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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끝나지 않은 ‘밀양’

평생 기억할 수밖에 없는, 아니 기억해야만 하는 그런 날들이 있다. 밀양 주민들, 그리고 그 곁에 함께 있었던 모두에게 2014년 6월 11일은 그런 날 중에 하나가 되었다. 행정대집행이라는 형식적 외피를 쓴 채 경찰과 한전, 밀양시청이 합세하여 주민들을 상대로 토벌작전을 벌인 날. 농성장 주변 아찔한 낭떠러지로 미끄러져도, 밀치고 올라선 무게로 움막이 움푹 꺼져도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토벌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날 밀양 주민들, 그리고 그 곁을 지키고자 모였던 이들은 ‘사람’이 아닌, 그저 치워버리면 그만인 ‘물건’일 뿐이었다.

사람이 아닌 물건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쇠사슬을 목에 감았던 그 마음이 어떻든 간에 빠르게 제압하기 위해서는 거침없이 절단기로 잘라내면 그만이었다. 서로의 몸을 묶은 채 부둥켜안고 있던 이들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호소해도 잡아떼면 그만이었고, 알몸은 모포로 덮어 짐짝마냥 들어내면 그만이었다. 경련을 일으키고 호흡곤란을 호소하고 실신한 할매들에게조차 채증 카메라는 집요하게 따라 붙었다.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지켜왔던 이들의 삶터를 보란 듯이 부순 뒤, 그렇게 쓸어낸 자리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송전탑을 꽂고 싶었던 한전은 바로 나무를 베고, 펜스를 치고, 전선 작업을 하면서 공사 착수에 나섰다. 

농성 움막을 불법시설물이라 철거한다는 저들에게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함께 치워버려야 하는 불법 물건들에 불과했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를 외면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한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거침없이 밀어붙인 데는 우리의 ‘안전’ 따위는 고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게다. 129번, 127번, 115번, 101번 각 농성 움막별로 토벌작전이 이루어진 시간은 20~40여 분에 불과했다. “빨리 해치워버렸다”며 낄낄대는 경찰들, 숨이 가쁜 할매를 끌어안고 들 것을 달라는 이에게 “나도 숨이 가쁘다”며 조롱하고, 부상자가 헬기로 이송될 때 인근에 있던 여경들은 손으로 V자를 그리며 기념촬영을 해댔다. 농성 움막별로 고작 수십 명의 사람들을 해치우기 위해 2000여 명의 경찰 병력을 동원하면서, 한전은 “주민들의 대승적 결단으로 큰 충돌 없이 농성 움막을 철거”했다고 발표했다. 

“송전탑 공사의 90%는 경찰이 한 거나 다름없다”는 주민의 이야기처럼 밀양에서 공권력은 언제나 한전과 정부의 공사 강행 의지만을 대변하며 폭력적으로 작동했다. 한낱 폭력 집단에 불과했던 공권력의 실체를 보면서, 평생을 살며 제일 큰 전쟁을 지금 밀양에서 치르고 있다는 팔순의 할매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슴이 내려앉던 순간들을 함께 겪었던 사람들이 그날 농성 움막이 철거된 후 다시 모였다. 주민들의 진입을 막으면서 공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주변 곳곳 많은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는 상태에서 우린 서로의 몸과 마음을 걱정했다. 원통함을 쏟는 주민들과 함께 눈물을 쏟기도 하고,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치러진 전쟁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던 우리를 함께 격려하는 박수도 쳤다. “잡은 손 놓지 말자”는 힘찬 위로를 건네면서 서로를 다독이며 그날을 함께 정리했다. 


송전탑 공사 강행의 이유로 들먹였던 신고리 핵발전소는 위조 부품 문제로 준공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절 대화를 거부한 채 명분 잃은 공사를 위해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제압하고 나선 것은 정부 뜻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 이들에게 보내는 신호탄이라는 생각이 든다. 송전탑 부지를 빼앗았으니 이제 서둘러서 공사하면 끝이라고 당장은 득의양양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10년, 한 치의 양보 없이 공사를 밀어붙여 오면서 주민들을 싸움에 나서게 한 것은 저들이었지만, 끝내게 하는 것은 저들이 아니다. 목에 닿았던 절단기의 서늘함을 생생히 기억하는 주민들은 다시 싸움을 이어갈 거점을 준비 중에 있다. 마지막 한 기까지 막아낼 것이고, 기어이 다 들어선다고 해도 부정의 그 자체인 송전탑을 뽑아낼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밀양은 말한다.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아래서 계속 살아가면서 삶터를, 공동체를 흔들고 부수는데 거침없던 저들의 행태를 밝히는 증언자가 되겠다고 주민들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밀양에서 그저 집단적 폭력으로만 작동한 공권력과 마주했던 많은 사람들이 주민들과 함께 그날의 야만을 증언하고 있다. 생명과 안전을 철저히 무시하며 벌인 진압작전을 성공적이라고 자축하면서 잔혹한 국가폭력의 민낯을 숨김없이 드러낸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공권력 누구라도 폭력과 야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을 철거하는데 거침없도록 지시하고 진두지휘했던 이들, 이성한 경찰청장, 이철성 경남경찰청장,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이 먼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끝이 아니기에 포기할 수 없다는 주민들, 그렇기에 밀양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밀양과 맞잡은 손을 꼭 붙잡고 그 길을 함께 나서는 수많은 ‘밀양’들이 있다. 누군가의 삶과 미래를 함부로 강탈하며 자행되어온 국가폭력을 끝내기 위해 밀양을 통해 배운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를 다시 ‘밀양’에서 실천해야겠다. ‘사람’의 자리를 지키고 세우는 ‘밀양’의 싸움에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