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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영화를 만나다] 잔혹한 폭력을 퍼붓고 조용히 사라지다

‘폭력의 악순환’ 주변만 맴도는 <구타유발자들>

김일숙
영화는 제목부터 섬뜩하다. ‘맞을 짓’을 한 인간에게 구타의 책임을 돌리나 하는 의구심도 든다. 폭력의 공포를 영화화한 이 작품 속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다양한 폭력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다. 등장인물 8명의 위계질서 마디마디에서,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폭력은 살아 춤을 춘다.

사람들은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며, 존엄하다는데….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아 서로에게 형제자매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다는데…. 영화 속 캐릭터들은 이 말씀을 깡그리 무시하고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악착같이 패고, 끝장날 때까지 악랄하게 복수한다. 어느 누구도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모두 피해자가 되어 공포에 벌벌 떨고, 피범벅이 되어 쓰러진다.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끊임없이 터지면서 까마득히 사라지는 대화. 이들은 폭력과 복종 속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잊은 듯하다.


일상에 널려있는 폭력들

한적한 교외 도로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일상에 널려있는 폭력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한다. 새로 뽑은 흰색 벤츠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 성악과 교수 영선(이병준 분)은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달린다. 옆자리에 앉은 제자 인정(차예련 분)이 준법정신 운운하자, 지키는 놈이 바보라며 비웃는다. 이때 교통경찰 문재(한석규 분)가 교통위반딱지를 떼자, 영선은 문재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호로 자식아~ 평생 짭새나 해 먹고 살아라”. 응얼대고 이죽거리는 말투, 똥 씹은 얼굴로 무시하듯 쳐다보는 눈빛. 자기 할 말만 하거나, 침 뱉는 불쾌한 행동이 꾸역꾸역 이어진다.

영화는 슬슬 폭력의 수위를 높이면서 공격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 신사인 척 위선을 보이던 영선이 인정에게 다가가 연기를 가르쳐 준답시고 침을 번들거리며 키스를 퍼붓는다. 인정이 당황해서 쏘아보자, 영선은 연기라며 호흡을 척척 맞춰보자고 요구한다. 인정이 끝내 거부하자, 영선은 강제로 인정의 가슴을 만지고 스커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팬티까지 벗긴다. 인정은 핸드폰으로 영선의 머리를 찍어 버리고 차 밖으로 도망치지만, 또다시 끔찍한 폭력의 한 가운데 놓이게 된다.

동네 사내 원룡(신현탁 분)과 홍배(정경호 분)는 왕따 ‘현재’를 자루에서 흙구덩이로 내던지며 괴롭히고 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이 짓이 얼마나 잔혹한 짓인지 알지 못한 채 그들 나름대로 재미있게 분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두 사내를 유난히 어수룩하게 그렸다. 동문서답하는 대화, 핵심을 빗겨가는 상황 파악…. 결국 그들의 잔혹한 행위는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시선. 뭣도 모르면 저렇게 끔찍하게 행동한다는 시선이 위험천만해 보인다. 반면, 도망간 인정에게 ‘집에 가자’며 목청껏 외치는 교수의 모습은 교활하다.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졌다는 ‘인간’이 한 ‘여성’을 강간하려 했으면서도 죄책감도 없이 태연하기만 하다.

극 중 유일한 여성인 인정은 관객의 분신으로 보인다. 관객이 영화의 극적 시공간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장치인 셈이다. 관객은 인정의 시선으로 영화의 폭력장면을 목격한다. 결국 폭력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인정을 통해 자신 또한 잔혹한 폭력 속에 속수무책으로 놓여 있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폭력을 끊을 수 있는 지점은 어디에…

