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인 인터뷰

“초짜 활동가로 처음 만난 사랑방은”

정용욱 님을 만났어요

이번 달에는 노란리본인권모임의 원년멤버였다가 개인사정으로 오랜만에 다시 활동을 시작한 정용욱 님을 만났습니다. 이달 후원인 인터뷰를 제가 하기로 한 것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마감이 지나서야 알게 됐거든요. ㅠㅠ 마침 노란리본인권모임이 있는 날이라 사무실에 온 용욱 님께 SOS를 청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렇게 사랑방과 오랜 기간 깊은 인연이 이어져오고 있다는 게 새삼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처음 사랑방을 오갔을 때 느꼈다는 설렘이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라면서 용욱 님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0^

 

◇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정용욱이라고 합니다. 막상 자기소개를 하려니 할 말이 안 떠오르네요.

 

◇ 사랑방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십 수 년 전 인권운동에 처음 발을 디디고 같이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랑방을 알게 됐어요. 중간에 활동에서 떠나있던 시간도 있어서 소홀해지기도 했지만 어찌됐든 사랑방과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는 것 같아요.

 

◇ 그 당시 사랑방의 첫 인상은 어땠을까 궁금해요.

 

아무래도 초창기 기억이 강하게 남네요. 인권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초짜 활동가인 제게 사랑방이란 공간은 뭐랄까 경외심이 느껴지는 곳이었어요.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활동가분들,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게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또 한편으론 활동에 대한 모범(?)이랄까요, 되게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활동가 개개인뿐 아니라, 사랑방이라는 조직의 내부 풍토가 그랬던 것 같아요. 늘 북적거리는 곳이었고요. 회의도 많았지만 지나가며 들리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사랑방에 갈 일이 있으면 좋았던 것 같아요. 설렜던 것 같고. 사랑방을 통해 새로 알게 되는 것도, 새로 알게 되는 사람도 많았고요.

 

◇ 그때 어떤 활동을 같이 하셨어요?

 

2002년 초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때 연대활동 어디에나 사랑방 활동가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을 함께 했어요. 병역거부 운동이 규모를 갖추면서 주도적으로 그 운동을 하는 그룹들이 생기고 사회적으로 알려지기 전이었어요. 우리 내부의 문제를 먼저 발견하면서 했다기보다, 외국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게 있구나, 근데 우리나라에 이미 그런 사람들이 엄청 많았구나 이렇게 알게 된 거였어요. 오랜 역사가 있었는데도 그 존재가 있음을 알게 되고, 그런 시각을 갖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거죠.

 

◇ 지난 6월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는데,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남달랐죠. 과연 될까 싶었는데 이렇게 되는구나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예전 기억들이 스쳐가면서 먼저 떠났던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해온 사람들에게 고맙기도 하고요.

 

◇ 어떻게 인권운동을 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으면서 이런저런 고민해볼 수 있는 토양이 됐었죠. 사회 나가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인권운동으로 생각하진 않았는데, 마음을 먹게 된 건 우선 군대의 경험이었어요. 군대를 좀 늦게 갔는데 하나도 낯설지가 않은 거예요. 학창시절 내내 대학에 이르기까지 사회에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모든 것의 압축판이랄까 원형이 여기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보통 군대 갔다 오면 사람 된다고들 하잖아요. 군대에서 사회생활을 배운다는 게 뭘까 고민이 많이 들었어요. 나도 자유롭지 못하구나, 심지어 내가 속했던 운동사회 내에서의 경험들도 병영사회의 잔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때마침 운동사회 내 성폭력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고요. 그렇게 군대를 경험하면서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이제껏 대의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아닐 수 있겠다 싶었고,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게 뭘까 그런 고민을 하다 그게 인권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제대를 했고 학교 선배들이 만든 단체에서 같이 활동을 하게 된 거였죠. 인권과 평화를 내걸며 만들어진 단체였고요.

 

◇ 노란리본인권모임 활동은 어떻게 함께 하게 된 거에요?

 

2007년에 활동을 정리하면서 멀어졌다가 2016년 여름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하게 됐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랑방 활동가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러다 제가 하던 활동을 그만 두게 되면서 놀고 있어서 그런지 제안을 해줬어요. 세월호와 관련된 고민을 인권의 관점에서 풀어가보려는 취지의 모임인데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요. 놀고 있는 제가 안쓰러웠나봐요. 큰 고민 없이 좋은 취지니까 함께 한 건데, 같이 모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고민이 부족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곤 해요. 반성이 돼요.

 

◇ 요즘 주로 어떤 것으로 시간을 보내세요?

 

요즘요? 활동하던 것을 접고 한동안 먹고 살 궁리를 하면서 이것저것 개인 실기를 많이 배우고 있었는데, 미류의 주선으로 인권연구소 창에서 인권아카이빙 작업을 하게 됐어요. 아. 그러고 보니 사랑방과 이런저런 인연이 많네요. 그 바람에 류은숙 선배도 십 수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건데 둘 다 낯설어 했어요. ㅋㅋ 여담이지만 예전에 류은숙 선배는 되게 미스테리했거든요. 명륜동 시절 사랑방은 3층에 있었고 연구소는 5층 골방에 있어서 가끔씩밖에 못 봤는데, 지금 이렇게 같이 일하고 있다니 재밌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아카이빙 일이 주업이 됐죠.

 

◇ 인권아카이브는 어떤 건가요?

 

초기 기획논의까지 세세하게는 모르지만, 인권운동이 그간 만들어온 여러 자료들, 경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데,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취합하는 작업인 것 같아요. 새롭게 생명을 주는 일이라고도 생각해요. 무언가 존재했다는 그 자체로 의미가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무슨 말을 했고 어떻게 기억이 되고 누군가에게 쓰이고 그런 과정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인권운동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데도 필요한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그간 인권운동이 걸어온 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사료로서의 가치를 갖기 위해서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은 필요한 거고요. 근데 말은 이렇게 거창하게 하지만 실상은 스캐닝 같은 단순작업을 하고 있지요.

 

◇ 십 수 년 전부터 지금까지 오랜 사랑방과의 인연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갑자기 예전 명륜동 시절 사랑방의 모활동가와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주말에 사랑방 사무실에 와서 비디오를 봤는데 그렇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이번에 사무실 이사를 도우러 왔을 때 도대체 이게 다 어디서 나오나 할 정도로 짐이 끝이 없었는데, 그때 옛날 자료들, 비디오테이프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옛 추억들이 떠올랐어요.

◇ 이사 때 다들 땀 무지 흘렸던 게 떠오르네요. 그때가 좋았다 싶을 정도로 요즘 더위가 정말 심각한데,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는 나름의 방법 같은 게 있다면?

 

글쎄요. 따로 뭐가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지난 겨울에 나는 여름을 떠올리지 않았던가. 다가올 겨울에 난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결국 이 또한 지나가리라 뭐 이런 생각이 드네요.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일상이니까, 다들 더운 거니까 그러면서도 에어컨 난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더위도 공평하지는 않구나 싶고.

 

◇ 앞으로 사랑방에 기대하는 게 있다면?

 

제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사랑방이란 공간은 남다르게 더 살갑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한때는 인권운동의 메카랄까 중심 같은 역할을 했었지만, 지금은 또 지금 시대에 필요한 역할들을 사랑방이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름의 목소리를 갖고 나름의 관점에서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사랑방이 지금처럼 꾸준히 잘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후에 제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겠는데 어떤 길을 가게 되든 어떤 일을 하게 되든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관계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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