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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성명] 밀양에서 경찰이 강제 철거한 것은 ‘사람’이었다

- 야만적이었던 6월 11일 밀양 행정대집행을 규탄하며-

1. 인권활동가들은 밀양 인권침해감시단을 구성하여 6월 11일 밀양 송전탑 농성 움막 행정대집행 현장에서 활동하였습니다.

2. 밀양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국가의 야만적인 민낯이었습니다. 행정대집행 과정은 농성 움막뿐 아니라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공사에 방해가 되기에 치워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밀양에서 벌어진 잔혹한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3. 밀양 인권침해감시단은 6월 18일 화요일 오전 11시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6.11 밀양 행정대집행에서 경찰 폭력으로 인한 인권침해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하고, 추후 대응에 대해 밝히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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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밀양에서 경찰이 강제 철거한 것은 ‘사람’이었다

- 야만적이었던 6월 11일 밀양 행정대집행을 규탄하며-

6월 11일 밀양에서 국가는 법치, 공공의 이익과 안녕이라는 온갖 교설과 가면 속에 가리고 있던 폭력성을 숨김없이 보여줬다. 행정대집행을 하겠다며 들어온 어마어마한 물리력은 농성 움막뿐 아니라 사람을, 정의를 철거하고 훼손하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생의 마지막을 걸었던 고령의 주민들, 그 곁을 지키고자 모인 종교인들과 연대 시민들, 기껏해야 수십 명에 불과한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20개 중대 2000명의 경찰병력이 동원되었다. 주민들의 옆에서 강압적인 철거 과정을 함께 목격하면서 진실을 기록하고 증언하고자 밀양으로 향했던 사람들은 전날부터 모든 길목을 막아선 경찰에 의해 발길이 묶였다. 주민들이 최소한의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장으로 향했던 변호사도 경찰의 강력한 제지에 막혔다. 일부는 주민을 만나기 위해 어둠 속에 산을 타기도 했다.

새벽부터 자행된 행정대집행 과정은 그야말로 경찰이 주도한 농성 움막 해체 작전이었다. 오로지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한전과 정부의 폭력적 의지만 가득할 뿐, 주민들의 안전과 인권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움막 주변에서 연좌하던 연대 시민들을, 기도하는 종교인들을 “치워내”기 위해 경찰들이 밀고 들어서면서 인근 낭떠러지로 사람들이 미끄러지는 아찔한 순간들이 계속 이어졌다.

주민들이 몸을 매단 움막은 진입한 경찰들의 무게에 눌려 움푹 꺼져갔다. “그 안에 사람이 있다”며 울부짖는 소리에 아랑곳 않고, 경찰들은 움막 위로 올라 칼날을 들어 거침없이 지붕을 찢어냈다. 아수라장인 움막 안에서 통곡과 비명 소리가 들렸지만, 사람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경찰은 움막 해체에만 몰두했다. 움막 안에서 쇠사슬을 목에 걸고 서로의 몸을 묶고 있던 주민들을 향해 서슴없이 절단기를 들이대고, 알몸의 할머니들을 제압하는데 남성 경찰들이 대거 투입되었다.

모든 사람들을 신속하게 치우려는 듯, 한 사람을 제압하는데 10여 명의 경찰들이 채증 카메라와 함께 달라붙었다. 머리가 눌리고 팔이 꺾인 채 끌려갔고, 조금이라도 발버둥 치면 바로 허리춤이 채어지고 사지가 들렸다. 단시간 안에 진압작전을 끝내기 위해 방해되는 모든 것을 치운다는 의지인 냥, 항의하는 인권침해감시단 활동가도, 불법성을 지적하는 변호사도, 보도하던 기자도, 조용히 지켜만 보던 국가인권위 직원도 끌려나와 가차 없이 내팽개쳐졌다.

강제로 들려나와 바닥에 팽개쳐진 할머니들은 손발에 경련을 일으키고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119 구급대원을 기다리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경찰은 할머니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걱정하기는커녕 한 발 떨어져 모욕적인 상황을 채증 장비로 기록하고 있었다. 신속하게 20개 중대를 동원하는 폭력적인 작전을 준비하면서 구급차는 달랑 한 대만 준비했다. 게다가 그 구급차가 와서 들 것이 준비되는 데는 20분이나 걸렸다.

129번, 127번, 115번, 101번 순차적으로 진행된 진압 작전은 각 농성 움막별로 불과 20~40여 분만에 이루어졌다. 압도적인 물리력에 대항하면서 기댈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기에 조금이라도 더 버티고자 서로를 묶었던 사람들 위로 휙휙 주저함 없이 오가는 군홧발, 엉겨있는 사람들을 뜯어내고, 모든 농성 움막을 해체하고, 사람들을 패대기치는데 경찰은 어떤 주저함도, 안전과 인권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치고 아플 대로 아픈 할머니들 상대로 “빨리 해치워버렸다”고 낄낄거리며 자축하는 경찰 간부들도 있었다. 수 년 동안 주민들이 삶을 걸고 지키면서 생활해온 곳을 무참하게 짓밟고 부순 뒤에야 주변에서 대기 중이던 밀양시청 공무원들이 들어왔다. 옷가지며 식기며 주민들의 삶이 배인 집기들은 내던져져 커다란 자루 안에 쓰레기처럼 처박혔다.

현장 밖으로 내팽겨져 오도 가도 못하게 경찰에 의해 가로막힌 주민과 연대 시민 뒤로 굴삭기가 실린 공사 차량이 줄줄이 대기해있었다. 주저앉은 할머니들이 원통함을 쏟는 동안, 한전은 야간 공사를 위해 전선 작업을 하기 바빴고, 경찰의 무전에선 끊임없이 몇 ‘점’이니 ‘고착’이니 하는 말이 오갔다.

우리는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공사부지에 세워진 농성 움막을 둘러싸고 이를 철거하려는 이들과 막으려는 주민들 사이의 충돌을 예상했다. 그러나 6월 11일 밀양에서 일어난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한전, 밀양시청, 경찰들은 주민들과의 충돌을 예상하거나 계획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공사현장에 너부러져 있는 온갖 ‘불법 물건’들을 치우겠다는 계획으로 산에 올라왔다. 그러니 수도 없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던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안전한 집행을 요구해도, 사람이 다친다고 절규를 해도, 사람을 짐짝 취급하지 말라고 해도 전혀 들리지가 않았던 것이다. 인권이 있을 수 없는 ‘물건’이 된 순간, 현장에 있던 이들에게 경찰은 조직된 폭력집단에 불과했다.

앞으로 우리가 증언할 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인권침해의 구체적인 목록들은 모두 경찰의 이런 태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밀양주민, 그들과 함께했던 이들 수십 명이 온 몸으로 저항하면서 세상에 알린 진실이다.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자행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 인권이 삭제될 때 가능하다는 것! 우리는 밀양이 알린 진실을 기억하고 널리 알려낼 것이다. 그럼으로써 조직된 폭력에 불과한 공권력이 미쳐 날뛰지 못하도록 인권의 고삐를 바짝 죌 것이다.

2014년 6월 13일

밀양 인권침해감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