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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밀양에 처음으로 가 보았다

세상 무엇보다도 신중하고 안전하게 관리, 운영되는 듯이 선전되는 핵발전소들이지만, 그게 별로 그렇지 않다는 건 이미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눈치를 챘다. 남한의 핵발전소들이야 말해 뭘할까. 저것들은 보나 마나 시한폭탄들이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품에 대한 시험 검사서를 위조하는 등 말도 안되는 비리들이 터져 나왔고, 핵발전소의 전기를 도시로 공급하는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에서도 정부와 한전은 잠시 대기하며 타이밍을 다시 재는 듯 했다. 그러고 몇 달이 지났다.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는 언론을 통해 접하고, 이치우 어르신의 소식이나 어르신들이 결사적으로 싸우고 계시단 건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내려가 본 적은 없었다. 핵발전소 저거 정말 위험하다는 얘기는 주변 활동가들과 종종 했지만, 정작 그들이 연대하러 갈 때는 따라 나서게 되질 않았다. 일상에 쩔어 서울에서 밀양까지의 먼 거리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어떤 무기력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미군 기지든 핵발전소든 송전탑이든, 남한을 지배하는 자들의 재산을 지키고 공장들을 돌리기 위한 물리적 근간들은 협상과 양보의 대상이 아니다. 주민들이 반발하면 갈라 치고 회유하고, 그래도 남은 부스러기엔 보상금 운운하는 딱지 붙이고 경찰 투입으로 마무리.

국정원이 빨갱이 사냥으로 남한 사회 전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자마자, 정부와 한전은 공사를 다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밀양에다 경찰 병력을 새카맣게 밀어 넣는 꼴을 보면서, 이미 먼저 달려가 있는 동료를 따라 처음으로 인권침해감시활동을 하러 내려가게 되었다.

진입부터 막는 건 뻔했다. 산 위의 농성장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산 아래서부터 막고 있었다. 평택 미군 기지 확장 반대 투쟁 때, 팽성읍에 경찰 계엄을 조성하며 모든 통행을 검열하던 경험에서부터 해서, 수많은 현장에서, 경찰은 헌법이 보장하는 여러 자유들을 제한하는 예외 상태를 물리력을 앞세워 손쉽게도 만들어냈었다. 지긋지긋했다. 지나가려면 기자증 등, 권위 있는 존재들로부터 받은 증명서를 내놓으라 요구했다. 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럼 못 지나가. 이유를 왜 너에게 말해야 하지? 길도 아닌 산을 타서야 주민들의 농성장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주민들과 연대하러 온 사람들이 모여 있는 농성장은 평범해 보이면서도, 뭔가 비현실적이었다. 단식 농성 중이던 50대 여성들은 그냥 산의 맨 흙바닥 위에 깔개에 한 장 놓고 담요만 덮고 누워 있었는데,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무장한 경찰 병력들이 방패 짚고 서 있었다. 보통은 누가 단식 한다고 누워 있으면, 적어도 조심스러워하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경찰 병력은 조금 떨어져 있지 않나? 사람 많은 대도시에서는 그러는데. 그러나 나 또한 그곳에 있는 내내 이 장면을 외면하고 있었다. 어떠한 수사도 없이, 누워있는 몸에서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모종의 결기가 공포스러웠다.

주민들은 빼앗긴 천막을 돌려 달라고 항의하고 계셨다. 전날 밤도 산 위에서 밤 이슬 그대로 맞으며 보내셨다고. 천막 안세우고 그냥 단식 하는 분들 덮어주기만 하겠다고 해도, 경찰은 나중에 주겠다고 적당히 대답할 뿐 완전히 무시 당하고 있다고, 화를 내며 말씀들 하셨다. 새벽에 너무 춥고 시장해서 컵라면이라도 먹으려고 모닥불을 피웠더니, 와서 소화기로 모닥불을 꺼버리곤 그 옆에 준비 중이던 컵라면과 물에도 뿌려버리더라고, 주민 한 분이 말씀하셨다. 저것들은 우리를 사람 취급도 안 한다. 개 돼지 취급한다고. 기자들 있을 때와 없을 때 태도가 너무 달라.

먹을 것도 덮을 것도 안 들여 보내주더니 국회의원이 오니까 넣어주는 시늉을 하고, 기자나 도시 사람들이 찾아오자 경찰의 조롱과 도발이 잦아드는 경험은, 어르신들께는 힘이 되기도 했지만 상처이기도 했다. 도시에서 온 경찰기동대의 권위적인 지휘관은, 젊고 많이 배운 사람들의 말과 눈은 신경 쓰면서도, 주민들에 대해선 그들에 대한 제 이중적 태도를 거리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수치심은 동등한 인간을 상대로나 느끼는 것이다. 나는 어딘가, 촌에서 땅 파먹고 사는 늙은 이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학대의 느낌을 희미하게 받았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당시, 동해에서 온 비구름이 서울까지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강원도 태백 산맥에서 비를 내리게 하려 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핵발전소는 가장 가난한 지역에 지어진다. 송전탑이 땅에 박히면, 그곳에 살던 존재들은 죽건 살건 알아서 할 일이다. 평등? 그런 건 같은 인간들끼리의 문제다.

한전 직원들을 공사현장으로 진입시켜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경찰은 주민이건 도시에서 온 사람이건 인권침해감시단이건 할 것 없이 길 옆으로 밀어붙이며 찍어 눌렀다. 평등하게 땅을 뒹굴며,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