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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밀양, 밀양, 밀양

안녕하세요. 저는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화신이라고 합니다. 지난 주말엔 밀양에 다녀왔어요. 그 날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생각했는지 일기 한 번 써볼게요. 11월 1일. 새벽부터 일어나 따뜻하게 옷 입고 대한문에 갔습니다. 아침 아홉시에 출발한다던 희망버스는 역시나 열시에 가까워져서야 출발했고 한참을 달려 세시 쯤 밀양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먼저 보이던 건 경찰이었어요. 어마어마한 수의 경찰버스가 마을 초입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설 자제를 나르기 위한 헬기도 보였고요. 우리가 두렵긴 두렵나봅디다. 아무튼 전국에서 여러 대의 버스가 간만큼 나눠져서 각각 다른 마을에 갔다고 하던데 제가 탔던 2호차는 여수마을로 갔습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풍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빼어나다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바로 뒤엔 황악산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마을의 127번 송전탑 건설현장으로 들어가는 언덕엔 벌써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주민 분들과 인사를 하는 동안에도 불법집회니 해산하라는 방송이 계속 나왔어요. 그래서 한참을 더 걸어 마을 입구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와 줘서 고맙다, 함께 해줘서 고맙다, 그런 말씀을 계속 하셨어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계속 싸워주셔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게 계속 계셔주셔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지난 9년간 얼마나 힘드셨을지 저는 짐작도 못합니다. 평생을 농사지으며 살아 온 마을에 갑자기 송전탑이 생긴다니요. 믿었던 공권력의 멸시와 조롱은 둘째 치고 기본권마저 침해당하며 살아야 하는 그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마을에서의 집회가 끝나고선 바로 밀양역으로 갔어요. 밀양역에서 다 같이 밀양을 얘기하는 문화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문화제 참 좋아하는데요. 이 번 밀양에는 용산의 유가족들, 쌍차 노동자들 그 외 수 많은 노동자분들과 쫓겨난 많은 분들이 함께 연대했습니다. 다 같이 말했어요. 밀양을 지켜내지 못하면, 공권력이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있는 그 곳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지켜낼 수 없을 거라고요. 날씨는 따뜻했고 함께 한 연대 속에 마음도 따뜻했지만 한 편으론 늘 공통된 무언가로 인해 고통 받는 우리의 모습에 가슴이 시렸습니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그치만 문화제는 즐거웠어요. 함께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 속에서 밀양 할머니들의 '데모에 나이가 있나요~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인데~' 합창도 듣고(엄청난 중독성!) 많은 가수 분들의 본인 흥에 취해 박자 따윈 잊어버린 노래도 듣고요. 구호를 외치고 서로를 응원하고 밀양을 기억하며 잘 자자하고 문화제는 끝이 났어요. 지역별로 나눠져서 배정된 마을에 가 자게 되었는데요, 저희는 평밭마을에 갔답니다. 버스가 올라가지 못하는 첩첩산중 속 107번 예정지 밑 숙소에서 잤어요. 달달 떨며 잘 것이 두려워 담요며 친구들은 침낭을 그렇게 챙겨갔는데 아궁이에 나무 떼는 따뜻한 방에서 잤어요. 마을 주민 분들이 데려다주시고 혹시나 추울까 친절하게 챙겨주셔서 더욱 따뜻했고요. 12월1일. 둘째 날엔 아침 먹고 보라마을로 내려가 마무리 집회를 했어요. 3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며 얼마나 탄식했는지 아세요. 다른 것을 다 제쳐두고서라도 이리 아름다운 곳에 커다란 송전탑이, 그것도 20미터나 되는 기둥을 심은 채 자리 잡는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할까요. 마무리 집회 중 이장님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며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왜 막무가내로, 누군가 가꿔 온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고, 기본권마저 빼앗아 버리는 걸까. 일상 속 나와 우리는 고작 휴대폰이니 전기장판이니 온수장판 따위의 전자파를 걱정하는데 대체 76만 5천 볼트의 송전탑 밑에 사는 할머니들은 대체 얼마나 눈앞이 캄캄할까요. 터전을 내놓으라는 그들의 소리에 또 얼마나 허망할까요.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지요. 그 어마어마한 송전탑이 지나가는 곳의 사람들은, 식물은, 동물은, 모두 위험해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정말 이 밀양을 지켜내지 못 한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지켜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아무튼 저는 누군가 한 평생 가꿔 온 삶의 터전이 우리의 눈앞에서 처참히 부서지는 현장에 다녀왔어요. 결코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다시금 알았고요. 밀양을 지키러, 다음엔 함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