원도 유명하지만, 이번에 더 인상적이었던 건 바푸욘 사원이다. 몇 년 전까지도 복구하느라 개방이 안됐다는 이 사원을 한 단 한 단 오르고 나면 정상에 하늘로 향해 있는 문이 있다. 놀라웠던 건 내려와서 본 사원 뒷면, 사원 그 자체가 누워있는 부처님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부처님이라니. 앙코르와트 벽면 하나하나 살아있는 듯 표정도 몸짓도 옷차림도 다르게 새겨진 압살라들도 그랬지만, 사원을 세우면서 돌 하나하나 지극정성으로 쌓아올린 시간이 떠오르니 경이롭기만 했다.

  

사원을 함께 걸으며 근황을 나누는 들 사람들을 보니, 캄보디아에 오긴 왔구나 새삼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끝은 늘 앙코르 맥주와 함께 했다. 한국에선 먹지 않는 민물고기인데, 톤레삽 호수에서 잡아 올렸다는 생선요리들은 참 맛있었다. 모닝글로리라는 예쁜 이름의 야채볶음은 언제 사무실에서 해봐야지 생각했다. 향은 다르지만 식감이 비슷한 미나리와 마늘을 굴소스로 볶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휘릭 지나간 4일의 시간 동안 말한 캄보디아 말은 묘랑에게 급히 물어 배운 “쭘립쑤어”(안녕하세요), “어꾼쯔란”(고맙습니다), “칭안”(맛있습니다) 이 전부였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을 때는 이보다는 좀 더 말을 건넬 수 있길 바라며, 그리고 오랜 시간 더 사원에 머물며 그 옛날의 시간을 상상해보게 되길 바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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