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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후원주점

해미
후원주점이라… 사실 후원주점을 직접 꾸려본 적은 아직 없고, 2019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준비했던 후원주점을 찾아간 것이 후원주점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다. 거기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이름이었다. 평등한, 밥상? ‘평등’이라는 게 무슨 대단한 정치적 용어인 줄로만 알았는데, 삶 안에서 만져지는 것이었다니!
배고픔을 만족스럽게 해결하는 소박하고도 소중한 권리가 모두에게 당연한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적당히 따뜻한 여름날에 배를 채우고, 또 경쾌하게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게 어찌나 즐겁던지. 후원주점을 준비하는 마음과 그에 함께하는 마음이 무엇인지는 조금은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가장 먼저 떠오른 후원주점은 2004년 엑스존 후원의 밤. 국내 최초의 게이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였던 '엑스존'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면서 본격화된 여러 투쟁 중에 열렸던 것 같은데, 술을 마셨던 것 외에 당일의 기억이 가물가물... 후원의 밤을 떠올린 덕분에 오랜만에 검색을 하면서 당시 청소년 성소수자 및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가들, 투쟁에 함께 했던 표현의 자유 관련 인권단체와 법률활동가들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당시에 엑스존 투쟁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프리 엑스존' 사이트(http://free-exzone.or.kr)를 지금은 볼 수 없어서 아쉽지만, 이 이름들이 남아있고 그래서 다시 떠올리며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정록
후원주점에서 제일 안타까운 건, 주최 측이 준비한 행사에 아무도 집중하지 않는다는 거다. 너무 시끄럽고 다들 테이블별로 놀기에도 바쁘다. 이런 느낌이 나만의 것은 아닌지, 최근 후원주점을 보면 주최 측도 그런 욕심을 버리는 것 같다.

어쓰
10년까지는 지나지 않은 언젠가, 청소년 단체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준비했던 후원주점. 준비 비용을 아껴보겠답시고 주점 전날, 당시 사랑방-들 사무실에 모여서 모듬전을 한바탕 부쳤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 얼마나 비용을 아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커다란 파란색 플라스틱 바구니에 전지를 깔고, 그 위에 차곡차곡 전을 부쳐 올렸던 장면은 내 안에 오래오래 남아있다.

민선
후원주점, 한없이 어색하다가 어느 순간 주량의 임계치를 넘으면 한없이 최선을 다해 마신다. 잠깐만 들려야지 하고 시작 즈음 갔다가 마지막 정리할 때 나왔던 그때 또 그때 또 그때...

미류
2006년 인권운동사랑방이 후원주점을 열었다. '은행 털고 싶은 날'. 10년 만에 여는 후원주점이라고 했는데 내게는 첫 후원주점이었고, 마지막 후원주점이네? 이거 혹시 조만간 후원주점 한다는 예고편입니까?

디요
십수 년 전에 학교 주점을 함께 준비해서 겨우 마치고 첫차를 탔다. 이화여대 근처에서 너무 졸려서 눈을 감았는데 눈을 뜨니 다시 이화여대였다. 탔던 버스가 집을 지나쳐 회차 지점을 돌아 다시 이대로 돌아온 것도 모르고 잠든 것이다. 이제는 첫차를 타지 않는다. 그리곤 모 후원주점에서 나와 막차를 탔다. 졸다 눈을 뜨니 생전 처음 보는 동네다. 또 집을 지나쳐 남의 동네에서 급히 내린 것이다. 눈앞에 소문으로 듣던 맛집의 간판이 보인다. "악어" 맛있다던데. 언제 다시 와보려나.

다슬
단체의 후원주점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까? 물음표가 넘쳐났다. "대학주점 같은 느낌일까요?"라는 질문도 던져보았으나...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행성인 후원주점 스태프를 제안받고 응하게 됐는데... 와후!!! 엄청났다. 활동가가 이렇게 잘 놀고 유쾌했다니...;;;;; 세상이 활동가들을 놀지 못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누구냐? 활동가를 못놀게 하는게!!! 스태프로 일하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원
'후원주점'은 후원에 방점이 있는데, 왜 그렇게 티켓 사 놓고 못 가는 사람에게 그 티켓 나 달라고 하고 싶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