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으로 읽는 세상

불안정 노동자를 ‘불안전’ 노동현장으로 내모는 구조

기업살인이 처벌되지 않는 인권경영은 속 빈 강정

2012년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만든 산업재해 공익광고는 일하다 추락하고, 기계에 끼이고, 배달 중 교통사고를 당하는 노동자를 깨지는 수박, 눌리는 오징어, 터지는 케찹으로 비유한다. 절로 눈이 찌푸려지는 장면들 끝에 2011년 산재사망자 2,114명이라는 숫자와 함께 "아직도 웃을 수 있냐"고 말한다. 결국 일하는 사람 스스로 조심하라는 경고였던 이 광고는 산재를 노동자들의 부주의로 규정하는 시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안전의 시작은 위험을 보는 것인데, 그 위험을 볼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최근 6명이 죽고 11명이 크게 다친 여수산업단지 대림산업 공장 폭발사고로 산업재해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비단 이번 사고뿐 아니라 산업사회가 시작되고 끊이질 않았던 산재사고를 다시금 되짚으면서 그 원인과 해결방안을 모색하려는 논의가 한창이다. 대림산업은 작년 6월 비슷한 폭발사고가 이미 있었지만, 노동부 점검에서 9건 위반으로 단지 90만원(1건당 10만원)의 과태료를 물었다. 이번 사고는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로 ‘눈 가리고 아웅’식 해결을 하려했던 행정의 관행이 안전관리의 책임을 져버려온 기업의 관행과 더해져 만들어진 예고된 사고이다.

노동자가 부속품 마냥 취급되고 더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하도급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산업재해의 또 다른 이름은 기업살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직면해야 할 현실은 기업살인의 대표주자들이 판을 치는 현실이다. 생산직의 70%가 하청노동자인 대우조선해양은 작년 11월에서 올해 2월 사이 3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을 당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 직업병 피해자 약 160명 중 58명이 이미 사망했는데, 산재 신청한 30명 중 단 1명만이 산재로 인정된 상황이다. 올 1월 30일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누출 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당시 삼성전자는 1차 누출에 즉각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가동을 멈추지 않은 채 노동자들을 계속 작업하도록 지시했다. 노동자들이 죽건 말건 대수롭지 않다는 이러한 반응은 그간 기업들에 한없이 관용적이었던 정부정책을 보면 당연한 결말이다. 2008년 경기도 이천의 냉동창고 화재사고로 하청노동자 40명이 사망했는데, 원청업체에 선고된 벌금은 2000만원, 한 명의 죽음‘값’이 50만원인 셈이다. 2011년 냉동창고 사고로 하청노동자 4명이 죽었지만, 이에 대해 이마트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기업살인이 처벌되지 않고도 인권경영인가

이런 현실에서 기업과 인권을 조합하여 쓰는 말들은 무색하다.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박근혜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12대 인권과제 중 첫 번째로 기업의 인권경영 확산을 제시했다. 불안정 노동자를 ‘불안전’ 노동현장으로 내몰고, 일하다 사람이 죽어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인권경영이 과연 무엇인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기업들이 국가 경계를 넘어 곳곳에서 저마다 선두적인 인권침해의 주체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는 기업과 인권 관련 각종 보고서들을 채택해왔다. 그 중 인권, 노동기준, 환경, 반부패 영역에서의 기업 경영 원칙을 10가지 항목에 담은 '유엔글로벌콤팩트'가 있다. 2010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GS건설, 인도에서 원주민들의 삶터를 빼앗으며 인권과 환경침해에 앞장서고 있는 포스코, 불법파견 확정판결이 나건말건 아랑곳 않는 현대차 등 반인권기업들이 '글로벌콤팩트' 회원이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노조탄압에 급급했던 죽음의 기업 KT가 2011년 '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주관 행사에서 노동존중경영분야 상을 떡 하니 받는 실정이니, 원칙이라고 나열한 것들이 그저 허울 좋은 말일 뿐 현실에서 인권의 잣대로 기업의 고삐를 당기기에는 참으로 무력하다.

앞서 소개한 광고처럼 산재의 책임이 스스로 조심하지 않은 노동자 개인에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듯이 정부는 기업살인에 ‘비범죄’ 딱지를 붙여주기 급급했다. 나아가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를 양산하는 구조를 만들어내면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이 만들어낸 위험을 노동자들 스스로 감수하도록 강요해왔다. 저마다 위험을 감수하며 목숨‘값’을 흥정해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언제든 일감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은 불안전한 일터를 오롯이 노동자 개인의 몫으로 받아들이게끔 한다. 기업과 정부의 동조 하에서 원청과 하청, 관리자와 노동자, 이런 갑을관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불균형의 무게추가 지속되는 한 기업살인이라는 죽음의 행렬은 계속될 것이다.


‘인간보다 이윤’인 기업의 생리상 인권침해는 불 보듯 뻔하다. 이에 대해 감시하고 제어하는 것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할 권리가 작업장에서 생생하게 터져 나오고, 이것이 ‘특별한’ 권리가 아니도록 만드는 일이 아닐까? 20여 년 전부터 위험작업거부권을 제도적으로 도입하고 정착시켜야한다고 했지만, 다단계 하청노동자에게는 스웨덴 등의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기업의 인권경영, 사회적 책임이 그저 좋은 말이 아닌 현실에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이윤이 아닌 인간, 노동자들의 삶에서부터 달라지는 지점이 포착되어야 한다. 이번 사고로 기업살인, 불안정 노동을 심화시키면서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강요했던 산업구조, ‘비범죄’ 딱지를 붙여주며 기업의 인권침해에 동조했던 정부에 대한 문제제기가 드높다.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것을 넘어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작업장 안팎에서 함께 목소리를 모아야 할 몫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