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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새벽

不文律 [불문율] 
글로 적어 형식(形式)을 갖추지는 않았으나 관습(慣習)으로 인정(認定)되어 있는 법 
-인터넷 한자사전 뜻풀이-



새벽이다. 아니, 새벽일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나를 이끄는 알람이 울리면,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눈도 뜨지 못한 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거리를 나선다. 그리고 정류장에 멈춰 서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담배를 한 개비 문다. 

"나는 이 영화를 내 20대에게 바치며, 바쁜 일정 속에서도 최고의 연기를 펼친 장학우, 양조위, 이자웅, 임달화에게 너무나 감사한다. 이 영화는 내 인생에서 최고의 영화이다." 

지친 담배 연기 속에서, 한 영화감독의, 자신이 만든 영화의 첫 기자시사회장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가 말했던 그 최고의 영화는 165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속 부조리한 현실을 비롯한 수많은 시위장면들이 담아, 당시 홍콩이라는 도시와 홍콩영화에 새겨진 불문율(천안문사태를 떠올리게 하지 말 것, 상영시간은 90분을 넘기지 말 것 등)을 어겨버렸다. 이후 그 시사회장을 마지막으로, 극장에서는 30여분 잘려진 채 상영되었고, 원본은 소실되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용은 1967년 홍콩의 뒷골목을 살고 있는, 격렬한 시위가 한창이며 경찰이 사람을 패도 당연한 시절에 세 친구의 이야기였다. 성냥개비를 물며 세상을 내려다보던 주윤발도 아니었고, 귀신과 사랑을 속삭이던 로맨틱한 장국영도 아닌, 이름 모를 세 인간들이 ‘미쳐가는 시대’ 속에서 행복하고 싶어 발버둥치며 좌절하는 이야기였다. 

"천국이 있을까. 이 시궁창같은 삶을 바꿀 천국이 우리에게 있을까. 천국이 있다면 그 곳은 어디일까." 그들은 천국을 향해 떠난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그저 똑같은 지옥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지옥 앞에 놓여진 자본이라는 불문율 앞에 한 명은 순응했으며, 한 명은 미쳤으며, 한 명은 거절해버린다. 시간은 흐르고 다시 1974년 홍콩의 뒷골목, 세 친구는 각자의 모습으로 다시 모이고, 그들 앞에 다시 새벽이 찾아온다. 

그 영화와 나의 인연은 초등학생, 아니 국민학생 시절 에덴동산의 선악과처럼 달콤하게 놓인 그 잘려져버린 빨간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발견하면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비참함으로 얼룩진 영화에 전이되어 세상이 원하는 순응이라는 불문율 속 내 자신을 가두어가고 있다. "참사를 보고도 고요히 흘러가게 지켜보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우가 아닌 듯합니다."는 일숙씨가 영화제 게시판에 남겼던 글을 보면서도 정작 내 자신은 흘러가듯 그 글을 읽어간다. 아무리 말해도 쳐듣지 않는 정부를 보며 가질 수 밖에 없게 되는 패배의식. 그것이 계속 되면 단순한 자조가 아니라 무기력해진 일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 그 일상을 순응하듯 살아가며 어쩌면 먼훗날 MB를 기억하기에, MB가 ‘당연한’ 시대를 살았다고 고백할지 모른다. 그렇게 미쳐가는 시대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알람에 맞춰 또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눈을 떠본다. 거리는 아직 어둡기만 하다. 나는 그저 새벽이 왔다고 되뇌일 뿐이 아니었을까. 담배를 비벼 끄며 저 너머로 시선을 돌려본다. 

문득 새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인권영화제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