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지난 일이 떠올랐다. 늦게 퇴근한 날이었다. 대문에 이르렀을 때 어둠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허리를 굽혀 내려다보니 길고양이 네 마리가 정신없이 음식물쓰레기봉투를 찢어 그 안을 헤집고 있었다. “허허, 이놈들 봐라.” 인기척을 느낀 한 녀석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혼비백산하여 반사적으로 줄행랑을 쳤다. 옆에 있던 녀석들도 얼떨결에 함께 내달렸다. 그런데 한 녀석만이 여전히 음식물에 코를 처박고 있었다. 내 두 손에 들어올 만큼 작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였다. “어허~!” 그제야 녀석도 나를 올려다보았다. 바로 내빼려니 했는데 웬일인지 녀석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비틀거렸다. 엄마 아빠 언니가 다 도망간 형국이니 녀석으로선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굼뜨게 도망가는 녀석을 보면서 엔간히 배가 고팠나 보라고 중얼거렸다. 깔끔하고 도도하기로 정평이 난 고양이가 음식물쓰레기를 뒤진다는 건 극도로 굶주렸을 때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서다.
쓰레기를 먹는 이유
동네에 길고양이가 유난히 많다. 깊은 밤, 녀석들은 앙칼지게 소리를 내지르며 격투를 벌이고, 곡하듯 울어대기도 한다. 그러든가 말든가. 다만 녀석들이 또 쓰레기봉투를 찢어놓은 건 아닐까 그게 걱정될 뿐이었다. 동네에 음식물쓰레기 수거함이 없어 정해진 날에 쓰레기를 내놓는데, 봉투에 생선뼈 한두 개만 들어가 있어도 녀석들은 어김없이 봉투를 발라놓는다. 그 바람에 쓰레기 수거 다음 날이면 비어져 나와 뭉개진 음식물 찌꺼기로 동네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 기사를 읽고서야 고양이들이 음식물쓰레기에서 먹을 것을 찾는 습성이 있는 게 아니라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를 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보 같으니. 사람인들 그렇지 않단 말인가) 흔히 갓난아기처럼 울어대 불경스럽게 여기는 그 울음소리도 실은 생존이 위태로울 때 내뱉는, 구원을 호소하는 신호임도 말이다. 하여 그 뒤로 녀석들이 먹을 만한 음식이 남았을 땐 문 앞에 내놓았다.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몇 녀석을 기억하고 있다. 번번이 쓰레기봉투를 찢어놓은 주범) 다음 날 혀로 핥은 듯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보노라면 신기하고 묘했다. 그리고 오늘 또 이 녀석이 문 밖에서 서성이면 어쩌나 하는 알 수 없는 책임감이 일었다. 이참에 사료를 사서 매일 줄까 생각도 해보았다. 오래 고양이를 길러온 친구는 매일 줄 자신이 없으면 그러지 말라고 했다. 한번 사료를 먹은 길고양이는 더는 쓰레기를 뒤지지 않을 것이므로 매일 주지 않을 경우 되레 배만 곯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매일 먹이를 놓아주면 그 고양이가 머지않아 ‘친구들’까지 데려올 터이고, 그럼 앞집 옆집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며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님을 확인시켜주었다.
결국 나는 여전히, 쓰레기봉투에 넣을 음식 찌꺼기를 모아 내주는 정도의 ‘무례’만 가끔 범한다. 일본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길고양이를 함께 기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길고양이들처럼 생존이 숙제인 지금 우리에게, 그럴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덧붙임
녹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