동네 사내들이 복종하는 시골 청년 봉연은 인정 앞에서 충격적인 폭력 장면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영선에게 생 삼겹살을 먹이고, 현재를 개 훈련시키듯 땅바닥을 뒹굴게 하고 끝내 바지와 팬티까지 벗게 한다. 또 교수인 영선과 고등학생인 현재를 싸우게 하고, 원룡과 홍배에게 인정을 강간하라고 명령한다.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서 폭력 행위를 강요하는 것, 그 강요와 명령에 복종하는 것. 명령도 복종도 모두 폭력의 주문이 되어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학대하는 잔혹한 폭력 행위를 끝없이 촉발시키고 있을 뿐이다. 겁에 질린 영선이 ‘말로 합시다!’하며 소리 죽여 부탁해 보지만 봉연은 무시한다. 결국 영선은 현장에서 도망친다. 인정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악을 쓴다. ‘그만해. 당신도 인간이잖아!’ 봉연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나 인간 아닌데요. 난 개에요’하며 폭력을 즐기기 시작한다. 상황은 최악이다. 인간이 인간이길 거부하고 개라고 자처하며 물리적인 폭행을 자행하는 순간, 우리는 할 말도 잃고 희망도 잃는다. 착하고 순박해 보이는 시골 청년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는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폭력의 근원’에 다가서려 노력하지만 끝내 영화는 그 근원을 보여주지 않는다.

순경 문재를 데려온 영선은 ‘모두 현행범이라며 잡아 가라’고 악쓴다. 경찰복을 입은 문재는 경찰로서 해야 할 임무와 책임을 무시하고, 파괴적인 폭력의 실체를 드러낸다. 문재는 자신에게 개처럼 구타를 당한 봉연이 복수하기 위해 동생 현재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며 봉연을 죽도록 패기 시작한다. <구타유발자들>는 문재와 봉연의 옛 관계를 비추면서 진정한 폭력의 유발자가 일명 ‘야만인’이라 불리는 문재라고 말하는 듯하다. “늘 패던 문재는 ‘경찰’이 되었고, 늘 맞던 봉연은 여전히 맞는다.”며 봉연을 조롱하고 구타하는 문재. 영화는 끝내 폭력을 끊을 수 있는 희망적인 지점을 찾지 못한다. 잔혹한 폭력 앞에 위태롭게 서 있는 인정은 영화 내내 ‘당신도 인간이잖아!’하며 ‘인정’에 호소할 뿐이다. 폭력의 악순환이 난무하는 현재 속에 동생 ‘현재’만을 남겨 놓고 문제의 인간 ‘문재’는 끝내 조용히 사라진다. 끝난 듯 보이지만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봉연’은 곧 상처를 회복하고 기력을 되찾으면 행동을 개시할지 모른다.


폭력들 사이의 차이 성찰 부족

감독은 이 잔혹극에서 퍼붓는,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을 통해 역설적으로 ‘비폭력’을 말하고 싶었다는데…. 과연 반복적이고 과장된 폭력이 반(反)폭력 혹은 비(非)폭력에 대한 열망을 그려낼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연속되는 암흑 속에서는 빛에 대한 상상마저 흐릿해지듯, 영화에서 폭력을 넘어서는 관계나 힘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단순한 교훈의 주변을 맴돌면서 지속적인 폭력을 무방비 상태로 경험하게 하는 것으로, 과연 폭력을 넘어서려는 감성과 인식이 돋아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이 영화가 다양한 폭력들 사이의 차이를 제대로 성찰하지 않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마저 너무 쉽게 허물어버린다는 데 있다. 구타 혹은 폭력이라는 대명사 속에 폭력의 원인과 양상들 사이의 차이는 봉합돼 버리고 서로 다른 폭력의 연쇄 고리는 하나의 고리로 억지스럽게 합쳐진다. 폭력의 피해자였던 봉연이 다른 희생양을 찾아내 자행하는 ‘피의 보복’, 그리고 봉연이 인정에 대한 강간을 명령하는 폭력은 과연 같은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일 수 있을까. 게다가 폭력의 악순환, 뫼비우스의 띠처럼 누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영화 속에서 유일한 여성인 ‘인정’이 경험하는 폭력은 현실감을 잃고 둥둥 떠다닌다. 문재가 봉연에게 가했던 폭력이 과연 인정을 강간하라고 명령하는 봉연의 폭력을 낳은 원인인가. 강간의 공포 속에 끊임없이 내몰리는 인정 역시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호명되어야 하는가.

폭력 그 너머를 보여주지는 못하더라도 다양한 폭력들의 원천에 대한 정확한 성찰은 있어야, 사회 곳곳에 눅눅히 배어 있는 폭력을 걷어낼 수 있는 할 줄기 빛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인권오름 제 7 호 [입력] 2006년 06월 08일 2: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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