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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평화롭게 살려면 알아야 한다. 사드(THAAD).

지난 몇 주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반복되어서는 안 될 역사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당혹스러운 시간이었다.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가 과거 강연과 신문 칼럼을 통해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사죄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문창극 망언에 힘이라도 받은 것인지 일본 정부는 6월 20일 ‘고노 담화 검증 보고서’를 발표했다. 고노 담화는 일본 정부가 제국주의 시절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93년에 발표한 정부 담화이다. 그런데 아베 정부가 이를 ‘검증’하겠다며 발표한 보고서는 93년 당시 담화 발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정치 외교적 협의과정을 서술하며 ‘고노 담화’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아닌 한일 양국 협의를 통해 편집된 정치적 산물로 깎아내리고 있다. 

이를 한일 양국의 극우 보수 세력이 벌이는 정신 나간 짓으로 치부하기에는 이들이 손에 쥐고 있는 권력이 어마어마하다. 아베 정권은 군대보유, 교전권 금지를 명시한 헌법을 개정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꾸고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해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하겠다고 공언했다. 군대와 교전권을 확보해 45년 이전 일본체제를 회복하겠다는 아베 정권으로서는 제국주의 시기 일본의 행위를 반성하는 고노 담화를 그대로 둘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대사를 불러 강력 항의하고 외교부 명의의 비난 성명을 발표했지만 아베 정권이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바로 지금 이루려는 목적과 한국 정부의 이해는 일치한다. 바로 북한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적시하고 중국을 잠재적 위협으로 설정하는 한미일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하는 것이다. 문창극은 한바탕 희극으로 끝났지만, 이런 사람을 총리 후보로 내세우는 집단의 심성과 이해관계는 아베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한미일이 묶여야 하는 이유 : 미사일방어체제(MD)


김관진 국방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에 대해 주한미군이 이를 배치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밝혀 사실상 사드 한반도 배치를 수용하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2012년 무산된 한일군사정보협정도 한미일 간 군사정보공유 양해각서의 형태로 계속 추진할 것을 밝혔다. 마침 주한 미 대사로 내정된 마크 리퍼트는 4월 중순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3자 안보토의‘ 미국 측 대표를 맡았다. 

미사일방어체제(MD)는 냉전 시기 소련과 중국의 핵무기가 미국에 떨어지기 전에 공중에서 요격하겠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군사방어체제이다. 일단 발사된 적의 미사일을 레이더로 정확히 탐지하고 궤도를 예측해 요격해야 하므로 미사일방어체제에는 요격미사일과 함께 레이더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한미일 미사일방어체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위성과 레이더를 통한 군사정보공유가 반드시 이루어져 하는 것이다. 저고도 방어체계로 패트리어트 미사일, 고고도 방어체계로 이지스함에서 발사되는 SM-3와 사드(THAAD)를 미국은 운용 중이며 고고도 방어체제일수록 광범위한 지역을 레이더로 미리 탐지해 멀리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요격해야 하므로 군사작전범위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한국에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막아보겠다며 저고도 방어체계인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배치되어 운용되고 있으며, 주일미군은 이지스함에 SM-3를 운용하는 중이다. 

단일 무기체계로는 사상 최대의 비용이 들어가지만, 미사일방어체제는 총알을 총알로 맞춰서 떨어뜨리겠다는 발상을 현실화하려는 것이어서 요격 성공률이 매우 낮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지만 그 목표는 쉽게 달성하기 힘들어서 군수업체로서는 블루오션도 이런 블루오션이 없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50년 이상 계속해서 개발되고 돈을 쏟아 붓고 있는 무기체계인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방어체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한 쪽이 성능 좋은 방패를 구비하면 이를 뚫을 수 있는 더 좋은 창을 개발하게 되는 게 국가 간 군비경쟁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상대방의 군사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상대가 자신의 군사력을 억제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다. 방패는 자유롭게 창과 칼을 휘두르기 위해서 드는 것이다. 바로 그 와중에 미국 본토 외에는 처음으로 한반도에 사드(THAAD) 배치 논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드가 운용하는 AN/TPY-2 레이더는 탐지범위가 2000km에 달해 중국 군사력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미사일을 한국에 발사한다면 짧은 거리를 저고도로 비행하므로 사드와 같은 고고도 방어체계는 무용지물임에도 일본이 아닌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려는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한국 정부의 미사일방어체제 편입을 계속 반대해왔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놓고 군비경쟁과 대결태세를 정당화하지만 기실 그들은 중국과의 대결을 염두에 두고 그에 걸 맞는 군비를 확충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도움으로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에서 이기고 싶어 하는 한국 정부는 도리어 열강들의 군사적 대결 구도에 끌려들어가 국민들은 원치 않는 군사적 긴장과 대결을 지속하게 될 것이다. 구한 말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무대가 되었고, 해방 후 파멸적인 전쟁을 겪었던 한반도의 위기구조는 전혀 나아진 것 없이 새롭게 구성되고 있다. 

권력자, 위정자들의 횡포에 하루하루 버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국제관계, 한반도 평화는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높으신 분들의 관심사만은 아니다.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는 TV 조선을 하루 종일을 보면서 한반도 정세를 예의주시한다. 일본의 우익 청년들은 과거 대동아 전쟁 시절로 돌아가 삶의 희망을 찾으려고 하기도 한다. 국가 간 정치, 외교, 전쟁, 평화 이런 문제는 골치 아픈 것처럼 말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젊은이들은 이미 영토문제나 국가 간 스포츠를 통해 중요한 행위자로 행동하고 있다. 문창극 망언에 분노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짐짓 아닌 척 하면서 보수 세력들이 미국, 일본과 구축하려는 군사동맹시도에 분노해야 한다. 

‘평화에 대한 권리’, ‘평화로운 삶을 추구할 권리’가 우리에겐 있다. 국가는 전쟁을 포함한 군사적 안보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고 지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평화권’은 인간의 생명, 안전, 행복을 근본적으로 박탈하는 전쟁이 결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단지 도덕적 차원에서 전쟁 반대를 외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적극적으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과 의지의 발현이 평화권의 핵심이다. 2014년 동아시아에서, 한반도에서 평화권을 주장하고 실현을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국가에게 전쟁으로부터 인민을 보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 평화를 위한 군비 축소, 평화와 공존을 위한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연대와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 병역거부권의 쟁취, 군대의 민주적 재구성, 외세의 점령과 억압에 저항하고 반대할 권리를 주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싸움 그 자체가 우리의 정당한 권리로서 평화권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보장해주기 때문에 권리가 아니다.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욕구는 그 자체로 정당하고 당당하기 때문에 보편적 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