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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신입활동가 교육기간을 맺으며

아스팔트 표면이 일렁이던 8월 입방하여 해가 슬슬 짧아지는 초가을 11월, 드디어 공식적인 신입 활동가 교육 기간이 끝났다. 사랑방의 신입 활동가는 교육 기간이 자신에게 어떤 시간이었고, 또 어떤 시간으로 남길 바라는지 정리하는 보고서를 준비해야 한다. 교육 기간의 중심은 아무래도 신입 활동가가 사랑방을 잘 알아가기 위해 사랑방에서 준비해준 교육 커리큘럼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 지난 3개월의 과정은 나의 운동을 보다 선명히 되짚어보는 의미가 있었다. 사랑방 이전 내가 인연을 맺었던 운동에서 난 어떻게 움직여왔는지, 또 운동의 과정에서 무엇을 중시하는지, 앞으로 운동을 통해 얻고 싶은 건 무엇인지 등.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나와 사랑방의 ’다름’을 통해 발견되었다. 교육 기간 나는 나와 사랑방이 어딘가에서 자꾸만 어긋나고 미끄러진다는 느낌을 직면해야 했다. 그렇다. 지난 3개월은 절대 순탄치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사랑방은 말 그대로 어려운 곳이었다. 새로운 장소와 관계 맺기 시작한 누구에게나 낯설고 어색한 시간이 있다지만, 내게 사랑방은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을 인위적으로나마 최대한 빨리 사라지길 바라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 마음은 아마 상임 회의에서 각자 담당하고 있는 활동을 보고하고 또 사랑방을 주어로 말하는 기존 구성원들을 보며 들었던 조급함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방의 상임활동가가 되었음에도 사랑방을 대표한다고 하기엔 애매하다고 내가 느꼈던 이유가 ’신입 활동가’라는 상태 내지는 조건이라고 생각했기에, 적어도 교육 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이 꿉꿉함에서 벗어나겠다는 기대와 다짐을 하게 되었다.

교육 기간 나는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선 나와 사랑방의 다름을 좁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방안으로써 무엇이 왜 다른지의 정보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가능한 빨리, 또 많이 정보를 모으고 싶었다. 나와 사랑방이 적어도 ‘운동의 연결’이라던가 ‘체제 변혁’이라던가 하는 추상적인 차원에서 같은 지향을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과정이 오히려 수월하리라 자만한 부분도 있다. 결과는 물론 대실패였다. 나보다도 먼저 태어난 사랑방엔 내가 파악해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사랑방은 사랑방을 구성하는 활동가들에 의해 모습이 변하는 역동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신입 활동가와 사랑방 ─ 관계 맺음>. 이 꿉꿉함이 결국 나에겐 ‘관계 맺음’의 문제였다는 생각은 보고서 후반부에서야 들었다. 쓰면 쓸수록 내가 사랑방을 빨리 파악해서 ‘사랑방 활동가’라는 옷을 내가 입고 싶다는 조급함보다도, 내가 사랑방을 궁금해하듯 사랑방도 나를 궁금해하면 좋겠다는 갈증이 크게 느껴졌다. 교육 기간이 내게 남겼던 욕구는 사랑방과 신입 활동가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신입 활동가가 사랑방에 적응하는 것과 함께 사랑방에서도 새로운 방문객인 신입 활동가를 알아가는 기회가 확보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서를 공유하는 자리에서 주된 깨달음은, 역시나 관계 맺음의 모양은 모두가 다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사랑방을 어려워한 것처럼, 기존 구성원들도 신입 활동가인 나와 어떤 관계 맺음을 해야 하는지 어려운 시간을 보냈음을 확인했다. 가령, 누군가는 나의 관심 표현인 질문이 취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며, 물음표 대신 다른 형태의 말 건넴을 바란다고 말해주었다. 또 새로운 사람을 보자마자 호기심과 함께 질문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나와 달리, 누군가는 거리가 조금 가까워진 다음에야 궁금한 게 생겨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말보다도 몸을 부대끼며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찬찬히 스며들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설명해주기도 했다. ‘네가 그때 그랬구나.’ ‘너는 그런 걸 원했구나.’ 아홉 명 모두가 관계 맺음의 방식도 속도도 달랐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건 신입 활동가만의 고민은 아녔다. 이제 나만의 아쉬움이 아니라 우리의 아쉬움이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채워볼 수 있을지 이야기하게 되었다. 여태까지는 사랑방이 주어가 되는 말을 만드는 게 가장 우선시되는 목표였다면, 그 이면에 있는 각자의 ‘다름’을 드러내고 또 확인했으면 하는 바람을 확인했던 것 같다.

입방하기 전의 나는 내게 익숙한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누군가가 야! 하면 다른 누군가가 곧바로 예! 하며 답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의 선호와 욕구, 행동 패턴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편하게 움직여온 것이다. 입방하고 나서도 난 그냥 평소대로 말하고, 움직였다. 사랑방과 나는 이제 막 만나기 시작한 관계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따위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고선 말이 오가면서 미끄러질 때마다, 사랑방을 점점 멀게 느꼈다. 그러나 보고서를 공유하며, 비록 우리가 명확한 해답을 내지는 못했을지라도 최소한의 약속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서, 네가 그럴 줄 몰랐어. 그래도 서로가 미끄러진다고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더 서로를 알아보기로 약속하자.’

이제 이 보고서가 앞으로 내가 사랑방에서 활동해가며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본다. 타자를 알려면 적어도 사계절은 겪어봐야 한다는 말을 떠올려본다. 사랑방과 어설프게나마 보낸 두 계절은 내게 이런 교훈을 남겨주는 것 같다. 결국 관계 맺음은, 우리가 이렇게나 다름에도 불구하고 계속 함께 하자는 약속이구나. 여기서 필요한 건 관찰도 정복도 아닌 애정과 기다림이겠구나. 이제 나에겐 '기꺼이 엮여보자'며 지금 여기의 동료들과 잘 부대끼는 시간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