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국 지원병 파병안 국회 통과
국회가 기어이 파병동의안을 통과시켜 학살자의 일원이 되길 자처했다. 2일 오후 5시 20분, 박관용 국회의장이 파병안 가결을 외치며 의사봉을 내려치던 순간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 가운데 하나로, 이라크와 세계인의 가슴에는 한국이 이라크 침략을 결정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전 10시 파병안 처리에 대한 '간곡한 부탁'을 담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연설로 시작된 이날 본회의는 여야 의원총회를 거쳐 오후 3시 다시 속개, 2시간여의 토론 발언을 거친 후 결국 정부 원안대로 파병안을 통과시켰다. 재적의원 270명 가운데 256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진 표결 결과, 찬성이 179표, 반대 68표, 기권 9표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조만간 건설공병 600여명과 의료병 100여명이 침략군의 일원으로 이라크로 투입, 기지 건설 지원과 전후 복구사업 등을 벌이게 됐다. 한편 의료병만 파병하자는 김경재 의원 외 29명이 제출한 수정안은 찬성 44표, 반대 198표, 기권 14표로 부결됐다.
박세환 의원의 파병결정 진실 고백
토론자로 나선 8명의 의원들 가운데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의 발언은 한국 정부와 국회가 파병을 선택한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박 의원은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자랑하면서 크게 세 가지의 파병 찬성 이유를 내세웠다. 첫째 "우리를 지켜주고 지원해주는 것은 미국이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질 경우 전투병을 보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곳도 미국뿐"이므로 "한미동맹 지속비용으로 생각하고 이라크에 파병해야 한다"는 것. 둘째 "6·25전쟁이 일본을 부강하게 하고, 월남전이 우리 경제를 부강하게 해 주었듯, 우리도 파병을 통해 전후 복구'사업'에 필히 참여해서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하며, 걸프전 때처럼 파병의 적시성이 부족하고 원거리에 배치된 것을 이유로 전후 중동 건설수주에서 밀려났던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것. 또 "에너지의 절대 다수를 중동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석유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도 미국을 도와야 한다"는 것. 덧붙여 박의원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라크에서의 실전 경험은 우리 군의 위기대처능력을 키워줄 수 있으며, 외국과의 연합작전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인 만큼 비전투병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고 해 전투병을 보내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고뇌 끝에 내린 결정"은 거짓말
한편, 토론자들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절반 이상의 의원들은 자리를 뜨거나 졸거나 잡담을 나눠 토론이 단지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냈다. 또 발언을 듣는 동안이나 투표를 하는 순간에도 상당수 국회의원들은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는 자의 표정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밝고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여 이들이 '기꺼이' 파병을 선택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한편 국회 앞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연설차 국회를 방문한 오전 9시 50분경부터 파병동의안 처리를 저지하려는 1천5백여 시위대의 국회진입 시도가 이뤄졌다. 시위에는 전날부터 밤샘농성을 벌여온 여중생 범대위와 전쟁반대평화실현공동실천의 활동가들과 민주노총 조합원은 물론 학생, 시민들이 참여해 국회의 파병동의안 부결을 촉구했다.
오후 1시 30분경, 시위대는 기습적으로 국회 정문 20미터 앞까지 진출, 도로를 점거하고 다시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서울대학생 1천여 명도 동맹휴업을 결의, 국회 앞으로 달려왔으며, 이어 교수·학생 결의대회도 열렸다. 삭발한 영화감독, 차도르를 쓴 여성, 기타를 든 음악인 등도 한 목소리로 "전쟁중단, 파병반대"를 소리높여 외쳤다.
'더러운 선택'에 대한 분노와 규탄
마침내 오후 5시 20분경 국회에서 파병동의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회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시위대는 "오늘은 전범국 국민 된 슬프고도 분통이 터지는 날"이라며 대오를 가로막고 있는 전경차량을 밀고 국회진입을 시도하며 전경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일부 참가자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이라크 어린이의 사진을 부여잡고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시위대는 저녁 8시까지 규탄집회를 계속하며 "미국의 더러운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한국군 파병을 저지하는 우리의 정당한 투쟁은 계속될 것"임을 밝혔다.
이후 전쟁반대와 파병 중단을 위한 직접행동은 4월 4일 학생행동의 날, 4월 11일 한총련 동맹휴업, 4월 12일 범국민 결의대회 등으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