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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안식년 휴가 6개월, ‘흑(黑)역사’(?)

올해 상반기는 인권운동 20년차인 나에게 ‘흑(黑)역사’였다. 왼쪽 발목의 불편함과 통증을 더는 둘 수 없어서 남아있는 안식년 6개월을 이용해서 발목 치료와 재활을 위해 보냈고, 검찰에 기소되어 피고인으로서 형사재판을 받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아직 안식년 중인 활동가가 있는데, 또다시 내가 안식년을 쓰는 것은 남아있는 활동가들에게 마음으로나 업무로나 부담이 늘어나는 일임을 알지만, ‘어쩌겠는가! 아픈데....’ 이런 마음으로 안식년을 쓰기로 했다.

발목재활 치료를 하면서 이제껏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통증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안녕, 헤이즐’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암을 앓고 있는 헤이즐이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는데, 의사가 헤이즐에게 ‘얼마나 아프냐고, 통증의 단계를 1에서 10까지 묘사해 보라’고 이야기를 건낸다. 아! 저 장면이야. 내가 주사치료실과 운동치료실에서 의사와 운동치료사에게 매일 듣던 저 말. 통증에 따라 운동수준을 정해야 하므로 아침 인사처럼, 오늘 발목 상태는 어떤지 항상 확인하기 위해 듣던 말이, 영화 속 대사에 나오니, 참 신기했다. 병명도 다르고 아픈 정도도 다르지만, 헤이즐을 통해 죽음을 맞이하는 나의 태도와 중년에 들어선 인권운동가로서 삶의 방식을 변화하도록 도와주었다. 치료를 시작한지 9개월이 지난 지금, 발목은 물론이고 몸 전체가 훨씬 좋아졌다. 지루하지만 운동이 주는 기쁨도 몸이 좋아지는 신기함도 느끼면서 지금의 내 몸에 잘 적응하고 있다

4월 중순쯤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았고 곧이어 4월말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피고인 소환장을 받았다. 검찰 기소장을 받고는 어이가 없었고 법원소환장을 받았을 땐 불안감이 올라왔다. 동료들과 상의해서 변호인을 선임하고 재판준비를 했다. 2011년 등록금집회와 희망버스에서 경찰 인권침해 감시활동을 했는데, 검경은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해서 형사재판대에 나를 올려놓았다. 방청객으로 혹은 증인으로 법정에 있을 때와 달리 피고인으로서 형사재판은 나를 많이 긴장케 했다. 피고인으로 이야기할 때 항상 일어서서 이야기 하고 재판부를 볼 때는 항상 올려봐야 하는 뭔가 알 수 없는 재판의 위계질서에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친구나 지인들이 미사에 참여할 때 언제 일어서고 앉아야할지 힘들다고 호소할 때는 잘 몰랐는데, 그이들의 심정을 이제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묵비권을 행사했는데, 재판에선 검사가 묵비권 행사를 두고 나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했을 때는, 참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인권의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현실에선,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조건임을 잘 배웠다고나할까. 운이 좋아서 1심에선 무죄를 받았다. 검찰은 사실이 왜곡되었고 법리해석이 잘못 되었다고 곧 항소했다.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손익계산을 두드려보면 재판은 이겨도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손해 같은 느낌이 든다.

병원과 법원을 오고 간 6개월,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다. 좋다!!! 힘든 일 겪을 만큼 겪고 견디었으니 이제 곧 백(白)역사가 오겠지, 인생은 과정이고 결과이며 돌고 도니까. 지면을 빌어 인권운동을 지켜준 동료활동가들, 힘든 시간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의사선생님, 운동치료사 선생님, 변호사님, 치유의 시간을 함께 보내준 도반들께도 진심을 다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또한 누구보다 잘 견뎌낸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