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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독자기고> 티벳의 노승려·세계화·인권


며칠 전 티벳의 불교승려가 엠네스티 사무국을 방문하여 티벳의 인권상황에 대하여 연설할 기회가 있었다. 팔든 가트소라는 이름의 이 승려는 티벳의 독립을 주장하다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33년 동안 중국의 감옥에서 보냈다. 몰매, 전기고문 등 형용할 수 없는 학대를 다 감내하면서 수형생활을 견뎌온 그의 신념은 엠네스티 내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였다. 그는 지난 수년에 걸친 구명활동으로 92년에 석방되었다.

"수형생활 중 어느 날엔가 빈약하기 짝이 없던 식사가 갑자기 바뀐 적이 있다. 나를 대하는 중국관리들의 태도가 이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영문도 모르고 먹은 그 날의 아침식사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고 말을 뗀 뒤 "마오이즘은 비판을 중요시한다. 비판이 없는 발전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중국정부는 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서 나의 수형생활이 알려지고 엠네스티의 구명활동이 시작되었을 때 중국정부의 나에 대한 입장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들은 지금 관성에 젖어 있으며 마오이즘을 망각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엠네스티의 구명활동은 여러분이 나에게 준 아침식사이자 중국정부에게 잠시나마 마오이즘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고문 등 온갖 고통을 다 감내해야 했던, 그래서 62세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훨씬 늙어 보이는 그가 한 말은 나에게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한다. 한국의 인권단체는 그동안 국내의 민주화와 인권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에 너무나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티벳의 독립과 인권문제에 있어서는 중국과 관계를 고려하여 애써 외면해왔다. 실제로 동서냉전시기에는 티벳의 독립과 인권문제가 서방국가에 의해 중국에 대한 체제내적인 압력을 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왔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시기 군사정권 하에서 모든 것이 조작되던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이 시기 북한 문제를 거론하는 일 자체가 오히려 정권에 의해 왜곡되기 십상이어서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동서냉전의 붕괴는 한반도에 새로운 시대적 상황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인권, 사회개발, 환경 등 새로운 지구적 차원의 과제에 직면하였고 우리도 그 주체로서 변화에 부응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작년 이후 한국의 인권단체 내부에서도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새로운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북한 인권문제의 거론은 북한을 올바로 인식하고 통일을 이루려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우선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해 한국의 인권단체가 주관이 되어 동티모르인의 비참한 인권상황을 한국 국민에게 알린 사실이나 아르헨티나의 오월광장 어머니회를 초청하여 그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노력은 서로간의 인권문제를 공유하고 지구촌 가족으로서의 의무인 국제적인 인권문제에 동참하고자 하는 한국인권단체의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티벳의 독립과 인권문제는 지금 심각한 지경에 와 있다. 95년 발간된 엠네스티의 자료에 의하면 93년과 94년의 티벳의 인권 실태는 지난 수년보다 훨씬 악화되었으며 특히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탄압은 독립운동가들에 집중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보고서는 독립운동 시위에 참석한 수감자중 몇몇은 단지 12세에 불과하며 이들 어린이들은 고문과 견디기 힘든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한 나라의 독립은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문제이다. 우리 민족은 일제 36년간의 식민통치를 겪으면서 나라 없는 민족의 아픔이 얼마나 비참하며 독립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몸으로 체험하며 익히 알고 있다. 티벳은 중국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채 지난 수십년간을 식민통치 하에서 고통받아왔으며 현재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구금, 구속되어 있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며 독립운동의 명분은 강대한 중국에 의해서 점차 감춰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지난 시기 어느 날 그에게 따뜻한 아침식사를 가져다준 엠네스티 회원들의 편지 한통 한통의 관심처럼 다시 한번 한국의 인권단체를 비롯한 세계인의 관심이 주어져야할 때다. 노승려는 조국의 안타까운 현실이 못내 아쉬운듯 이번의 여행길도 조국의 인권실태를 알리고 이를 국제적으로 호소하기 위한 걸음이라고 새삼 강조한다.

혜진 (불교인권위원회 간사, 현재 국제앰네스티 런던사무국 인턴과정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