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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휴직을 위한 변명

이공일공!
왠지 입에 착 달라붙는 해다.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사랑방 동료들에게 1년 휴직을 하겠다고 했다. 이번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눈치가 빠른데다 맘까지 넓은 동료들은 ‘그렇게 하시게나.’ 해 주었다. 혹시 녀석들이 바라고 있었던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만큼의 시원한 수락이 정말이지 고.마.웠.다. 좀처럼 줄지 않는 사랑방 활동에 비해 활동가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한 이공일공인 것이다. 그런고로 난 이공일공을 잘 보내야 한다.

지금으로선 오장육부에 부담감만 만땅이다. 뭐 이 바쁜 세상에 나의 한 해 계획을 물어주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혹시나 질문을 받는다고 해도,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만...이라는 심심한 인사로 답할 도리밖에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일구구구.
사랑방 활동을 처음 시작했다. 학교 선배가 비싼 우동 한 그릇으로 꼬셨는데, 쫄깃쫄깃한 고급 면발에는 거부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날 이후 거의 십년을 사랑방 혹은 그 인근에서 대충 정착해 살았다. 인권이라곤 무개념이었던 인간이 사랑방에 이렇게 오래 들러붙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랑방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내뿜어 형성된 사랑방의 특별한 대기층 때문이다. 그 대기층은 대략 다름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 권력이 뿌린 돈의 치명적인 유혹에 도도하게 NO! 라고 고개를 저을 수 있는 자존심.
․ 위아래 없이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친구 먹을 수 있는 해방감.
․ 세상 돌아가는 꼴에 짜증이 나 있을 때 바로 옆에서 똑같은 이유로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인간을 발견하는 기쁨.
․ 유명한 누구누구가 한 무슨무슨 얘기보다 동료들의 기똥찬 활동 아이디어를 더 쳐 주는 대범함.
․ 다양한 인간을 존중하는 법을 조금씩 익히면서 개념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
․ 식사 시간에 늦게 가도 밥 한 공기 모셔놨다가 내어 주는 뜨거운 의리.
․ 그리고,,,뭔가 인디적이랄까 아웃사이더적이랄까 암튼 간지 나는 각종 유흥과 놀이.

나의 활동 동력은 온전히 사랑방 인간들이 쉼 없이 내뿜어 주는 공기에 기생해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 생업을 갖게 되고, 사랑방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자 흔들렸다. 내가 원하는 세상과 삶의 방식, 인권활동가로서의 정체성 같은 것이 모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이공일공!
엔 나로부터 자체 생산되는 활동 동력을 찾아보려고 한다. 사랑방의 대기층을 벗어나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나의 세계관과 운동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을 가지고 싶다.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을 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무작정 고고씽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