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이라던 미국의 세계무역센터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폭삭 내려앉은 9.11 사건이 난지 꼭 1년이 되는 날, 나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지의 아프간 난민캠프에 있었다. TV에선 하루 종일 미국의 슬픔과 비장함을 장황하게 방송하고 있었지만, '보복'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미국의 테러로 폐허가 된 집과 고향을 떠나 1년째 구호물자로 연명하고 있는 아프간 난민들의 고단한 삶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아프간은 지난 20여 년 간 전쟁이 끊이지 않은 비극적인 땅으로 1979년 구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한 직후 처음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온 아프간 난민들로 난민캠프가 세워진 이후 소련이 물러간 후에도 아프간은 끊이지 않는 내전으로 난민들은 계속 존재했다. 지난 9.11 사건으로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해 또다시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했고, 새로운 문제는 아니지만, 불행의 연속 속에 아프간인들의 삶은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피폐해진 상태였다. 올 2월 최고에 달했던 난민의 수는 파키스탄 내에만도 300만 명에 달했고, 그 중 절반 정도만 UN이나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식량지원을 받고 있었다. 밀가루와 오일, 소금, 하루 물 15리터씩 등 가장 기본적인 식량만을 지원 받기 때문에 행여 식량이 모자랄 새라 아껴먹어야 하고,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한 달에 500루피(만원)를 벌기 위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카페트를 짜야하는 난민촌의 아이들과 아프간 여인들을 보고 돌아온 후, 한국의 흥청망청한 생활들은 마치 죄악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살만한 조건이 아닌 곳에서 살면서도 맑은 웃음과 눈동자를 가진 아프간 어린이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난 6개월 동안 아프간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물자들과 기금을 모았다. 어린이옷과 학용품, 생필품 등 물자는 부산가톨릭교구와 JTS(Joint Together Society), 양산효암고등학교학생회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7월 27일 컨테이너에 실어 보냈고, 모아진 기금은 난민캠프 어린이들의 학교를 지원하기로 했다. 따라서 이번 난민캠프 방문은 배편에 실어보낸 물자들의 전달을 확인하고, 난민캠프 어린이학교 운영을 위한 지원금 전달을 위해 방문한 셈이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한국에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데, 남의 나라 사람들까지 돌볼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을 하신 분도 있었다. 과연 어렵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데 국적이나 민족, 인종의 차이가 있을까? 오히려 나의 고민은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이지만,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이라도 시작할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된다.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면서도 먼 곳에서 찾아온 외국인 손님에게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어하는 마음 따뜻한 난민 가족들의 찢어진 텐트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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