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대다그대

내인생의 단풍

가원

들어나 봤나. 떨어지는 단풍잎을 잡으면 사랑을 하게 된다는 속설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갈피 못 잡고 낙하하는 단풍잎을 잡으려 비틀거린 시간들이 떠오른다. 마치 노오란 나비를 잡으려고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고양이 마냥 떨어지는 단풍잎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 시절이 귀엽다. (고양이처럼 귀여울 리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으니 너무 비난하지 마시라.) 길을 걷다 고개를 젖히니 하늘은 파아랗고 단풍은 빠알갛다. 바람결에 단풍 하나가 하강 중이다. 반사적으로 그 단풍을 잡겠다고 허둥지둥, 아싸. 잡았다. 뭐 이렇게 쉽게 잡힌담? 그렇게 단풍을 갈구할 때는 잘도 스치고 지나가더니만. 집착을 버리니 비로소 사랑이 찾아왔다는 부흥회 간증 같은 이야기. 들어나 봤나. 

 

세주

회사 앞에 있는 산의 단풍이 지고 있다. 지독히도 더웠던 여름 뒤에 짧은 가을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은행잎, 단풍잎을 책장 사이에 꽂아 빳빳하게 만들고 코팅을 했던 초중학교 시절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단풍이 물드는지 낙엽이 떨어지는지도 한동안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다행히도 몇 년 사이 출근길에 낙엽을 밟을 수 있었다. 바스락바스락. 정말 다행. 더 늦기 전에 단풍놀이 나갈 기회가 생기려나?!

 

어쓰

이번 아그대다그대 주제를 ‘내 인생의 단풍’으로 잡고 나서야 내가 길에서 주로 보게 되는 건 단풍나무가 아니라 은행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주제를 ‘내 인생의 은행’으로 바꿔야 하나? 잠깐 생각하다가. ‘은행나무에 단풍이 들었다’ 는 표현이 왠지 어색하다고, 또 잠깐 생각하다가. 그러고 보니 근 몇 년간 단풍을 즐기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까지 가닿으니 문득 억울하다. 멀리 갈 형편은 못 되고 이미 시기도 놓친 것 같지만, 그래도 오늘은 집에 가는 길 영등포공원 벤치에 5분이라도 앉아있어야겠다.  

 

오래전 봤던 책을 오랜만에 꺼내 넘기다보면 말리려고 껴놨던 단풍잎을 발견하곤 했다. 해마다 단풍 드는 가을이면 신중하게 선택한 고운 단풍잎을 책 사이에 끼워 말리고 그렇게 말린 단풍잎을 코팅해서 책갈피로 쓰던 때가 있었는데, 아… 아득하다. 나이가 들면 계절의 변화에 별다른 감응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의식적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살아가야지 했었건만 계절은 사라지고 그저 덥다와 춥다로만 살고 있으니.

 

디요

단풍 구경 안 간 지 10년이 넘은 것 같다. 부모님이 사시는 동네가 단풍이 유명한데 어릴 때는 몇 번 간 거 같은데 언젠가부터 차 막히고 사람 많다고 안 간다. 그런데 이제는 날씨가 이상해지면서 환절기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이 무척 귀해졌다. 단풍이 물들 시기인가 아닌가 어버버하면 나뭇잎이 전부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다. 꽃피는 것도 비슷한 거 같다. 아직 추위가 안 풀렸네 하다 보면 금세 꽃과 잎이 같이 돋아난다. 더 늦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구경을 다녀야 하나 고민이 생긴다.

 

미류

단풍나무를 보고 단풍나무라고 했더니 단풍이 나무 이름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나뭇잎 색이 변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 아니냐면서. 단풍이 잘못했네요. 자기 이름으로 가을을 물들여버려서. 나도 물들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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