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소송

세주

소송을 해본 적이 딱 한번 있다. 이제 10년도 더된 일인데, 결과적으로는 상대방이 재판에서 합의에 응해줘서 사실상, 내가 소송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잠깐의 재판을 진행했던 판사의 태도-비웃음은 잊을 수가 없다. 나중에 나에게 조언을 해준 지인도 재판정에서 내가 겪었던 일에 대하여 듣고는 분노를 했다. 분명 내가 제기했던 소송은 정당한 것이었지만, 결과로 가는 과정은 그 정당성을 존중받지 못했다. 결과는 내가 이긴 것이었는데, 감정상으로는 패한 느낌이었다. 그때 처음 판사의 권위주위에 대해 겪게 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법부의 여러 일들의 원인의 한면을 겪은것 같아 씁쓸하다.

 

미류

소송이나 송사나 같은 말인데, 문득 '베갯머리 송사'라는 말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궁금해졌다. 간혹 듣게 되면 뜻이 잘 와닿지 않아, 침대에 같이 누울 정도의 친밀한 관계에서 남의 뒷이야기 하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번에 뜻을 찾아보았더니, "아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바를 속삭이며 청하는 것"이라는, 상당히 부정적인 뜻의 단어였다. 괜히 단어 찾아보다가 화만 나고, 성평등에 반하는 이런 단어들을 소송 걸고 싶어졌다.

 

어쩌다 보니 소송의 당사자가 된 일들이 하나둘 생겼다.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는 두 번이나 이겼다. 그런데 소송을 이겨도 기쁘지 않았다. 배상금이라고 국가가 주는 돈도 결국 우리 세금에서 나오는 것인데다가 승소 이후에도 국가권력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소송을 제기할 때 성패를 넘어 법원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더 확산할 것인지, 그 싸움이 소송 당사자만의 싸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최근 사랑방에서 게시물 패소비용 대응에 함께 하면서 든 생각이다.

 

디요

아직 소송 경험이 없다. 소송을 진행 중인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계속 없기를…

 

어쓰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재판에 방청을 가본 적은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청소년활동가의 선고 공판이었는데, 으레 그렇듯 징역 1년 6개월에 법정 구속을 예상했기에 재판정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굉장히 무거운 마음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형은 내리되 법정 구속은 하지 않는다는 결정이 나왔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묘한 마음. 당사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마음의 준비를 다 마치고 출석한 재판정에서 법정 구속되는게 더 나은지, 일단 집에 돌아갔다가 자기 발로 구치소까지 찾아가는 게 더 나은지… 이따위 한심하고 우스운 저울질이라니. 부당한 일이 있을 때 흔히 ‘법대로 하’자고 이야기하지만, 법은 거의 언제나 국가나 권력자의 편이니, 그럼 우리는 대체 어디에 기댈 수 있을까.

 

가원

여태 소송 경험 없이 살았지만, 이제는 그 역사가 새로 쓰여야 할 참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관련 행정소송을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해 패소한 단체의 활동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법치국가에서 부당한 일에 대항하고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소송을 한다. 잘못된 국가보안법을 마음대로 휘둘러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패소했다. 국가보안법 앞에서 ‘시대가 어느 때?’라는 식의 레토릭은 통하지 않는다는걸 새삼 확인하는 결과랄까. 이 법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그 이전에 패소비용 7,821,580원부터 같이 좀 해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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