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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몸통'은 양승태가 아니라 사법부 자체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사법왕국이 무너질 때 사법개혁도 가능하다

사법농단 사건으로 법원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사법개혁의 과제를 안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지 1년이 지났다.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자료제출 거부, 압수수색 영장 기각으로 수사를 방해하며 '방탄법원'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3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상, 고영한, 차한성 전 대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일부 이루어졌다. 사법농단 사건 수사가 시작된 지 100일이 지나도록 답보상태에 있었는데, 이제 '몸통'을 조준하게 되면서 물꼬를 틀 거라는 기대가 표출됐다. 하지만 입수한 양승태의 USB에서는 이미 파일을 삭제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기본이다. 그런데 사법농단 사건을 겪으며 지금 우리가 겨냥해야 할 '몸통'은 양승태만이 아닌 것 같다.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재판거래 
 
작년 초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정권 눈치를 보며 길들여진 법원 내부의 문제로 생각했었다. 이미 앞서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이 실체로 드러나 파문이 있었다. 사법부마저 예외가 아니라는 게 암담했지만 어딘들 권력기구는 다 같은 속성이겠거니 하고 자조했다. 일 년이 지나고 올 초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수집하고 원세훈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에 대해 청와대와 소통해왔다는 게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사법행정권 남용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에 상고법원 설치의 '윤허'를 구하고자 양승태 대법원에서 한 재판거래가 드러났다. 
 
거래된 건 무엇이었나.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들은 전범기업과 일본정부에 낸 배상 청구 사건을 지연시켰고, 평생 사죄 받을 날을 기다렸던 많은 고령의 피해자들이 돌아가셨다. 위헌 판결이 난 박정희 독재정권의 긴급조치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뒤바뀌었고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은 사라졌다. 해고는 살인이라 외치며 거리에서 보낸 날들의 숫자만큼 절을 올렸던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건 미래의 위기를 이유로도 기업은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민 의사를 무시하고 송전탑, 해군기지 공사를 폭력적으로 강행한 것도 '공익'으로 포장됐다. 이러한 재판결과는 지금도 이어지는 고통이다. 
 
권력집단들이 저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무너지고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에 대해 사법부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과거사 정립',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 '국가경제발전 최우선 고려', '노동 및 교육 부문 개혁'에 공헌했다며 자평했다. 권력과 결탁한 사법부에 정의는 없었다.   
 

양승태 대법원의 일탈로만 볼 수 없는 이유 
 
그러나 이런 사법농단 사건을 양승태 대법원의 일탈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지금 법원은 대법원장을 필두로 권력이 상향 집중되는 구조다. 법관의 판단에 법과 양심만이 아니라 권력 관계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튀는 판결하지 말라"는 수장의 압박이 통할 수 있었고, 법과 양심을 저버리며 이에 충성하는 판사들이 있을 수 있던 배경이다. 이런 조건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양승태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양산될 수 있는 법원에서 사법농단은 언제든 재연될 수밖에 없다. 지금 주목해야 할 '몸통'은 양승태만이 아니라 사법부 자체여야 한다.  
 
재판거래가 드러나기 전부터 사법부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어왔다. "국민들은 법관이 사법부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로부터도 온전히 독립하여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하길 원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하며 했던 말이다. 독립성을 잃은 사법부는 그 존재 이유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독립성이 확보될 수 있는가이다. 

 
민주적인 사법부가 필요하다 
 
사법부의 독립은 사법권력의 독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하는 사법부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판사가 아니라 정치적인 판사로 권력집단화 되면서 그동안 사법부는 사법왕국으로 군림해왔다. 사법왕국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사법개혁은 불가능하다.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가 가로막히고 외부의 견제와 개입이 차단되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사법농단 사건에서 드러났듯 사법부에 민주성은 없었다. 민주적인 사법부에서 독립성도 지켜질 수 있다. 
 
어떻게 민주적인 사법부를 만들어갈 것인가가 사법개혁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법원의 모습은 사법개혁을 말하지만 무엇을 위한 사법개혁인지, 법원의 제자리 지키기를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시법농단 사건의 주역인 법원행정처가 자체개혁안을 만들어내면서 셀프개혁에 그치려는 게 아니냐는 논란도 제기됐다. 무너진 신뢰보다 떨어진 권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만 골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속에서 얼마 전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회의 신설, 재판제도 개선을 위한 개혁기구 마련을 주요골자로 한 법원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개혁 방안은 사법부 안팎으로 어떻게 민주성을 담보해나갈 것인지로 구체화 되어야 한다.  
 
사법부의 눈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가린 이유가 공정한 재판을 위한 것이라고들 한다. 사법농단 사건으로 드러난 사법부는 그 눈이 권력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가리는 것이 대책처럼 이야기된다. 권력과 권위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의 눈높이에서 정의롭게 판단하는 사법부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안 보게 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잘 보게 할 것인지로 질문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사법농단 사건을 겪으며 사법개혁의 요구가 드높은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사법부의 눈을 어디로 향하게 해야 할 것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