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국가인권위’ 왜곡보고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설립문제와 관련해 유엔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오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뉴욕을 방문, 지난 2월 1일 귀국한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새로 창설될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 문제를 둘러싸고 법무부와 국민회의, 그리고 민간단체들 사이에 팽팽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박 비서관은 지난 1월말 4박5일간 뉴욕을 방문했으며, 엘리자베스 유엔고등판무관 뉴욕사무소 부소장 등을 만나 국가인권위 설치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돌아왔다. 그러나 박 비서관이 유엔 전문가들에게 인권위 설치와 관련된 한국의 상황을 왜곡해서 전달하고, 의도적으로 법무부에 유리한 의견을 끌어낸 뒤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11일 오전 10시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인권법 제정 및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위한 민간단체 공동추진위원회’(이하 공추위)는 최근 항간에 심심찮게 돌고 있는, “유엔 전문가들이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에 관하여 법무부 법안을 지지했다”는 소문과 관련, 이 “터무니없는” 소문의 진원지가 박주선 비서관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공추위는 기자회견문에서 “박주선 씨가 법무부 법안에 유리한 외국인 증언을 의도적으로 도출할 목적으로 뉴욕에서 활동”했으며 “수집한 정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법무부에 유리하게 왜곡했다”는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공추위는 “박 비서관이 뉴욕에서 한국의 국가인권위 설립준비와 관련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고 답변을 얻었는지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박주선 비서관은 11일 저녁 새정치국민회의가 주최한 ‘인권단체 초청 연찬회’에 참석, 민간단체들의 의혹을 부정하며 “국가인권기구가 독립적 기구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미국에서 듣고 왔고 이를 대통령에게 공정하게 정리해서 보고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 비서관은 출국 전 민간단체의 법안은 읽어보지도 않았고, 그나마 국민회의 안에 대해서조차 무지를 나타내며 “국민회의와 법무부 측 법안을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기초적 이해조차 없이 유엔 전문가들을 만난 사실을 드러냈다.
박 비서관의 이같은 설명에 대해 공추위는 “박 비서관이 한국의 상황과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의 쟁점 등에 대해 왜곡된 설명을 했다는 점이 의혹을 넘어 확신의 수준에 이르렀다”며 “박 비서관은 고의가 아니었다 치더라도 결과적으로 법무부의 입장만을 국제사회에 선전하고 이에 대한 지지를 구한 꼴”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박 비서관으로부터 왜곡된 보고를 들은 대통령이 국가인권위 설립에 대해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