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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명륜동


여름엔 모기 잡으면서, 겨울엔 덜덜 떨면서 회의했던 기억. 추위보다는 모기가 더 참을만 했다는... (유라)

명륜동에 육교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사랑방이 싸워서 육교가 철거된 건 아니었지만 쨌건 없어지고 나서 커다란 횡단보도가 생겼다우. 그런데 이번에는 지하도라니... 흑흑 OTL 이번에는 우리가 한번 횡단보도 좀 만들어볼까요? 후후 (영원)

두 평이 채 될까말까... 5층 골방. 창고처럼 쓰던 이 방을 새로 꾸며서 영화제의 첫 둥지로 삼았는데 테이프들을 벽면에 빼곡이 채우고 무려 책상을 3개나 놓고 복닥거리면서 살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앞 도로에서 속력을 내는 차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밀려오는 건물의 떨림. 건물을 다 짓고 난 후 옥상에 올린 방이라 유난히 예민했다. 마님이라 불리는 내 별명의 시원은 바로 '골방!'마님. 참 운명은 얄궂지. 새 사무실에서 차지한 영화제방은 문간방인데, 그 때 골방을 3배 정도 키워놓은 것처럼 구조가 흡사하다니... (정아)

녀석은 오랜 친구였다. 밤이고 낮이고 업무에 지친 이들의 등짝을 마다한 적 없었다. 녀석은 가끔 소담스런 이야기꽃을 피워주는 여유도 부릴 줄 알았다. 명륜동 사무실을 스쳐간 사람들의 웃음과 설렘, 고단함의 역사를 누구보다 묵직하게 지켜봐 왔던 녀석. 특이하게도 녀석은 벼룩과의 동거도 즐기는 듯 했다. 이사짐 꾸리며 녀석을 두고 오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정말 섭섭했다. 3층 구석을 묵묵히 지켜온 검정색 소파여, 안녕~ 경내 (개굴)

5층 옥탑방에 대한 기억. 5층 첫 방을 양지마을 정 아무개 씨 등에게 내주었고, 그 정씨는 똥 묻은 팬티를 구석구석 쑤셔놓고, 속옷 바람으로 사무실로 내려와 기겁을 하게 만들었지. 그곳에서 양지마을 사람들 조사도 하고, 옥상 가건물에서 한 달 넘도록 기거도 하고, 그때 은숙은 밥 해주느라 고생 많았죠. 그런데 양지마을 그 사람들 연락이 대부분 끊겼죠. 살아나 있는지, 가끔은 대책없이 시설에서 빼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생각, 그냥 그곳에 있었으면 죽지는 않았을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게 밀려오곤 하네. (래군)

은행나무.. 노란 은행나무... 가을 햇빛에 반짝거리는 은행나무... (명수)

자원활동 면담을 위해 명륜동 사무실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어느 토요일~ 사회단체 사무실이란 과연 이런(?) 곳이구나 하는 느낌.. 철창문은 얼마나 삭막하던지 ㅎㅎ 그곳에 들락거린 건 겨우 1년 반 쯤 뿐이지만, 가끔씩 글쓰느라, 술마시느라 모기와 싸우며 밤새던 기억을 잊기는 쉽지 않을 듯. (유성)

잊어주실래요~ ^^;; (미류)

그곳에 가면, 층층마다 ‘나름 재미’가 있었다?! 명륜동 사랑방~
두고두고 봐도 신기했던 그래서 야금야금 살펴봐야지 했던 ㅎㅎ
파티션으로 자잘자잘 나뉘어진 공간을 옮겨다니며 활동가들 괴롭히기(?) 딱 좋았던, 복작복작 3층 공간 안에 화장실이 있다는 걸 처음 알고 좋아라했었던,, 사용금지 다음에도 왠지 아쉬워 양치는 되도록이면 거기, 4층!
5층은 또 어떻고~ 인권캠프 준비한다,하면 쪼르르 올라가 왁자지껄 : 발아래 펼쳐진 메마른 도시숲이 왠지 야릇했던 옥상. 거기서 안 되는 율동 만들며 창문 넘나들던 추억이 새삼스럽네요~
아! 문턱 닳도록 드나들었는데도 미처 가보지 못한 공간이 있었나니~ 이사 가는 날, 별별 물건 쏟아져 나왔던 5층 창고방! 여하튼, 미궁처럼 아직도 머릿속에 완전 그려지지 않는 명륜동 사랑방 ㅋ 층층마다 '나름 추억'이 방울방울! (괭이눈)

사랑방 활동을 시작하던 첫 해인 2004년,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랑방 사람들과 함께 들락거렸던 성대 앞 술집 '꽃들에게 희망을'. 그 곳에서 새로 만난 사랑방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와 운동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었던 게 유난히 생각나네. 솔직하면서도 진지한 서로의 고민들을 나누며 사람냄새에 가슴 따뜻해지며 '사랑방에서 운동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둥실둥실~ 그땐 그랬지. ㅎㅎ (씨진)

명륜동 사무실을 떠올리면, 성균관의 커다란 은행나무와 기도하러 가던 혜화동 성당이 그립다. 밤을 샐 때 마다 이른 새벽에 들리던 청소부의 낙엽을 치우는 소리도 정겹다. 즐겨먹던 간식 떡볶이, 순대, 칼국수도 생각난다. 무엇보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던 풀무질, 서울기획, 우체국에 근무하시던 ‘이웃’이 보고 싶다. (승은)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를 그었던 혜화문(동소문), 출퇴근할 때 항상 이 앞을 걸어서 지나다녔다. '문화1등구' 종로구와 '내고향' 성북구를 나누는 그곳은 서울성곽을 지었던 그 옛날부터 성문안과 성문밖을 나누는 경계였겠지. 요즘도 그 문을 경계로 땅값도 사람값도 다르다. 늘 눈에 띄는 모든 존재가 그렇듯 아직 올라보지 못해 가끔 아쉬운 곳. (준)

엄청 장사 잘 되던 가게 남한테 넘기고(아마 프리미엄 왕창 붙여 팔았을 거야), 바로 옆에다 뻔뻔시럽게 새 가게 차린 그 못된 부산오뎅집! 그래도 달콤 맵콤 떡볶이와 구수한 멸치 육수에 적신 오뎅은 정말 맛있었어. 처음엔 한 짓이 밉상이라 발길 끊자 굳게 다짐했지만, 결국 마음으로 모든 걸 용서하고 사 먹었더랬어. 그래도 꿋꿋하게 그 집 안 가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가 그 집에서 오뎅이랑 떡볶이 사 가면 모른 척하고 잘 먹더라. 아~~~ 먹고 싶다아~~~ (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